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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의 연약하지만 절대 끊이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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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옛날 나바호 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 한 가지씩 넣어 대조적인 색으로 바깥 테두리를 둘렀다. 이 의도된 결함은 깔개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 또 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내려는 뜻이 담겨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게일 캘드웰(Gail Caldwell) 《먼 길로 돌아갈까?》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44 젊은 세대가 주로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는 신조어 혹은 은어 중에 '정신줄'이라는 단어가 있다. 말하자면 '정신을 놓다'는 표현을 '줄'이라는 사물로 형상화한 셈인데, '정신줄'을 놓으면 정신이 풍선처럼 허공으로 두둥실 날아가 버리는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희화화된 그 표현과 같고도 다른 말이 실제로 북아메리카인디언 중 가장 큰 종족인 나바호 족에게 있다고 한다. 손끝으로 살짝 퉁기면 높고 청량한 소리가 울릴 듯한 이름, 이른바 '영혼의 줄'이다. 대체 그 줄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 본다. 생존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은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하늘이 내려주는 것처럼 튼튼한 동아줄을 가지고 있을까? 보통의 삶, 그저 보통의 존재인 평범한 사람은 돌잔치에서 아이가 뜻 모르고 잡는 실타래 같은 줄을 갖고 있을까?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이라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투명한 피아노 줄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식에서 쓰이는 모래그림과 융단, 채색도기와 은 세공품 등으로 그 섬세한 예술적 취향이 잘 알려진 나바호 족은 독특한 그들만의 해석을 말한다. 특산품으로 유명한 융단 혹은 러그를 짤 때 의도적으로 만드는 한 줄의 결함, 어쩌면 멀쩡히 잘 만들어온 러그를 망치는 것도 같은 그것이 바로 '영혼의 줄'이라는 것이다. 기실 나바호 족만큼 부조화와 일탈, 추악함을 두려워하며 꺼리는 부족도 없다. 그들이 인사를 하거나 기도문을 외울 때 후렴처럼 들어가는 '호조니'라는 말은 조화, 평화, 아름다움, 그리고 균형을 뜻한다. 그들은 오로지 완벽한 조화를 꿈꾼다. 대지의 몸과, 대지의 마음과, 대지의 말과, 대지의 생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하나처럼 조화롭기를. 하지만 대지에 대한 순응과 복종이 인간이 만든 권력이나 제도에 대한 그것과 다른 점이 바로 '영혼의 줄'의 존재에 있다. 한 줄의 생뚱맞은 색깔, 한 줄의 뜬금없고 새삼스러운 도발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비상구이자 창조력의 출구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 신성한 종교, 위대한 지도자도 절대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정신을 가두는 순간 억압이 된다. 옳을수록, 강할수록 큰 굴레가 된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나바호 족은 스스로 틀리기를, 망치기를 택한 것이다. 그들은 명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정해진 규칙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신에게 다가간다. 한 가닥의 연약하지만 절대 끊이지 않을 '영혼의 줄'의 자유와 자존을 홈켜잡고. 아무 흠결도 없이 평탄하고 보드레한 융단은 가짜다. 고통과 고난이 없는 삶에서 자신의 영혼을 찾아 지키기 힘들다. 때로는 상처와 흉터가 온전히 살아있음의 생생한 증거가 된다. 사람은 영혼의 힘으로 생각보다 약하고, 또 훨씬 강한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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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의 연약하지만 절대 끊이지 않을...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4-10-10
관리번호 D000004175256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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