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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혹평 속에 막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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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개막식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65 인천 아시안게임이 혹평 속에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아시안게임, 월드컵,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만큼은 선진국보다도 더 모범적으로 치러내 외신의 찬사를 받아왔었는데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이 그 전통을 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비용을 추구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마디로 돈을 아끼려다보니 여기저기서 일이 터졌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기자들이 묵는 미디어촌과 일부 선수촌에 방충망이 없어서 각국 사람들이 모기에 시달렸다고 한다. 미디어촌에는 욕조 마개도 없어서 몸을 담그는 목욕이 전통인 나라의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했다고 한다. 부엌과 신발장 등을 테이프와 포장지로 덕지덕지 붙여놔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도 나온다. 숙소에 TV가 없어서 다른 게임 모니터링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관계자도 있었고, 창문의 햇빛을 가려주는 설비가 부실해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시설에 최대한 돈을 아끼고 향후 일반 분양에 대비하다보니 외국 손님들에겐 잠깐 잠만 자고 나가라는 식으로 대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심지어 선수촌 식당 메뉴마저 부실하다는 말이 나왔다. 부실 성화대, 부실 도시락, 부실 셔틀버스 논란도 있었다. 돈 드는 전문요원을 최소화하다보니 소양이 부족한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통역요원 배치도 제대로 안돼 메달리스트가 다른 메달리스트의 통역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제대회의 격식에 걸맞지 않은 장면들이 많이 연출됐다고 한다. 이러한 부실 운영과 함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또 눈에 띄는 현상은 국민의 무관심이었다. 부실 운영도 무관심도 예전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국시는 ‘8688’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86 아시안게임에 대한 열광이 88 올림픽에 뒤지지 않았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행사를 국가 중대사라고 인식해서 국력을 기울여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우린 특히 외국인들의 평가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외국 선수나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숙소, 음식, 편의시설 등은 언제나 최고였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손님대접’이 이루어지곤 했다. 이렇게 외국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우리의 국가적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칙사 대접’을 하고, 그 속에서 한국 선수가 1등을 하면 온 국민이 열광하고, 외국 기자들이 ‘한국 행사 진행 세계최고’라고 한 마디씩 하면 그 말에 또 그렇게 뿌듯해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엔 외국인 대접에 벌벌 떨던 그 현상이 사라졌다. 냉정하게 돈을 아끼고, 우리가 메달을 따든 말든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우리가 아시아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완전히 자각했다는 뜻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물개’, ‘아시아의 인어’, 이런 호칭에 온 국민이 열광했지만 이젠 아시아 타이틀 정도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최소한 아시아권에서 만큼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온전히 인정했기 때문에 타국의 시선, 타국과의 대결 결과에 과거처럼 그렇게 민감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처음으로 대규모 국제경기에서 ‘감히’ 외국 손님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국제경기 부실 운영이 자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부실 운영이 나타날 정도로 우리 자신감이 커진 점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 부실 운영의 또다른 시사점은 이제 국제경기에 ‘묻지마’로 달려들던 시절이 끝났다는 데 있다. 과거엔 국제경기가 국위를 올려주고 천문학적인 경제효과를 안겨준다며 경제성 안 따지고 달려들었었다. 그 신화가 명백히 붕괴됐기 때문에 주최측 입장에선 돈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돈을 아끼다보니 망신을 산 것인데, 그렇게 아끼면서 쓴 돈마저 앞으로 어떻게 회수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한다. 86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시절 이후로 국제경기개최에 온 나라가 앞뒤 안 가리고 올인한 세월이 어언 30여 년이다. 2014 아시안게임은 그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국제경기 개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앞으론 좀 더 냉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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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혹평 속에 막 내리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4-10-07
관리번호 D000004175272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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