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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가 '쇼'를 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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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79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른바 '쇼닥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에 본격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의사협회에서도 쇼닥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향후 '쇼닥터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쇼닥터란 의사협회에서 만든 용어로 방송활동을 하는 의사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는 '닥터테이너(Doctor+Entertainer)'란 신조어로 불렸었고, 더 넓은 범위로 메디테이너'(Medical+Entertainer)라는 단어도 사용됐었다. 꼭 의사가 아니어도 음식전문가, 운동전문가, 자연치유전문가 등 많은 전문가들이 TV에서 건강정보를 전해주는 시대이기 때문에 메디테이너가 가장 적당한 단어일 수 있지만, 의사협회에서 쇼닥터란 단어를 제시하면서 요즘엔 이 말이 많이 통용되는 분위기다.

의사협회가 단어까지 만들면서 관련 조사에 나서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대응에 나선 건, 건강정보 방송프로그램들에 그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 케이블 채널, 종편 등에 의사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2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채널이 많아지면서 보다 저렴한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포맷을 모두가 시도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전문가들의 정보제공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끈 것은, 고령화된 시청자층이 건강정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중장년 시청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건강정보를 자극적으로 선보이게 됐다.

한 프로그램에선 의사가 나와 "물구나무서기를 하게 되면 발모에 효과가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발모차와 발모팩의 효능을 강조했는데, 그는 사실 발모팩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정말로 발모효과가 있는 약물을 발명했다면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힐 일인데, 그런 정도의 엄청난 주장까지 과학적 뒷받침이 미약한 상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사는 토크쇼에서 "유산균 처방으로 불임이었던 부인이 한 달 뒤에 임신이 됐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며 홈쇼핑에선 건강보조식품을 팔았다. "밀가루를 잘못 먹으면 뼈가 녹는다"는 위협적인 주장도 나왔고, 한 프로그램에선 어떤 약초가 병원에서 처방하는 항암제보다 효능이 만 배 뛰어나다며 '만 배!'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이렇게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극적인 말들로 시청자의 이목을 붙잡아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들이 범람한다. 시청자들은 TV에 나와 이런 말을 하는 의사들을 의학 권위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작진은 의학 권위자가 아닌, 외모가 뛰어나고 말을 자극적으로 잘 하는 사람을 섭외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시청자가 속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요즘엔 심지어 의사들이 돈을 내고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졌다. 방송제작비를 출연 의사들이 댄다는 것이다. 방송프로그램이 몇몇 의사들을 위한 CF가 되는 셈이다. 일부 대형전문병원에선 아예 방송홍보 전문직원까지 뽑아서, 대본까지 기획해가며 프로그램들을 접촉한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나오는 방송까지 시청자들은 검증받은 명의의 의학정보라고 믿으며 시청하고 있다.

방송에 나온 의사를 믿고 환자들이 밀려드는 한 전문병원에선, 같은 증상에도 종합병원보다 훨씬 많은 진료비를 받으며 복잡한 시술을 시행한다고 알려졌다. 그 시술엔 부작용의 위험성도 크다고 한다. 신해철 사망사고를 일으킨 의사도 TV에 계속 등장하는 쇼닥터였다. 요즘엔 일반예능에도 의사들이 나와 연예인과 함께 토크를 하면서 부지불식간에 피부시술, 성형시술, 위밴드시술 등의 안정성을 홍보할 때가 많다. 그런 시술들엔 모두 막대한 비용과 높은 위험이 따르는 데도 이런 부분에 대한 세심한 안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방통위와 의사협회에서 모두 나서는 것이지만, 워낙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어서 쉽게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다. 시청자의 지혜로운 대처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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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가 '쇼'를 하는 시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1-13
관리번호 D000004175303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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