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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장소와 사람, 시간과 공간으로 매듭지어진 동네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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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 있으면서도 느리고, 소박하면서도 젊은 예술인들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 골목길에 들어서면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날 것만 같고, 발길 닿는 곳곳마다 ‘그리움과 추억’의 공간이 자리하는 동네. 장소와 사람, 시간과 공간으로 매듭지어진 혜화동을 걸었다.

청춘이 살아 있는 문화의 거리, 대학로

대학로는 언제나 인파로 가득하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이화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대학로는 스펙트럼이 넓은 동네다. 그저 공연의 메카가 아니라, 그 너머로 꽤 다양한 문화가 겹쳐 있다. 마로니에공원은 대학로 공연 문화의 시작을 함께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클래식 대학로’라 할 수 있다. 옛 서울대 문리대 터였던 마로니에공원은 각종 문화 행사와 전시, 글짓기 대회 등을 연이어 개최하면서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비보이, 길거리 악사의 거리 공연이 수시로 펼쳐지며, 화창한 오후엔 길거리 농구를 즐기는 젊은이 무리도 공원을 가득 채운다. 지하철 4호선 1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동숭길은 대학로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지역이다. 동숭아트센터, 학전소극장을 비롯해 최근 새로 생긴 여러 공연장과 연습실 등이 대학로 공연 문화의 확장을 이끌고 있다. 책·음악·디자인 등을 테마로 한 문화 공간도 도처에 자리 잡고 있어 열기와 땀으로 채운 수많은 공간에서 청춘을 만끽할 수 있다.

반세기의 역사가 서린 학림다방

대학로 대로변에 자리한 ‘학림다방’은 1956년에 처음 문을 연 뿌리 깊은 찻집이다. 가게 이름도 서울대 문리대의 옛 축제명인 ‘학림제’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 1988년부터 써놓은 방명록에서는 김승옥·황석영 등 명사들의 글귀도 만날 수 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면 옛날의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LP판, 잔잔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베토벤 흉상, 다방의 역사와 함께 세월을 보낸 낡은 인테리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세월의 무게가 전해진다. ‘학림’은 단순히 옛 추억의 명소뿐 아니라 커피 마니아들이 맛으로 손꼽는 커피 집으로도 소문나 있다. 이곳에서 추억의 구름을 얹은 카푸치노 한 잔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지나간 젊음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만나게 된다.

서울의 몽마르트르, 낙산공원

마로니에공원 뒤로 이어진 가파른 골목길을 지나면 전망 좋기로 유명한 낙산공원 성곽길에 닿는다. 낙산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꽤 가파르다. 길이 깔려 있을 뿐이지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경사다. 대학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은 파리 몽마르트르와 닮은 점이 많다. 몽마르트르 아래에 물랭루즈가 있듯이 낙산 주변에는 대학로의 수많은 공연장이 있다. 몽마르트르에 다양한 미술가들이 있는 것처럼 낙산 언덕길에는 개성이 느껴지는 조그만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손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파는 집, 젊은 예술혼을 담은 그림을 파는 집, 읽고 싶은 책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꾸며놓은 예쁜 미니 카페, 미술 작업 동아리 등. 낙산공원을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같은 예술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모여들고 있다.

골목길 굽이굽이 녹아 있는 정취, 이화동

낙산공원과 맞닿아 있는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낙산프로젝트’ 를 통해 곳곳에 그려진 골목 곳곳의 벽화들은 저마다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놀러 온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계단 가득 꽃밭을 펼쳐놓은 곳도, 하늘거리는 꼬리가 인상적인 물고기 벽화도 있다. 벽화만을 목적으로 이화동을 방문하면 의외로 짧은 코스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 벽화마을이라 불리는 그 길이 이화마을의 전부는 아니다. 벽화가 없을 때에도 이화동은 사진가들이 즐겨 찾던 마을이다. 1950년대 후반 판자촌이 형성됐던 이곳은 1960~1970년대 하나 둘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굽이굽이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의 색이 바랜 낡은 대문과 삐뚤빼뚤한 돌계단, 떨어진 타일 바닥과 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계신 어르신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옛 모습을 이어 가는 이 마을의 풍경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기분을 전한다.

혜화동 골목 풍경 안에 숨 쉬는 느림의 미학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시시콜콜한 일상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2014년 봄, 혜화동 로터리 앞에는 마을버스가 서고, 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다.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단출한 집들 사이로 고양이가 졸고 있고, 야트막한 담장 아래로는 동네 꼬마들이 재잘거리며 논다. 오래된 전파사와 철물점의 간판은 마치 세트장의 그것처럼 아기자기하다. 느릿느릿 길을 걷다 돌아보면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친구가 불쑥 뛰어나올 것만 같은 골목의 풍경.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에 나오는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이 이곳에 있다. 이 골목에는 동숭무대, 꿈꾸는 공작소, 게릴라극장, 선돌극장 등 열정으로 무대에 오르는 연극인들의 소극장들도 모여 있다. 일명 ‘오프 대학로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대학로의 상업화에 밀린 연극인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며 형성되기 시작해, 상업성에서 벗어난 독특하고 실험적인 무대로 연극 애호가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위치는 변방이지만, 무대는 사실상 연극의 핵심에 서 있는 곳이 여기다. 마이너들을 따뜻하게 품는 곳, 그곳 역시 혜화동 골목길이다. 고즈넉한 혜화동의 골목 풍경에는 숨 가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야 할 가치와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사람들이 더 큰 거리로 나가는 동안 자꾸만 잃어가는 것들이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이 시대, 더 빠르게, 더 큰길로만, 메이저로만 향하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묻는 곳. 혜화동 골목길이다.





글 이현주(자유기고가) 사진 이서연(AZA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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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장소와 사람, 시간과 공간으로 매듭지어진 동네 '혜화동'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4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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