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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부족한 건 '노오오오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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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시민작가 이상윤

강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18

누군가는 아파야 젊음이라 하고, 누군가는 아프면 환자지 어찌 젊은이냐고 반박하지만, 유달리 젊음이 고단하고 아픈 시절임은 분명한 듯하다.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익명의 젊은이들이 내뱉는 생목의 소리를 듣노라면 그것은 비명이거나 절규일수조차 없어 꿍꿍 윽박는 신음이기 일쑤다.

세대로 분류한 병적 증상 중에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중2병’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자의식이 반항과 허세로 표출되는 질풍노도의 질환이다. 하지만 ‘중2병’이야말로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의 통과의례, 성장통이다. 잘 앓고 내성이 생겨야 앞으로의 멀고 긴 삶을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그조차 제대로 앓아낼 여력이 없다. 입시경쟁에 내몰린 채 학교와 학원에 시달리다 보니 방황이라 해봤자 엄마 몰래 학원 땡땡이 치고 PC방에 가는 수준이다. 그리하여 무균실 아닌 무균실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나서 ‘무사히’ 대학에 안착한 후, 어리보기 같은 신입생 시절을 보내고 나면 ‘대2병’이 찾아온다. 한편으로는 취업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회의감에 빠져드는 모순의 상태다.

하지만 취업 ‘스펙’을 쌓느라 죽도록 고통 받는 대학 3학년의 ‘사망년’까지 모두 지나서 마침내 원하던 직장에 입사하고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직장 3년차 병’을 앓으며 이직과 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회사의 네임 벨류(name value), 연봉, 연고지 등의 현실적인 조건에 더하여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뒤늦은 방황을 부추긴다. 일과 직업 자체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 혹은 돈벌이 앞에서는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먹고사니즘’에 등 떠밀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중독 상태를 자랑삼고 ‘요즘 젊은 것들’의 해이한 정신 상태에 혀를 차는 구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세대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기 전에 후회하는 다섯 가지(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의 연구에서 두 번째로 선정되었던 덕목이 바로 일을 너무 많이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고민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돈과 직장에 삶을 희생시키지 않는 ‘상식적인’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의사와 변호사와 공무원에 적합할 리 없다. 남의 구두를 신고는 아무리 꽃길을 걸어도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늦어도, 그때가 언제라도, 더 깊이 방황하고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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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6-04-01
관리번호 D000004175383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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