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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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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뉴시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25) :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손님, 목련

지난 주 초봄답지 않은 이상고온 덕에 벌써 봄꽃들이 다 피었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다 보기 좋지만 올해 집 주변에는 유난히 목련이 탐스럽게 핀 듯하다.

목련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볼 때는 희고 풍성한 꽃잎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지고 나면 갈색으로 어두워진 꽃잎이 나무 아래 산산이 흩어져 있는 것이 참으로 서글퍼 보이기 때문이다. 활짝 핀 목련을 봐도 꽃이 져버렸을 때 생각이 나고, 이미 진 꽃을 봐도 활짝 피어있을 때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만나는 순간은 반갑지만 이미 헤어질 때 그다지 좋지 않은 기분이 들 걸 알고 있는 친구라고나 할까.

이런 서글픔 때문인지 목련을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표현한 전설도 여기저기 전해진다. 옛날에 예쁜 공주가 살았는데, 공주는 북쪽 바다의 신을 사모했다. 하지만 공주의 부모는 공주가 북쪽으로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는 부모 몰래 궁을 빠져나와 천신만고 끝에 결국 북쪽 바다에 도착했지만 아뿔싸, 바다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실망하고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절망한 공주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신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공주의 넋을 달래기 위해 공주를 묻은 뒤 원래의 아내도 영원히 잠자는 약을 먹여 그 옆에 묻고 홀로 외롭게 살았다. 얼마 후 공주의 무덤에서는 하얀 목련(백목련)이, 원래의 아내가 묻힌 무덤에는 붉은 목련(자목련)이 피어났다. 이 목련들에게는 아직도 북쪽 바다신을 사모하는지 꽃봉오리가 항상 북쪽을 향해 맺혔다고 한다. 목련을 북향화(北向花)라고도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목련만큼이나 씁쓸한 이야기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철없는 공주야 불쌍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잘 살다가 갑자기 영원히 잠자게 된 원래 부인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도 한반도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목련을 귀하게 여겼던 것 같다. <삼국유사>에 목련에 대한 첫 기록이 등장한다. 김수로왕은 가야의 시조인데 즉위한 지 7년 되도록 배필을 구하지 않자 신하들이 장가 좀 가라고 간청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왕은 “하늘의 뜻이 곧 있을 터이니 경들은 너무 걱정 말라”며 점잖게 거절했다. 과연 얼마 후에 서쪽 먼 바다에서 붉은 돛을 단 배 한 척이 가야국을 향하고 있는 것을 가야국 사람들이 발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이도록 했다. 배에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허황옥 공주가 타고 있었고 그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목련이 황후같이 중요한 손님이나 소식을 맞이할 때 사용된 귀중한 꽃이자 나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빠르게 따뜻해진 날씨에 올해 목련은 아마도 1~2주 사이에 모두 져버리지 않을까 싶다. 순식간에 씁쓸함을 남기고 가버리는 귀한 손님이라니 목련에 대한 아쉬움만 커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새하얀 목련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벌써부터 바라는 이 마음은 대체 뭐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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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최순욱 생산일 2016-04-06
관리번호 D000004175384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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