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잠보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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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잔다는 것은 결코 보잘 것 없는 기술이 아니다. 다음날 깨어있으려면 잠을 자야 한다. |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7
니체는 잠을 잘 잔다는 것을 일종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잠보에게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무능력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나는 급속도로 무능해졌다. 애당초 어딘가에 머리만 기대면 잠드는 강철 신경의 행운아는 아니긴 했지만, 말뜻 그대로 시절을 다시 고치기(更年) 위한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지 전에 없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리에 들고서 시간이 갈수록 눈이 말똥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부쩍 얕아진 잠 때문에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어나 뒤척이는 게 더 큰 고통이다. 기어이 수면제 처방을 받아야 하나, 민간요법을 써 볼까나... 이런저런 궁리로 뿌덕뿌덕한 새벽을 맞는다.
불면의 밤에는 소화되지 않은 지난 시간이 물밀어든다.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일, 화해하지 못해 부대낀 기억, 명랑하고 활기차게 보내지 못한 일상. 새삼스러운 후회와 걱정과 부끄러움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못해 ‘이불 킥’까지 하게 된다. 실로 덕을 갖추지 못한 것이 불면의 원인인 양 걱정의 실타래와 후회의 눈덩이를 굴린다.
어여쁜 우리말 중에 ‘꽃잠’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는 ‘깊이 든 잠’ 혹은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아이 때 우리는 그렇게 꽃처럼 잠을 잤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잠을 줄여가며 할 일이 늘어났고, 한때는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 따위의 말로 잠을 저지당하기도 했다. 니체의 말과 정 반대로 잠을 잘 자는 게 수치스럽고 졸음을 이겨내는 게 능력처럼 느껴지던 행복의 전도, 일상의 붕괴였다.
도시의 밤은 너무 밝고 삶은 너무 복잡하기에 꽃처럼 평화로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세상에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일상에 무능해져버린 죄로, 오늘도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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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정보
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콘텐츠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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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김별아(소설가) | 생산일 | 2016-03-25 |
관리번호 | D0000041753835 | 분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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