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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서울 기행] 겨레의 얼이 깃든 충효의 고장, 동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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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머리를 연상케 하는 동작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이고, 다음으로 노량진 사육신묘(死六臣墓)쯤 될 것이다.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이들이 잠든 곳이다. 그런가 하면 상도동 장승배기와 흑석동 효사정(孝思亭)은 선인의 지극한 효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동작구를 충효의 고장으로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작구 기행은 현충원에서 시작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기상관측 사상 최장을 기록한 변덕스러운 장마가 끝난 후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한낮, 민자 전철 9호선 동작역 8번 출구를 나와 현충원으로 향한다. 현충문을 지나 정남향으로 성역(聖域)을 보면서 걸어가다 보면 장엄하게 우뚝 선 탑 하나를 만난다. 이름 하여 현충탑.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추앙하고자 세운 현충탑은 외부로 표출되는 장엄함을 압도할 비감함을 기저에서 뿜어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분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 호국 용사의 위패, 시신은 찾았으나 신원을 알 수 없는 7000여 무명용사의 유해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리라. 


현충원에 모신 호국 영령은 모두 16만5000여 위(位). 결국 3분의 1인 5만4000여 위만 묘역에 모신 셈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묘역을 비롯해 작고한 역대 대통령 묘역을 조성해놓은 현대사의 배움터이기도 하다.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갈형상(渴形象)’이라 하여 풍수상 명당으로 꼽힌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연간 100만 명을 웃돌던 참배객은 2000년대 들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더니 요즘엔 평균 40만 명 수준이다. 요즘엔 현충원 경내에서 조깅이나 파워 워킹을 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충원에서 음악 연주회도


참, 순국선열이 잠든 묘역인 동시에 쾌적한 공원이기도 한 현충원에서는 매달 음악회가 열린다. 동문으로 들어와 왼쪽으로 보이는 현충관에서 열리는 정기 음악회는 지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행사라 할 수 있다. 


현충원을 나와 현충원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올레길 체험을 해도 좋다. 순례는 현충원 입구에서 시작해 이수교→현충원 사당 출입문→현충원 상도 출입문→서달산 정상(동작대)→달마사→서달산 생태 육교→서달산 자연 관찰로를 거쳐 중앙대 후문에서 끝난다. 서달산 올레길 일대에는 측백나무와 잣나무 등 10여 종 7000여 그루의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동작동 피톤치드 숲이 있다. 2008년 5월 조성한 이 숲을 거닐면 나무가 발산하는 피톤치드 덕에 심신이 안정되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선비의 효성 어린 효사정


올레길 순례를 끝냈다면 중앙대 캠퍼스 옆길을 따라 20여 분 걸어 내려온다. 9호선 흑석역 원음방송 옆, 흑석체육센터 뒤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운치 있는 정자가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조선 초기 문신 노한(盧?, 1376~1443년)이 모친 별세 후 3년간 시묘(侍墓)한 자리에 지은 정자다. 이조판서 강석덕이 노한의 호가 효사당(孝思堂)인 데 착안해 효사정이라 이름 붙였다. 태종과 동서 간인 노한은 경기관찰사, 한성부윤,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까지 역임했다. 효사정은 당시에도 효도의 상징으로 유명했다. 기순, 정인지, 신죽주, 김수온, 서거정 등은 이 정자의 정취와 효사당의 뜻을 시로 읊어 기렸다. 특히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서울시가 뽑은 우수 경관 조망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충신의 넋 위로하는 사육신묘


또다시 9호선 흑석역 다음 역인 노들역에서 내리거나, 노량진배수지공원을 오른편으로 끼고 20분쯤 걸어가면 이번엔 사육신역사공원에 이른다. 조선 시대 6명의 충신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명나라 사신 환송연이 열리는 날, 거사를 준비했으나 김질의 토설로 사전에 발각돼 순절한다.


서울시는 1978년 이들 사육신(死六臣)을 기리는 공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유응부(兪應孚)의 묘소와 유성원(柳誠源)·하위지(河緯地)의 위패, 공묘를 모신 의절사와 사육신묘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했다. 당초 성삼문·박팽년·유응부·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서울시가 이곳을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과 1981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한 김문기(金文起)의 가묘(假墓)를 만들어 총 7개의 봉분을 조성했다. 의절사에서는 매년 10월 9일, 애국 충절과 선비 정신을 기리며 추모제향을 올린다. 전날인 8일에는 사육신의 혼을 부르고 영혼을 달래는 살풀이춤과 사물놀이, 굿, 판소리, 단종 복위 모의 과정을 그린 무용극 등 문화 행사도 열린다. 2010년 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사육신역사관도 개관했다. 공원이 울창해 선선한 바람을 쐬며 독서를 해도 좋고, 북쪽으로 탁 트여 한강철교도 내려다볼 수 있다.



