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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추억 속에서 돌아가는 삼각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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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입가에 맴도는 그 시절의 노래

삼각지역 대합실 안 배호광장에서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배호의 동상 뒤로 쉼 없이 노래가 흘러나온다.‘삼각지 로터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촉촉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연인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마음을 끊어질 듯 탄식에 가깝게 표현한 배호의 노래는 지금도 듣는 이의 마음을 애절하게 한다. 노래가 발표된 이듬해인 1967년 12월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에는 폭 7.5~15m, 총연장 1,085m의 4방향 입체교차로가 등장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을 만큼 큰 관심 속에 국내 최초로 건설된 시가지 내 입체교차로는 클로버형으로 공중에 교량을 건설, 차량들이 신호 대기 없이 도로를 통과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처음으로 탄생한 회전하는 입체교차로인지라 우스운 일도 왕왕 일어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이곳을 돌다가 방향 감각을 잃어 엉뚱한 길로 내려간 일이 허다했고, 한 바퀴 돌 때마다 일 년을 더 산다는 말이 돌아 시골 노인을 태운 관광버스는 이곳을 7번은 기본으로 돌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삼각지’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배호는 채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1971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가는 입체교차로 또한 27년간의 세월을 마감하고 1994년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맴돌고 있으며 ‘삼각지’라는 지명은 지하철 4·6호선의 교차역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실력 있는 무명 화가들이 모인 곳, 삼각지 화랑가

삼각지에 화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사동이나 청담동처럼 고급 화랑은 아니지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그림을 생산하는 화랑이 밀집해 있다. 삼각지 화랑가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을 따라 그들에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주던 화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표구점이나 액자 전문점도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화랑가의 명맥이 이어져 삼각지에는 지금도 수십여 곳의 화랑, 표구점, 액자 상점 등이 영업 중이다. 이렇게 많은 화가와 화랑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각지는 미술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명 화가들이 저렴한 그림을 그려내다 보니 삼각지 그림을 ‘싸구려 그림’이라 폄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각지 사람들은 삼각지야말로 학력이나 인맥이 아닌 순수한 재능으로 살아남은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말한다. 삼각지 그림은 한때 수출 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1970년대 초부터 10여 년간 미국에서 거래되었던 대중적인 그림의 상당수가 삼각지에서 수출된 그림이었다. 이후 이들 그림이 국내 식당이나 이발소 등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삼각지 미술이 이발소 그림과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도 대로변 안쪽 골목에서 마주하는 삼각지 화랑가의 그림들은 여전히 조금은 촌스럽고 유치하다. 그런데도 자꾸 눈이 가고, 보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볼수록 편안하고 정겨운 그림들이 있는 곳, 바로 삼각지 화랑가다.

추억의 맛이 모인 골목

삼각지는 서울의 오랜 미식가들에게 사랑 받는 먹자골목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대구탕 골목. 이곳은 군인들 사이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다. 육군본부나 국방부에 근무한 군인들 중 이곳에 들르지 않은 이가 없고, 이곳에 들렀다가 전후방으로 전출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삼각지의 대구탕 골목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값이 좀 올랐지만, 한때 백반 수준의 값에 옆 탁자 손님과 등을 맞붙인 채 땀 흘려가며 바글바글 끓여 먹던 대구탕 맛은군인들은 물론 직장인들의 한 세기를 받쳐주던 추억이 됐다. 삼각지에서 유명한 먹을거리는 대구탕만이 아니다. 특히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번갈아 가면서 나와 생선을 굽는 한식당은 일단 그 냄새를 맡으면 들어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서울 시민의 휴식처, 용산가족공원 & 국립중앙박물관

삼각지와 이웃한 곳에는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인 용산가족공원이 있다. 옛 미군사령부의 골프장 녹지를 활용한 공원으로 넓은 잔디밭과 작은 연못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이 공원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흙길인데, 아스팔트나 시멘트 인도만 걷던 서울 시민들에게는 그 자체로 포근한 휴식처가 된다. 용산가족공원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한다. 2005년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미술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구석기시대의 손도끼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회화, 근대의 사진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삶, 그리고 예술이 한곳에 모여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예술 작품은 물론 박물관 건물 자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건축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건축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 건축의 고유 공간인 대청마루를 상징한 열린 마당과 건물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바람 길은 또 하나의 대형 액자가 되어, 한 폭의 살아있는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2014년 여름, ‘돌아가는 삼각지’의 주인공 가수 배호는 없다. 많은 전설을 남긴 입체교차로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애절한 그의 노래는 여전히 들려오며, 맛이 있고, 사람이 있고, 켜켜이 쌓인 먼지 같은 세월의 풍경을 지닌 삼각지의 골목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글 이현주(자유고기가) 사진 이서연(AZA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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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추억 속에서 돌아가는 삼각지의 기억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8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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