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한글로 다시 살아나는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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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헌책방 거리 재현 모습

청계천 헌책방 거리 재현 모습

[내 손안에 서울]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에 옛날 헌책방이 살아났다. 그 자리엔 1961년 출간된 '소설 광장(최인훈 작) 초판본'이 놓여있다. '광장'은 지금까지 총 열 번 개작되었다. 특히 61년판은 세로쓰기 형식이며, 지금과는 조금 다른 내용과 표현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옆자리엔 한국현대사를 담은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 시리즈 단행본도 진열되었다. 대형 서점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찾기 힘든 이 희귀도서들, 바로 청계천 헌책방들이 간직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19일까지를 한글 캠페인 기간으로 정하고 평화시장 아래 위치한 청계천로에 60년부터 90년도까지의 '청계천 옛 헌책방거리'를 재연하였다. 이 자리에 헌책방을 축소하여 재연한 조형물과 지금은 보기 힘든 오래된 책들을 전시 중이다.
헌책을 보는 시민

헌책을 보는 시민

'헌책방'은 단순히 오래된 책을 모아 파는 곳이 아니다. 도시의 지식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대중에게 검증된 가치 있는 도서를 발굴하는, 도서유통의 숨은 공로를 해 온 보물창고다. 60~70년대에는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호황이었으나, 현재 이곳을 지키는 헌책방은 이제 25곳뿐. 사실상 명맥만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헌책방을 살리고자 최근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협력했다. 서울시는 국내 대표 민간포털 '네이버'와 '네이버문화재단' 함께 제 568회 한글날을 기념하여 '청계천 헌책방거리 활성화'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이 25곳 헌책방 간판들을 모두 한글로 교체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헌책방 활성화를 위해 중고책 장터인 '한 평 시민 책시장'(11월까지 매주 토, 일 개장), 체험수기 공모전 '우리동네 헌책방 가는 길', 헌책방 주소·이용시간을 담은 '헌책방에서 보물찾기 서비스' 등도 진행 중이다.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간판으로 옷 갈아입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간판으로 옷 갈아입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

한편, 한글날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한글 간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시민들을 맞았다. 간판은 각각 헌책방의 특성을 잘 살린 앤티크 한 디자인으로, 헌책방거리의 문화와 역사를 잘 담아낸다. 여기 이 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든 산증인은 바로 헌책방 운영자다. 이들은 '책을 파는' 상인을 넘어 '책과 사람의 시간'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이 지켜온 헌책방 이야기가 궁금했다.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학 고서적 전문 헌책방'을 찾았다. 그 곳에서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헌책방 세상'을 만났다. "무슨 책 찾으세요?" 평화시장 1층은 헌책방들이 모여 있다. 좁은 공간 탓에 책들은 보도까지 자리를 차지하였다. 지나가다 방대한 책 탑들이 궁금해 다가가면, 손이 책에 닿기도 전에 바로 저 한마디가 떨어진다. 만일 상현서림 이응민(51) 대표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저 말은 흔한 '호객행위'라 판단했을지 모른다.
2대째 상현서림을 운영중인 이응민 대표

2대째 상현서림을 운영중인 이응민 대표

이응민 대표는 1977년부터 운영하던 아버지에 이어 지난 2000년, 헌책방을 물려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헌책방 자부심은 그대로 이어받되, 판매방식은 시대흐름을 따르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 차선책은 온·오프라인 판매였다. 운영 초기, 그의 온라인 판매 시작은 '인터넷 경매쇼핑몰'이었다. 해당사이트에 책들을 올렸는데, 찾는 이용자들이 많아 매장 수입의 2배를 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 지속하다 높은 수수료 때문에 접은 뒤, 현재는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 교보문고 중고장터만 주력하고 있다. 운영 초기 시대 흐름에 맞춘 판매방식 덕분에, 그나마 오늘까지 현상유지는 가능했지만, 그의 고민과 어려움까지 덜어진 건 아니었다. "가업을 잇는다는 책임감이 가장 컸어요. 헌책방 운영이 어렵지만, 내 대에선 끊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지금까지 제가 버터 온 이유죠. 점점 헌책방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요. 매장은 세 자체가 비싸고 평수도 좁아 소장 중인 1만 5천권을 다 보관할 수 없어요. 그래서 따로 창고를 마련하여 나머지 책들을 보관중이예요. 인터넷에서 주문 들어 온 건 창고에 보관된 책들로 판매되고 있어요. 현재 실질적 매출은 매장보다 인터넷인데, 그렇게 판매된 매출은 창고비와 현재 운영유지비에 쏟아 붓죠. 그러다 보니 늘 타산이 맞지 않아요"
온, 오프라인으로 헌책을 판매하느라 하루가 늘 바쁘다

온, 오프라인으로 헌책을 판매하느라 하루가 늘 바쁘다

이 대표는 늘 하루가 모자라다. 매장 문을 여는 시간은 오후 12시. 예전엔 10시에 열었으나, 오전 8시쯤 집에 나와 창고에서 11시까지 인터넷 주문과 정리, 청소를 한다. 매장에선 인터넷 주문 발송 작업과 방문 손님들을 상대한다. 그 뒤 오후 6시가 되면 매장 문을 닫지만, 그는 다시 창고로 와서 남은 작업을 한다. 그렇게 하루일과는 저녁 11시가 돼야 끝난다. 매장은 주 6일 문을 열지만, 그는 일요일도 휴식을 반납한 채 인터넷 주문 작업을 한다. 그도 가끔 이런 생활에 눈물 날 때가 많다고 전했다. 더 힘든 건 이렇게 작업함에도 상황이 나아지기 보단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헌책방 자부심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무엇보다 자신보단 좋은 작가를 양성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우선임을 강조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헌책방은 문화사업이라 말씀하셨어요. 헌책방거리 존재 가치가 인정되고 동시에 다른 지역 사업도 함께 성장하는 대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전에 먼저 공공기관이나 민간이 힘을 합쳐 좋은 작가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현재 온·오프라인으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헌책방에 진열할 수 있는 책은 몇 권 안돼요. 즉, 헌책방에 꽂을 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를 발굴해야죠. 대중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책을 말하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좋은 작가를 만들어내는 여건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책을 읽고, 찾는 문화가 조성됩니다." 그는 헌책방은 감각이 뒤따라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각이란 정확히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말했다. 그만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책방 운영자로서 책을 선별하는 방법은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했다. 답은 바로 '헌책방거리'에 있었다. "하루 종일 매장에서 지나가는 혹은 구경 온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죠. 이들에게 직접 궁금한 점을 물어봐야 해요. 그들이 말한 사소한 것을 기억해둬야,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요.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해요." "무슨 책 찾으세요?" 이젠 헌책방 거리에서 책을 살필 때 더 이상 이 질문 앞에 머쓱해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건넨 한 마디는 어떻게든 책을 팔려고 붙잡는 게 아닌, 헌책방을 지키고자 '시대에 필요한, 가치 있는 책'을 발견하는 감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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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다시 살아나는 헌책방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이나미 생산일 2014-10-10
관리번호 D0000041752862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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