서울 수산물 절반 취급하는 노량진수산시장


한동안 경건했으니 이젠 좀 긴장을 풀어보자. 사육신역사공원을 나와 10분쯤 걸어가면 비린내가 감도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수협 직영 노량진수산시장에 당도한다. 사실 이곳은 새벽 경매가 이뤄질 때 와야 활기를 체감할 수 있어 제격이지만, 하루 중 어느 때 찾아도 수산시장 특유의 정취는 맛볼 수 있다.


서울에서 거래되는 수산물의 근 절반을 이곳에서 취급한다. 특히 횟감용 활어 전문 시장으로 시중보다 20~30% 저렴하게 수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점포에서 횟감을 떠서 인근 식당에서 매운탕까지 끓여 먹을 수 있어 서민이 자주 찾는다. 필자도 1970년대 말 대방동에 있던 공군본부 근무 시, 퇴근 후 동료들과 자주 들른 기억이 있다. 딱히 수산물을 사지 않더라도 마음이 울적할 때 이곳을 찾으면 해물에 실려 갯내음 속에서 생활의 활기를 느낄 수 있어 기분 전환에 아주 좋다.



정조의 효성 깃든 장승배기


수산시장을 나와 동작경찰서 인근을 배회한다. 온통 고시원 건물에 경찰 또는 행정직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즐비하다. 이름 하여 노량진 고시촌이다. 원래 재수 학원들이 터를 잡은 이곳이 지난 몇 년 사이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신림동 고시촌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겨냥하는 청춘들의 집합소라면, 이곳은 경찰과 9급 행정직 등 하위직 공무원을 지망하는 수험생이 모여 있다. 급여가 좀 적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젊음의 특권이라 할 도전 의식을 일찌감치 접고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려는 청춘이 많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이제 동작구청이 자리한 장승배기로를 따라 걷는다. 한 10여 분쯤 걸어가면 장승배기사거리가 나온다. 조선 시대 정조는 비운에 숨진 부친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가던 길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잠시 쉬어 가는데, 이곳이 음산해 왕명으로 장승을 세웠단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장승 앞에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안전을 기원했다. 왕명으로 세운 유일한 대방장승, 즉 파도장승을 다스리는 장승이 있는 노량진2동 지하철 7호선 6번 출구 못 미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정조는 이 길을 장승배기로 명명한 뒤 이후 수원 행차 때마다 장승 앞에서 어가를 멈추고 잠시 쉰 것으로 전해진다. 옛날 사람들은 대방장승 앞에서 마을 공동 문제를 의논하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그러나 이곳 장승은 일제강점기에 미신 타파라는 구실 아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사라졌다. 노량진2동 주민은 1991년 10월 24일 대방장승을 복원하고 매년 장승제를 열고 있다.
장승배기역 근방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정겨운 골목길이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상도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골목은 마치 1970년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과일 가게, 떡집, 문구점에 옷 수선점, 열쇠 수리점 등. 그중에서도 열쇠 수리점은 이젠 서울에서 정말 보기 힘든, 우산을 고쳐주는 집이기도 하다. “아마도 동작구에서 유일한 우산 수리점일 것”이라는 주인장의 호언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솜씨가 좋다.


양녕, 국사봉에서 나라 걱정


장승배기로를 따라 15분쯤 더 가 양녕로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5분쯤 가면 상도4동이 나오고, 굳게 닫힌 한옥 대문을 볼 수 있다. 양명문(讓名門)이라는 현판과 함께 왼쪽에 지덕사(至德祠)를 음각한 대형 표지석이 보인다. 양녕대군이제묘역(讓寧大君李?墓域)이다.


조선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인 양녕(1394~ 1462년)은 산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와 동생을 걱정했다고 한다. 해발 184m의 야산을 국사봉(國思峰)으로 명명한 배경이다. 자유분방한 성품의 양녕은 일부러 태종의 눈 밖에 난 행동을 거듭해 세자 지위에서 폐위됐다. 대신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이 즉위했으니, 그가 세종이다. 양녕과 세종은 우애가 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양녕 묘역의 정문 이름 ‘양명’은 명예로움을 양보한다는 뜻이다.


