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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서울 기행] “이름은 은평, 가치는 금평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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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은평, 가치는 금평.” SH공사가 은평뉴타운의 수월성을 강조하며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부동산 경기 추락으로 2012년 11월 현재 615세대가 미분양 상태에 있는 은평뉴타운 아파트를 소화하기 위해 서울시와 SH공사가 고민 끝에 내건 구호. 덕분에 지금은 615세대 모두 분양을 완료했다.



지관들이 손꼽는 ‘완전한 땅’


은평뉴타운 일대, 아니 은평구 전체가 우리의 전통적 주거 명당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세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앞에 창릉천이 흐르는 것. 또 북한산, 봉산, 백련산, 앵봉산 등 사신사(四神砂 :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뚜렷해 장풍(藏風)과 득수(得水)가 유리하다. 그래서 대를 이어 살아도 좋고, 부를 축적하기도 용이한 ‘완복지지(完福之地)’라는 게 내로라하는 지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한마디로 ‘완전한 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완복지지 터는 아주 좋지 않은 시기에 그 명성을 잃고 말았다. 2008년 미국에서 발원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한국까지 강타하자, 전임 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뉴타운 시책은 초토화 되고 민초에게까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 것이다. 기실 SH공사의 구호를 보지 않더라도 은평은 진짜 금평이다. 왜냐하면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20여 분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환경이 쾌적함에도 집값이 싸기 때문이다.


사실 1970년대까지도 은평구(당시는 서대문구 북부)는 양호한 주택지로 각광받았다. 바로 앞서 설명한 교통 편의성과 쾌적한 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 때문이었다. 당시 은평 일대엔 반듯반듯한 중형 단독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빈터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구획 정리도 깔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1979년 10월 1일 서대문구에서 분구하자마자 불기 시작한 강남 열기로 은평은 졸지에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성한 택지도 휑하니 버려져 모래바람만 날렸다. 물론 여기엔 당시 은평에 이렇다 할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여가 활동 인프라가 미비한 것도 한몫했다.


분구 이후 변신 또 변신


그러던 은평구가 이후 상당한 변신을 거듭했다. 불광역 근처에 한국환경정책과학원(현재 인천 쓰레기 매립지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한국정책평가연구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들어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2003년엔 질병관리본부까지 입주, 보건·환경·여성 관련 싱크탱크 단지로 입지를 굳혔다. 참여 정부 시절부터 태동한 지방 분권 시대로 많은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 연구소가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지만, 1980년대 중반 환경 분야를 취재한 필자는 불광동 연구 단지를 좀 더 확대해 유사한 연구 기관들이 이곳에 결집한다면 연구 효율화와 정책 수립에 효율을 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마을은 어떤 형태로든 개발하게 되어 있다. 그 일환이 뉴타운 개발이었고, 은평도 그 광풍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미분양 사태의 여파로 증산1구역이 뉴타운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증산1구역 토지 등 소유자 3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민 투표 결과 39%인 149명이 사업 추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이에 따라 은평구 증산1구역은 정비 예정 구역 해제 대상 구역으로 분류돼 해제 절차를 밟게 된다.


서울의 뉴타운 개발 구역 가운데 주민 투표로 구역 해제 절차를 밟는 사례는 이곳이 처음이다. 이는 앞으로도 이 방식에 따라 뉴타운 해제 결정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속물들의 왜곡된 강남 선호 사상(?)이 빚어낸 허황된 재테크의 환상,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부동산이 투기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제 상황에서 애꿎게 막차 탄 서민만 손해를 본 것이다. 다행히 은평이 구로 승격된 뒤, 나름대로 쾌적화와 문화 예술 창달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북한산 비봉의 작은 물줄기에서 발원해 구의 중심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유입되는 불광천.
그중에서도 불광천은 은평 도심을 가로지르며 숨 쉬는 생태 하천이다.

▲ 진관사는 고려 시대의 고찰로 한양 근교의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쾌적한 자연환경이 자랑


은평구엔 하천이 둘 있다. 북한산 효자리 계곡에서 시작해 은평구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며 한강으로 유입되는 창릉천과 북한산 비봉의 작은 물줄기에서 발원해 구의 중심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유입 되는 불광천. 그중에서도 불광천은 은평 도심을 가로지르며 숨 쉬는 생태 하천이다. 생태적 균형성이 완성된 가운데 사철 흐르는 시냇물엔 붕어, 피라미 등이 자맥질하고, 청둥오리와 두루미도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활공 중이다.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한강까지 이어져 있고, 곳곳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각종 운동기구와 함께 365일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소도 있다. 2012년 1월에는 천변 도서관도 개관했다. 청계천의 아류라기보다 소규모 개천이 표출할 수 있는 아기자기함을 뽐내고 있다고 하겠다.


