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임신한 올케에게 공적 마스크를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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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 힘들지 않아?”

“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괜찮아요. 둘째는 큰 애랑 달리 태동이 심하네요.”

요즈음 우리 가족 중 특히 걱정이 되는 사람,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올케다. 보통 사람들도 외출하기 겁나는데 임신부인 올케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얼마 전 다른 임신부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에 부모님도 무척 염려하셨던 터였다. 수직감염(태아에게 옮겨지는 감염)이 되지 않을 거라는 뉴스에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올케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몇 달 전, 아기를 가졌을 때의 기쁨이 낳을 무렵 불안으로 바뀌게 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온라인 예배 보면서 겸사겸사 태교를 하고 있어요. "

"위기 속에서도 잘 자라준 아기니까 더 강하게 자라날 거야. "

올케의 살짝 숨찬 목소리조차 신경이 쓰인다. 올케는 배가 불러 그렇다며 안심을 시킨다. 그러면서 큰 조카가 어려 집에서 온종일 놀아주려니 뭔가 좋은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다. 오래된 국수 놀이를 비롯해 신문지 뭉치기, 털실 놀이 등 몇 가지를 알려주고, 더 말하기 힘들까 싶어 빨리 끊었다. 왠지 짠하다. 심심해하는 큰 조카도, 몸이 무거운 올케도, 뱃속에서 발길질을 힘차게 하는 아기도 모두 눈에 밟힌다. 같은 서울이라 해도 가깝지 않으니, 이래저래 만나기 쉽지 않은 것도 걸린다. 주말에 잠깐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안전 안내 문자에서 알려주는 공적 마스크 문자. 공적 마스크 앱, 지도에 재고가 나타난다.

안전 안내 문자에서 알려주는 공적 마스크 구매 대상 문자. 공적 마스크 앱, 지도에 재고가 나타난다.

변함없이 오늘도 아이들과 집콕하리라고 마음먹은 그때. 아침에 온 마스크 알림 문자가 생각났다. 재택 근무 중이라 그나마 있던 회의마저 온라인으로 대체되니, 날짜 감각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된 것도, 금요일이라 출생연도가 5로 끝나는 내가 해당되는 첫날인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일찍 도착한 문자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주민등록증을 챙겨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봄은 찾아온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봄은 찾아온다 ©김윤경

오랜만에 보는 하늘은 유난히 화창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동안에도 조금씩 봄이 오고 있었다. 그동안 계절의 변화를 당연하듯 받아들였던 걸까.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의 소식이 올해는 어쩐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어쩌면 코로나가 있었기에 새삼 알게 된 것들이 아닐까 싶다. 문득, 평소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전화라도 걸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 문에 마스크가 다 팔렸다고 쓰여 있다

약국 문에 마스크가 다 팔렸다고 쓰여 있다 ©김윤경

그러다 보니 약국에 도착했다. 종종 가던 약국이었는데, 이미 마스크는 다 팔린 듯싶다. 밖에 써 붙인 '품절' 종이를 보고 돌아서며 생각이 났다. 마스크 재고를 알려주는 앱이 있었다는 걸 또 잊었던 거다. 그제서야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앱을 살펴보고 다른 약국을 찾았다.

아쉽게도 오늘 마스크는 모두 팔린 듯하다

아쉽게도 오늘 마스크는 모두 팔린 듯하다 ©김윤경

텅 빈 거리, 사람들 없는 한적한 오후이다. 모두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쓸쓸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함께 기다리는 응원을 보내본다. 간만의 외출인데다가 날이 좋기에 천천히 거닐고 싶었지만,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날이 좀 더 빨리 오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먼 발치에서도 마스크를 사기 위한 긴 줄이 보인다

먼 발치에서도 마스크를 사기 위한 긴 줄이 보인다 ©김윤경

공원 근처 약국을 찾아가니 저 멀리 사람들 줄이 보였다. 약국에서는 마스크를 팔고 있는 듯했다. 2개를 구입하고 돌아왔다. 온라인에서 마스크를 구입했던 이후 처음 사는 마스크라 신기했다. 큰 아이 역시 오늘이 구입하는 날이라 청소년 증을 들고 오라고 할까 망설이다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무래도 급한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할듯싶다. 토요일은 평일에 사지 못 한 사람들에게 판매한다지만 우리 집은 더 필요한 이들을 위해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공적마스크를 사고 돌아오니 더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공적마스크를 사고 돌아오니 더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김윤경

마스크를 사고 아파트에 들어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놓인 손 소독제가 보여 한 번 더 사용했다. 이런 조그만 배려는 누가 한 걸까. 지친 마음에는 소소한 챙김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리라.

마침 서울시에서 25개 자치구 모든 임신부에게 마스크를 1인당 5매씩 나눠준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통화하면서 올케는 가까운 곳도 나가기 겁난다고 했다. 나 역시 임신했을 때 약을 먹지 못하니 체하거나 가벼운 감기도 걸리지 않도록 주의했었다. 스트레스 받을까봐 태교를 더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은 더 좋지 못한 상황이라 임신한 올케가 안쓰러웠다.

약국 앞에 마스크를 기다리는 줄이 보였다

약국 앞에 마스크를 기다리는 줄이 보였다 ©김윤경

임신부 마스크는 16일부터 순차적으로 임신부가 많은 자치구구부터 배송, 동 주민센터에 신분증과 산모 수첩(임신 확인서)을 가져가 직접 수령하거나 대리 수령을 할 수 있다. 또 방문이 어려운 임신부는 신청을 하면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을 통해 집에서도 받을 수 있다. 세부적인 시기와 방법은 각 해당 자치구 보건소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올케에게도 얼른 알려줘야겠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푸른 봄이 찾아오듯, 곧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푸른 봄이 찾아오듯, 곧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김윤경

올해는 여러모로 기운을 북돋아야 할 봄이다. 각자 집에 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함께 하는 게 중요한 시기다.

좀처럼 아기 울음소리 듣기 어려운 저출산 시대, 조카가 올케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모쪼록 아기가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한 발을 딛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케를 비롯한 모든 임신부가 건강한 게 우선 아닐까. 조금은 불편해도, 갑갑해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지내온 아기의 힘찬 울음을 들으면 그동안 고생이 싹 가실 것 같다.

아기와 처음 만나는 날에는 마스크 없이 편하게 숨 쉴 수 있을까. 조카의 눈에 비친 첫 세상은 모든 이의 환한 미소 그대로 보이길 소망한다. 또 그것이 세상에 태어날 아기들에게 줄 첫 선물이길 바라본다. 아무래도 오늘 구매한 공적마스크는 주말, 임신한 올케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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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올케에게 공적 마스크를 양보했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윤경 생산일 2020-03-17
관리번호 D000003957101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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