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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끔찍한 성공을 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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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월

"최근 끔찍한 성공을 한 적이 있습니까?"

--칼 융(Carl Gustav Jung)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47

언젠가 유명기업의 임원이 미국으로 향해 가는 국적기 안에서 벌인 소동이 큰 화제가 되었다. 비즈니스석에 탑승하자마자 온갖 불평과 욕설을 거듭한 그는 첫 번째 식사 시간이 되자 밥이 설다, 라면이 설익었다, 짜다 등의 이유로 퇴짜를 놓았고, 마침내는 스프가 반만 들어간 라면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접시와 냅킨 등을 통로로 내던졌다. 단순한 불평불만을 넘어선 생트집은 두 번째 식사 시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미리 주문한 양식을 거부하고 다시 라면을 요구한 그는 담당 승무원에게 자기를 무시 하냐며 갖고 있던 책의 모서리로 눈두덩을 때렸다. 진상을 묻는 사무장에게는 자신이 책을 들고 있는데 승무원이 와서 부딪혔다는 기막힌 변명을 했고, 결국 기장의 신고로 미국 땅을 밟자마자 FBI에 인계되었다.

이러한 '희대의 진상'의 활약이 알려지자 여론의 맹비난이 쏟아졌고, 그가 속한 기업의 주가가 폭락했을 뿐더러 윤리경영과 윤리기업이라는 모토로 직원을 교육시켜온 기업의 이미지까지 덩달아 바닥에 떨어졌다. 미국의 방위산업체 레이시언의 CEO 빌 스완슨이 소개한 <웨이터 법칙>--식당에서 어떤 사람이 웨이터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펴보면 평소 성격과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웨이터에게 매너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적합하다는 법칙--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라면 상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그가 임원으로 승진한 것이 사건이 일어나기 고작 한 달 전이라는 사실이다.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융은 자신의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들에게 종종 성공의 경험에 관해 질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융은 개인의 무의식에서 그림자(shadow)를 발견한 학자로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의 긍정적 측면 이면에는 반드시 이에 수반되는 부정적 측면,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자란 스스로 외면하거나 숨기고 싶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하여 외면적으로 크게 성공할수록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도 더 커진다.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달성하기까지는 남들이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어떤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남들처럼 놀고 쉬고 즐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 절제와 완벽주의, 이기심과 타협, 죄책감과 우월감 따위가 좁은 마음속에서 복마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고 나면 만족과 충만감을 느끼기보다는 보상 심리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인정과 대접을 받으려 하고, '패자'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보다는 비웃으며 경멸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임원 승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렸던 그가 원한 것이 결국 라면 한 그릇이었을까? 짜지도 싱겁지도, 식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토록 밍밍하고 미지근한 성공의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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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4-10-31
관리번호 D000004175331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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