불광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대조전통시장이 나타난다. 제대로 개량되지 않아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야말로 재래시장. 이곳에 두 곳의 먹거리 명소가 있다. 하나는 ‘유명한 튀김집’. 오징어, 새우, 김말이 등 초벌 튀김을 취향대로 고르면 즉석에서 다시 튀겨주는데, 기다리는 동안 떡볶이를 시식하는 것도 괜찮다. 일반 떡볶이용 떡이 아니라 굵은 떡국용 떡이다. ‘횡성한우곱창구이전문’도 한 번쯤 가볼 만한 곳. 진짜 횡성 곱창인지는 알 바 없으나 곱창구이 외에 선짓국, 천엽, 부추, 깻잎, 양파고추절임 등 밑반찬이 이 집의 내공을 증명해준다. 1시간 무료 주차도 가능하다.


▲ 은평구 중심부 전경 / 대조전통시장은 옛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곳이다


박석고개와 구파발 이야기


허기를 채웠으니, 다시 은평 나들이에 나선다. 대조시장에서 불광역 쪽으로 나가 통일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왼편에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한때 경기 이북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은 이제 일산 등 몇 곳만 운행하는 버스가 쉬어 가는 소규모 터미널로 퇴락했다. 불광역에서 통일로 북쪽으로 한 정거장 더 가 연신내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청담동이 연상되는 번화한 거리가 나타난다.


이름 하여 연신내 로데오 거리. 이곳은 한식, 일식, 양식, 퓨전 음식 등 다양한 먹거리와 액세서리·의류 쇼핑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지하철 지하수를 재활용한 친환경 도심 공원 ‘물빛공원’도 눈길을 끈다. 종종 ‘찾아가는 음악회’가 열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기도 한다.


이제 3호선 서울 구간 마지막 역인 구파발로 간다. 이 길은 연신내역에서 걸어서 가는 게 좋다. 박석고개(薄石峴)를 봐야 하기 때문. 통일로에서 갈현동과 불광동을 양편에 끼고 구파발로 넘어가는 고개다. 박석고개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고개 근처에 궁실(宮室)의 전답이 있어 이곳을 오가는 높은 사람이 땅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돌을 깔았다는 설. 두 번째, 고개가 서오릉(西五陵)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위치해 풍수지리적으로 지맥이 깎이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 박석을 깔았다는 설.


마지막으로, 중국 사신의 내왕이 잦은 길에 사철 물이 흘러내려 불편을 겪자 길을 닦고 상석(床石) 크기의 돌을 깔았기 때문이라는 설. 아무튼 민초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민초를 동원해 조성한 돌고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구파발(舊把撥)은 뭔가? 조선 전기 이후 변경의 군사 정세를 중앙에 신속히 전달하고, 중앙의 시달 사항을 변경에 전달하기 위해 말을 타거나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던 통신망이었다. 한마디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것이다.


▲ 친환경 도심 공원인 ‘물빛공원’/ 은평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불광천


사라진 기자촌… 사라진 영웅들


서오릉 옆 1.5km2에 달하는 봉산의 도시자연공원은 북한산 다음으로 은평구민이 즐겨 찾는 공원이다. 590년 전통의 사찰 수국사를 품고 있으며,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진 둘레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증산체육광장에서 수국사 입구까지의 탐방로 주변에는 야생화가 사계절 피어 자연 관찰 학습하기에 좋다. 특히 봄이면 수령 50년이 넘는 아카시아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벌이 많아 붙여졌다는 ‘봉산’이란 이름이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취재하기 위해 은평을 돌아보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기자촌이다. 기자촌은 진관외동 175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 기자들이 집단으로 입주해 형성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재테크엔 관심 없는 기자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땅을 내주면서 집단 주거지를 조성한 것이다. 1969년 11월 입주하기 시작해 1974년 3월 분양이 완료되었는데, 입주 초기에는 모두 450여 명의 기자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물론 지금은 뉴타운 사업으로 폐허가 되고 기자촌길이라는 팻말과 기자촌교회 등의 이름만으로 기자촌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박석고개 인근 동쪽 지금의 은평체육센터 부근에는 축대로 택지만 조성한 빈터가 많았다. 당시 신촌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던 필자는 이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고양시에 있는 노고산 훈련장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 우리는 이곳에서 대충 훈련이라고 받고 나서 미아리로 향하곤했다. 군복 입은 치기로 말이다.


