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대학콘텐츠] 숙대 앞 명소 (5) 유쾌한 부자(父子) 안경장이

문서 본문

<서울 콘텐츠 발굴 대학 연계 프로젝트>는 서울지역대학 미디어, 광고홍보 관련 학과 교과과정과 연계하여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1학기 동안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내용들을 ‘내 손안에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합니다.

대 학 명 숙명여자대학교 수 업 명 소셜미디어 세미나 지도교수 문장호 참여학생 김민지, 김소린, 김채원, 남수연, 박은하, 박진영, 송지은, 지인혜, 최정은, 홍서정 우리나라에 ‘안경사’라는 직업이 등장한지 채 30년이 안된다.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성원안경원은 1986년 처음 문을 열었다. 성원안경원의 대표 김헌수 안경사는 안경과 동고동락한지 어느덧 50년이다. 어째서 50년이냐고? 산수를 잘 못한게 아니다. 같은 안경사이셨던 아버지 어깨너머로 본 안경이 30년, 그리고 스스로가 안경사의 길을 걸어온지 30년이 되어간다. 세상에 없던 직업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에서 2대째 내려오는 가업은 더 없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안경의 역사가 곧 가족사

부친의 안경원에 대해 묻자 “60년대에는 안경원이 없었지. 약국도 없던 시대인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경점이 없던 시절, 안경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어디서도 듣지 못한 안경으로 돌아보는 한국사 시간이 펼쳐졌다. “안경을 대중에게 알린건 보따리 장수들이었어요. 보부상이라고 하지? 보따리에 참빗, 화장품, 라이터 같은 것들을 지고 장터를 돌아다녔는데 그 사이에는 안경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60년대에 처음 안경을 팔던 가게도 안경점보다는 ‘만물상’에 가까웠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복합몰(mall) 이라고 할 수 있죠. 아버지 가게에도 안경이 라이터랑 같이 놓여있었고 또 그 당시에는 금은방에서 안경을 많이 팔았어요” 김헌수 안경사의 부친은 잡화점을 운영했다. 가게의 여러가지 물건들 중에 안경이 특히 인기를 얻자 차차 안경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 안경원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시 가게에는 시력을 잴 수 있는 공간과 안경을 가공하는 다소 원시적인 기계 정도가 전부였다. “그땐 ‘돌 도요시’라는 돌기계로 안경알을 만들었어요. 돌로된 기계로 유리를 깨서 안경알을 가공했는데 한 쪽 알 만드는데 30분도 더 걸렸죠. 요즘 기계는 깍는 속도가 빨라 10분이면 뚝딱 나오지만 그 때는 안경 하나 맞추는데 두 시간은 기본이고 많이 걸리면 세 시간도 걸렸어요. 지금은 렌즈를 쓰지만 그땐 또 100%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만지기도 까다로웠죠”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안경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소위 4대문 안에만 있는 특별한 상점이었다. 안경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주로 어떤 사람들이었나 묻자 “그 땐 다들 쌀밥먹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였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껑 열고 보리밥 섞인 혼밥이 아니면 몽둥이 맞던 때인데 안경을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찾았다” 고 답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서

“아버지가 이 일을 권한 적은 없어요. 물론 옆에서 보고 자랐으니 영향을 받긴 했죠. 보고 배운건 중학생 때 부터였고 정확히 이 길로 뛰어든건 27년 정도가 됐네요. 젊었을 땐 저도 요즘 청춘이랑 다를게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도 여러번 바뀌고 20대가 다 끝나도록 갈팡질팡했어요” “안경은 사회에 나와서 배웠다기 보다는 삶에 녹아들었죠. 아버지를 도와드리면서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안경’ 이었습니다” 가족끼리 공부나 운전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있다. 티끌만한 실수에도 화를 내는 일이 많아 좋은 일을 하고도 더러 의(義)상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 고충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직장 들어가서 상사에게 혼나는 것보다 부모에게 혼나는 게 더 무섭다. 남의 동생 혼내는 것과 내 동생 잘되라고 혼내는 것은 달라요.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시간이 되면 뭘 해라, 일찍 들어와라 하는 지속적인 가르침을 주셨어요. 아버지 스스로가 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계속해서 노력하셨기 때문에 저도 본받을 수 있었죠”

2대 안경원의 2대 단골

김헌수 대표는 특별한 안경사다. 한시간 반 거리인 인천에서는 기본이고 전국 각지에서 안경을 맞추기 위해 나이가 지긋한 단골들이 찾아온다. 멀리서 찾아주시는 어르신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왜 여기까지 오셨나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고. “한 세대가 지나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고객들도 있어요. 지방에서 일부로 올라오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그런 분들을 생각해서 이윤을 최소로 줄이고 이익을 최대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고객 창출에 힘을 쓰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에는 새로운 고객 10명보다 몇 십 년 된 단골 손님 한 분이 더 소중해요. 새로운 고객들은 와서 줄이 길면 그냥 가지만 단골 손님들은 반대로 항상 저를 기다려주세요. 그 마음이 정말 감사합니다”
2. 성원안경원

표창장과 봉사활동패 ⓒ 김민지, 김소린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김헌수 안경사는 고객에게 받은 사랑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가게 한 켠에 놓인 표창장과 봉사활동 패가 눈에 띈다. 김헌수 안경사는 용산구에 있는 갈월복지관과 초등학교에서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시력 검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재능기부’ 정도라며 말을 아낀다.

“나처럼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보고 배우면 좋은 점이 장인정신이 생긴다. 일자 무식했던 사람도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하면 장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인정신을 갖게 되면 가게를 하더라도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서 끝내는 영업이랑은 달라요.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작은 일도 건선건성 할 수 가 없습니다”

2대 째 내려오는 고객의 신뢰는 두 부자(父子)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묻자 “감사하다.”는 대답이 나왔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작은 일이 큰 행복이 되고 큰 일도 큰 행복이 된다. 이 나이에 은퇴에 대한 부담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늘 많은 고객들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단골 고객들 덕에 가게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일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문서 정보

[대학콘텐츠] 숙대 앞 명소 (5) 유쾌한 부자(父子) 안경장이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내 손안에 서울 생산일 2014-10-06
관리번호 D0000041752580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