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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지극한 벗`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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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사진 와우서울 시월)

천하에서 가장 친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이라고 말합니다.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 박제가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중에서

문학,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등.... 분야는 달라도 어쨌거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슬그머니 묻곤 한다. 어떻게 생활을 꾸리며 사냐고, 먹고살 만하냐고. 짐짓 무례할 수도 있는 사적인 질문이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뜻밖에 순순히 자신의 형편을 토로한다. 그들은 내가 묻는 이유를 잘 알고 있고, 내게는 그들에게 물어야 할 이유가 있으므로.

나는 스스로를 '생계형 전업 작가'라고 부른다. 그러면 대개의 사람들은 웃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당황하거나 심지어 불쾌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농담도 엄살도 아닌, 현실이다. 예술가는 당연히 가난해야 한다든지, 예술의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해 돈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기보다 기가 막히다. 그렇게 이슬만 따먹고 사는 고고한 예술가들을 상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저작권을 함부로 침해하거나 '재능 기부'라는 이름으로 재능을 공짜로 이용하려는데 가장 적극적이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기꺼이 참아야 하는, 수면 위의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물밑에서 열나게 다리를 저어야 하는 백조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궁탄(窮嘆)이 나오는 것이다. 생존 확인이기도 하고 동병상련이기도 한, 날로 경조부박해가는 세상을 견디는 고단한 예술가들끼리의 위무다.

<송백영숙기린협서>는 식솔을 이끌고 기린협(강원도 인제)으로 떠나는 친구 백동수를 위해 박제가가 쓴 다정하고도 쓸쓸한 편지다. 영숙은 백동수의 자(字)인데, 조선 후기 무관인 백영숙은 그와 교류했던 실학자들에 비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꽤나 신실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무과에 급제했지만 관직에 오르지 못한 그가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갈 때, 박제가와 박지원이 각각 글을 써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박제가는 백영숙보다 7살이 어렸지만 30여 년을 친구로 지냈고, 그들의 우정에는 서얼 출신이라는 불운과 궁핍하고 옹색한 나날을 함께한 동지애가 밑바탕이 되었다.

박제가는 천하에서 가장 친한 벗, '지극한 벗'은 가난할 때 사귄 벗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니 겉모습이나 행적을 돌아다볼 필요가 없고, 가난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면 서로 '밥은 먹었는지 굶었는지,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그런 다음 집안 살림의 형편을 물어'본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자존심을 다치기 싫어 숨겼던 일까지 솔직하게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친구가 섣부른 호기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그토록 열망하던 예술을 떠나거나, 그도 못해 아예 세상을 떠나버리는 친구들의 소식마저 들려오는 지경이다. 아무리 제 코가 석자라도 친구를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내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 가난을 상의해야 한다. 서로에게 더욱 '지극한 벗'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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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지극한 벗`이 있습니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4-09-12
관리번호 D000004175389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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