사연 많은 통일로에 추억을 묻다


은평구를 소개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진관동에 설립된 하나고다. 하나금융그룹이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300여 억 원을 출연해 2010년 개설한 이 학교는 전국 모집 자율형 사립고로는 서울에서 유일하다. 올해 1회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는 지난해 말 수시에서 응시한 학생 절반이 이른바 SKY로 불리는 일류 대학에 합격했다. 학생에게 공부를 더 하라고 다그치기보다 1인 2기 프로그램, 즉 체육 활동 중 한 종목을, 미술과 음악 중 한 과목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방침 덕분이었다. 국·영·수에만 매달리기보다 정서도 함양하고 체력도 길러야 제대로 된 우수 학생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평범한 사례지만, 일반 고교에선 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 그런데 못할 건 또 뭔가.


이제 은평을 개관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서울 서북권에 위치한 은평구는 서울도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 경기도 고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은평구를 지나는 지하철 노선은 3호선 녹번역, 불광역, 연신내역, 구파발역과 은평구 전역을 순환하는 6호선 증산역, 새절역, 응암역, 역촌역, 불광역, 연신내역, 독바위역, 구산역이 있다. 여기에 통일로가 구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내부순환도로는 서대문과 경계를 이룬다. ‘은평’이란 명칭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은 수도인 한성부를 5부(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와 53방 행정구역으로 나눴는데, 이 중 북부의 성외인 ‘연은방’과 ‘상평방’에 해당하는 곳이 지금의 은평 지역이다. 은평은 이 두 지방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 북한산 둘레길은 코스도 다양하고 각기 정취도 달라 어느 코스를 가든 실망하지 않는다.



북한산 산행의 진미는 ‘은평’


북한산 산행은 여러 코스와 그에 따른 다양한 정취로 어느 코스를 가든 결코 실망하는 법이 없다. 우선 옛성길, 구름정원길. 마실길, 내시묘역길, 어울림 등의 구간으로 나뉜다. 이 외에도 수다한 코스가 있지만 생략한다. 옛성길 구간(탕춘대성암문 입구~북한산생태공원 상단)은 북한산 둘레길 중 유일하게 성문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조선 숙종 때 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탕춘대성암문에서 북한산생태공원 상단으로 이어진다. 전망대에서는 보현봉, 문수봉,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등 다양한 봉우리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하늘다리 위를 걸으면서 서울 도심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름정원길 구간(북한산생태공원 상단~진관생태다리 앞)은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삼림욕장 수준으로 많은 양의 피톤치드가 방출되는 곳이다. 구기터널 상단 계곡을 가로지르는 60m 덱 길을 걷노라면 마치 구름을 밟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은평뉴타운과 인접한 마실길 구간(진관생태다리 앞~방패교육대 앞)은 동네 ‘마실’을 나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은평구 보호수인 은행나무와 약 150년 된 느티나무(높이 15m, 둘레 3.6m) 다섯 그루가 굳건히 서 있다. 그림자처럼 왕을 보살피던 내시들의 무덤이 자리 잡은 내시묘역길 구간(방패교육대 앞~효자동 공설묘지)도 있다. 근처에 있는 왕실 묘역 서오릉과 왕실 사찰 수국사와 잘 어우러진다. 또 이 길에는 북한산성 축성에 동원된 연인을 기다리다 연못에 빠져 죽은 기생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여기소’ 터와 8m 높이의 아찔한 투명 발판이 있는 ‘둘레교’도 있다. 어울림 구간(진관사 입구~북한산성매표소)은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 장애인이 접근하기 가장 좋은 길이다. 일반 걸음으로는 1시간, 휠체어로는 3시간 걸리는 코스로 내시묘역과 진관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은평구는 산수가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해 예로부터 천혜의 생활 터전이었다.
수도 외곽의 군사 요충지로 나라에서도 중히 여겼다.





글 윤재석(언론인) 사진 램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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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61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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