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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옛 이름] 이름에 남은 제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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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담기는 마음은 다양하다.
사자(死者)를 위로하기도 하고, 내일의 안녕을 바라기도 한다.
그러한 마음과 관련이 깊은 서울의 동네를 소개한다.

종로구 - 소격동

소격동(昭格洞)은 도교의 여러 신에 대한 초제(醮祭; 무속 신앙이나 도교에서 별을 향해 지내는 제사)를 관장하는 조선 시대 국가 관서 소격서(昭格署)가 있던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본래 이는 소격전(昭格殿)이라 불렸으나 세조 12년(1466년)에 규모가 축소되면서 소격서가 되었다. 이후 성리학자들이 소격서를 없애자고 주장했고, 연산군과 중종 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소격서 터’만 남아 있다.

+ 이야기 하나 더
소격동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가 있다. 바로 종친부(宗親府)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이다. 종친부는 종반(宗班)을 다스리고 조선 시대 역대 왕의 계보와 초상화를 보관하며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던 곳으로, 경근당과 옥첩당은 종친부의 중심 전각이었다. 1981년 종로구 화동 1번지로 옮겼다가 2013년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전해 복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뒤편에 자리해 있다.

동대문구 - 제기동

제기동(祭基洞)은 ‘제사를 지내는 자리(터)’라는 뜻으로, 본래 ‘제터’ 등으로 불리다가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제기동이 되었다. 이때 ‘제사’는 조선 시대 풍농을 기원하기 위함이었고, 마을에 제단을 만들어 왕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이 제단은 선농단으로, 전설상의 인물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나라에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보통 춘분과 추분에 제사를 지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 이야기 하나 더
제기동에는 선농단역사문화관이 있다. 이곳은 선농단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되새기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2015년에 개관했다. 현재 선농단은 터만 남아 있지만, 그 옆에 우뚝 선 약 60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서울 선농단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위로 곧게 자란 향나무가 선농단의 뜻을 대신한다.

중구 - 신당동

신당동(新堂洞)은 무당들이 신을 모시던 당집인 ‘신당(神堂)’이 모여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이후 갑오개혁 때 한자를 ‘새로울 신(新)’으로 바꾸어 오늘날의 신당동이 되었다. 그런데 왜 신당동에는 당집이 모이게 되었을까. 신당동과 맞닿은 광희문은 도성 안의 상여(喪輿)를 밖으로 내보내던 문이었고, 이 때문에 신당동 일대에는 넓은 공동묘지가 조성되면서 제사를 지내는 무당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신당동은 ‘힙당동’이라 불리며 환골탈태 이상으로 새로운 멋을 자랑하는 동네가 되었다.

+ 이야기 하나 더
‘힙당동’이라 불리기 이전에 신당동의 명성을 책임졌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다. 1953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후반에 오늘날과 같은 골목이 만들어졌다. 이후 ‘DJ 박스’를 도입하며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추억이 되었지만,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여전히 하나의 문화로 불린다.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임산하 일러스트 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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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옛 이름] 이름에 남은 제사의 의미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10-05
관리번호 D000004909924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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