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부동산’은 더 이상 살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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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jet96

열흘 만에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이고, 여섯 달 만에 버리는 집이 제비집이며, 한 해 만에 버리는 집은 까치둥지이다. 그렇지만 그 집을 지을 때 어떤 것은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고, 어떤 것은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며, 어떤 것은 풀과 볏짚을 물어 나르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모지라져도 지칠 줄 모른다.

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러한 짐승들의 지혜를 얕보아서 그 삶을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도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에 먼지가 되고 마는 것이니, 우리 인간들의 집짓기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정약용 <만일암을 중수하는 데 대한 기문>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7

이사를 준비 중이다. 진학하는 아이를 좇아 말마따나 삼천지교(三遷之敎)를 했다가 졸업과 함께 떠난다. 전세 대란(大亂)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요즘의 형편에 살고픈 곳을 선택하는 것마저 사치라 떠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것도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옮길 집을 얻지 못해 기한을 맞춰 나가느니 못 나가느니 또 한바탕 난리다. 거처를 옮길 일이 불분명하니 심란하고 어수선하다. 발밑에 바스러지기 쉬운 땅을 아슬아슬 딛고 선 것만 같다.

영어에서 하우스(house)와 홈(home)으로 나뉘는 말이 우리에게는 '집'으로 하나다. 집은 추위나 더위,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모여 생활하는 집안이기도 하다. 너른 의미에서 사람이 살아나가는 터전, 즉 '살터'이자 '삶터'이다. 집이 없으면 고스란히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집이 없으면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절박한 삶의 근거지에 언제부터인가 또 하나의 막중한 의미가 덧붙여졌으니, 바로 '부동산'이다. 집이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 그러니까 지진이나 화산으로 땅이 뒤집혀버리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하고 영구적인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시인들은 여러 채의 동굴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깊고 따뜻한 동굴이라도 하룻밤에 두 곳, 세 곳에서 잠들 수는 없다는 간명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부동산'은 더 이상 살터이자 삶터가 아니다. 내가 살지 않는 곳에 남들을 살게 하고, 내가 들어가 살 계획이 전혀 없는데도 값이 껑충껑충 뛰기를 바라며 '투자'하는 곳이 되었다.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짓지만 그 소용이 닿는 기한은 열흘뿐. 제비는 침으로 진흙을 이겨 집을 짓지만 여섯 달이면 허물어진다.(물론 그 사이에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 인간에게 통째로 집을 빼앗길 위험도 있다.) 까치는 온종일 분주하게 풀과 볏짚을 물어 날라 둥지를 짓지만 그 또한 일 년을 버티기 힘들다. 그럼에도 온힘을 모아 집짓기에 길지 않은 삶을 바치니, 인간은 저희가 지은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에 비해 헐후하기 그지없음을 비웃는다. 하지만 '부동산'에 열광하며 그것의 있고 없음에 울고 웃는 인간이 이른바 미물들과 다를 바 무언가?

기실 집은 고단한 삶에서 휴식을 도모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거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방이 천 칸이라도 밤에 누울 자리는 여덟 자뿐이라는 진실은 아득한 조상들이 동굴을 찾아 헤매던 그때와 하등 다를 바 없으니, 먼지 속에서 먼지의 거처를 좇는다. 삶은 무겁고도, 하냥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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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더 이상 살터가 아니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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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5-01-09
관리번호 D000004175288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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