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7번방의 선물' 예승이가 살던 '개미마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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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맙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주인공인 용구가 딸 예승에게 하는 말이다. 용구가 살던 작은 마을, 개미마을은 서울 서대문구 세검정로4길 100-22에 위치한다. 홍제역에서 7번 마을버스를 타고 인왕산 자락까지 올라가야 있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다. 개미마을은 화려한 벽화가 있어 낙산 이화동, 통영 동파랑과 함께 출사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과거엔 천막과 판잣집이 즐비한 ‘인디언 촌’으로 불리던 마을이었다. ‘인디언 촌’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개미마을이 되기까지, 그 역사와 마을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오갈 곳 없던 사람들은 미군이 버린 천막을 주워 집을 만들었다. 야산에 천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인디언 마을 같다고 해서 ‘인디언 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사람들은 천막 위에 판자를 올리며 새로운 판잣집을 만들었다. 무허가로 지어진 이 판잣집들은 1984년부터 토지세를 내며 땅을 불하받았다. 이 과정에서 개미마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직접 만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는 의미였다.
개미마을을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다만, 마을을 걸어서 들어가기엔 멀고 힘들다. 홍제역에서 7번 버스를 타면 쉽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종점에서 내린 뒤 천천히 내려오며 마을을 구경하면 된다. 개미마을을 모두 둘러보는 데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길어야 3시간 안팎이다. 그 속에서 개미마을의 재미를 잘 찾아보아야 한다.
불편하지만 안락한, 둘도 없는 벽화마을
개미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벽화들이 반겨준다. 벽화는 2009년 서대문구와 금호건설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진행했다. 성균관대·건국대·추계예술대·상명대·한성대 5개 대학의 미술학과 학생들 128명이 모여 총 51개를 그렸다. 주제는 환영·가족·자연 친화·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5가지였다. 2012년에는 종근당 고촌재단 장학생 70여 명이 와 새로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벽화가 만들어지기 전, 주민들은 재개발과 토지 매각 문제 등으로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이때, 벽화를 그리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마을의 원로들은 해묵은 갈등을 풀고 마을을 화사하게 만들자는 의견을 내었고, 주민 대부분이 동의했다. 결과는 엄청났다. 비방으로 둘러싸였던 벽들은 예쁘게 다듬어졌고, 이웃 간에 겪었던 오해와 갈등은 모두 녹아내렸다.
주말이면 벽화를 찾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마을에는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게 어색했던 마을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 속 말벗이 되며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개미마을이 벽화마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겨울철 개미마을에 방문하면 연탄 태우는 냄새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개미마을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기름이 비싸 아직도 많은 집이 연탄을 쓴다. 겹겹이 쌓여있는 연탄을 보면 이번 겨울을 잘 보내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행히도 매년 연탄을 기증하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연말에 여러 단체에서 연탄 봉사를 가는 마을 중 하나가 바로 개미마을이다. 연로한 주민들을 위해 많은 분이 도움을 주고 있다.
개미마을엔 제대로 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집이 많지 않다. 대부분이 재래식이다. 공용화장실이 있지만 인왕산 입구에 있어 너무 멀고 높아 가기 쉽지 않다.
허름해 보이는 개미마을은 어느 마을보다도 끈끈한 인심을 자랑한다. 무심히 놓여있는 화분, 장독대와 삶이 묻어나는 빨랫줄이 한데 어우러져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큰 집이 있는 화려한 도시와는 다른 따듯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화려한 벽화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 개미마을. 이제는 마을의 거주민들이 먼저 나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시작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인왕산 입구에 공원을 만들고, 등산로와 메타세쿼이아 숲길도 조성했다. 거주민 다수가 노인이라 마을 밖을 벗어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버 카페와 공동 작업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마을 사람은 일을 하며 이웃과 머리를 맞댈 방법으로 작은 공터에 텃밭을 일구고, 함께 모여 음식을 했다.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 모습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인다. 내 손으로 일군 마을과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개미마을
전후 인디언 촌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벽화마을이 되기까지, 개미마을은 홍제동, 더 나아가 한국 역사 그 자체이다. 지금은 벽화로 유명하지만, 개미마을은 고난을 겪던 시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며 한국을 지탱한 대들보들이 살던 곳이다. ‘노인 한 사람은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다’라는 말이 있다. 개미마을은 현재를 사는 ‘역사’와 미래를 사는 ‘우리들’이 함께한다.
지금은 주인이 떠난 빈집도 많지만, <7번방의 선물> 속 용구와 예승이처럼 밝은 미소로 인사하던 가족들이 살던 동네.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이 닿는 곳. 따듯한 인심과 정이 남아있는 이곳. 개미마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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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 내손안에서울 | 제공부서 | 뉴미디어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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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시민기자 강동호 | 생산일 | 2019-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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