국사봉 정상에서는 서울의 동서남북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북쪽으로는 상도동 양녕대군이제묘역도 볼 수 있다. 묘역은 일반 왕릉이 남향인 것과 달리 동북향으로 앉아 있으며 왕릉이 아니기 때문에 군 통수를 의미하는 무인석은 없다. 사당(지덕사), 제사당, 제기고 등 3개 건물과 사당 뒤에 부인 광산 김씨와 합장한 묘소가 있다. 사당은 숙종 원년(1675년)에 세운 것으로, 원래 숭례문 남대문 밖 도동(桃洞)에 있던 것을 1912년 일본인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지덕이란 ‘인격이 덕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세조가 친히 지었다. 역시 양녕이 아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한 것을 상찬한 것이다. 사당 안에는 양녕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를 모셨고, 양녕대군의 친필인 숭례문 현판 탁본과 정조가 지은 <지덕사기>, 허목이 지은 <지덕사기> 등내려이 있다. 묘소는 설 차례와 추석 차례, 10월 29일 대군 시제(時祭) 등 제례 때 외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자리에 조성한 보라매공원.


도심 속 허파, 보라매공원


이제 발길을 돌려 서쪽으로 향한다.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2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보라매공원 정문이 나온다. 총면적 42만m2에 이르는 보라매공원은 1985년까지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자리다. 학교가 이전하고 공원을 조성하면서 공군의 상징인 ‘보라매’를 이름에 넣었다. 1962년 생도들이 세운 성무대탑, 정상에 보라매가 앉은 형상의 보라매탑이 있다. 공군사관학교 시절 연병장과 트랙이 그대로 남아 인근 주민의 조깅이나 산책 코스로도 활용하고 있다. 조깅 트랙 외에 테니스장, X-게임장, 인공 암벽등반장, 게이트볼장, 농구장, 지압 보도 등 체육 시설과 어린이 놀이터, 피크닉장, 바닥 분수, 에어파크 등 가족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갖추었다. 전체적으로 잔디광장, 연못, 철쭉동산, 그늘시렁, 무궁화동산 등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조경 시설도 잘돼 있다.


공공서비스 위한 기상청과 보라매병원


보라매공원 근처엔 두 곳의 주요 시설이 있다. 하나는 요즘 가장 바쁜 관공서인 기상청으로, 보라매공원 서편 끝에 자리한다. 1998년 종로구 송월동 서울관측소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기상청은 그야말로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관공서다. 일기예보를 맞히는 건 당연한 거고, 틀리면 시민에게 집중 포화를 맞는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급변하는 국지기상 때문에 슈퍼컴퓨터 몇 대를 놓고도 예전보다 기상예보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현실에서 기상청의 업무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보라매공원 동쪽 끝에는 보라매병원이 있다. 1955년 서울시립영등포병원으로 출발한 보라매병원은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이 위탁 운영하면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서울시의 대표적 공공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무의탁 환자, 저소득 시민, 어르신· 장애우 치료 등 공공 의료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주민 거주한 교통 요충지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0년 들어 관악구 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하자 그해 4월 1일 관악구에서 분리됐다. 그러나 동작구 지역은 한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대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어져 내려이3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방증하듯 동작구 지역 내에서 선사시대 토기와 유구 등을 출토한 바 있다. 특히 신석기시대에는 강가에서 고기잡이하는 것이 주요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에 한강을 끼고 있는 동작구 지역에 주거지가 발달했을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동작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바로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다. 한강철교는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과 노량진동을 연결하는 철도 교량으로, 1897년 3월에 착공해 1900년 7월에 준공한 1천110m 길이의 한강 최초 다리다. 한편 한강대교는 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인도교로, 1916년 3월에 착공해 이듬해 1917년 10월에 준공했다. 용산구 한강로3가와 노량진동 사이를 잇는 인도교로 총연장 1천5m다. 노량진에 한강 최초의 철교와 인도교를 놓았다는 것은 예로부터 이곳이 교통 요충지였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노들나루의 명성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동작구는 작은 자치구지만 종합 대학교가 3개나 있다. 흑석동의 중앙대 서울 캠퍼스와 상도동의 숭실대, 사당3동의 총신대가 그것. 그러나 아쉽게도 변변한 공연장은 한 곳도 없다. 동작구가 문화 예술 쪽에 관심을 갖고 주민의 정서 함양을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다.






글 윤재석(언론인) 사진 나영완 일러스트 문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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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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