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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도시 숲의 친구들, 다람쥐와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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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시 숲

익숙한 일상 속 풍경이라 우리는 쉽게 지나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는 것이 수도 서울의 산수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방화대교를 건너오면서 한강의 유장한 흐름에 일차로 놀라고, 도심에 진입하고서는 빌딩 숲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멋들어진 화강암체 봉우리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서울의 지형적 특징을 요약하자면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한북정맥 줄기가 이어져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등 거대한 산군을 이룬다. 남쪽으로는 관악산과 청계산이 우뚝 솟아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서울을 바깥에서 외호하는 산이 외사산(外四山)이다. 북한산과 덕양산, 관악산 그리고 아차산이 그 역할을 한다. 외사산에서 흘러나온 지맥은 다시금 산을 일으켜 세워 도심 북쪽으로 북악산이 서울의 주산이 되었고, 좌청룡으로 동쪽의 낙산을 앉히고, 서쪽의 백호로 인왕산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남쪽 안산 역할로 남산이 서 있다. 우리 선조는 이 내사산(內四山) 안에 도읍을 정했고, 이를 연결해 한양 성곽을 쌓았다.

외사산과 내사산이라는 꽃받침과 꽃잎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서울은 하나의 꽃과 같다. 도심 확장과 개발로 원래 지형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외사산과 내사산의 초록띠를 기본 골격으로 잔가지처럼 뻗어난 천장산·개운산·매봉산 등 잔구성 산지에 도시 숲이 남아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한 도심 한가운데 박혀 있는 도시 숲은 시민들에겐 쉼터를, 생물들에겐 서식처를 제공한다. 무더위가 절정을 달리는 요즘, 푸른 도시 숲은 열기로 달궈진 도시를 식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도시 숲은 주변 지역의 여름 한낮 평균기온을 3~7℃가량 낮춰준다.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시원한 숲 그늘을 찾노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 2종이 있는데, 바로 우리에게 친근한 다람쥐와 청설모다.

빵빵한 볼주머니의 소유자, 다람쥐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동요 가사대로 다람쥐는 도토리를 좋아한다. 볼주머니가 발달해 한입에 도토리 예닐곱 개는 너끈히 담아 옮길 수 있다. 도토리뿐 아니라 풀씨, 새순, 밤, 곤충 등도 즐겨 먹는다. 나무를 잘 타지만 주로 땅 위에서 생활한다. 몸길이는 15cm, 몸무게는 80g 정도이며, 갈색빛 털을 지녔고 눈 주변과 몸 윗면에 검은색 줄무늬가 도드라져 보인다.

다람쥐는 돌 틈이나 땅 아래로 판 굴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굴은 길이가 2m에 이르며, 굴속에 여러 개의 방, 즉 침실과 식량 창고, 화장실을 두고 구분해 사용한다. 이후 겨울잠에 들기 전엔 굴 입구를 흙으로 막아 다른 동물들의 침입을 막는다.

다람쥐의 겨울잠은 불완전 동면으로, 중간중간 깨어나 저장해둔 먹이를 먹고 배설도 한다. 낙엽이나 동물의 털, 마른 풀을 침실로 끌어다 보온재로 쓴다. 땅속 굴에서 홀로 지내는 겨울은 다람쥐에게 어떤 계절일까? 봄이 오기만을 바라는 인고의 시간일까, 아니면 포근한 낙엽 이불을 잔뜩 두른, 그저 평화로운 안식의 시간일까.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다람쥐의 겨울나기를 상상해가며 더위를 식혀본다.

굶주리고 헐벗던 시절, 귀염둥이 최강 비주얼을 가진 다람쥐는 우리나라의 주요한 수출 품목이었다. 1962년 마리당 1달러에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1970년엔 30만 마리를 수출하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도 다람쥐는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 세계에 팔려나갔다. 지금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바탕에는 작게나마 다람쥐의 희생이 숨어 있는 것이다. 미안하고 고맙다람쥐.

청설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청설모는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하고 어두운 회색 털을 가지고 있으며, 배 부분은 흰색이다. 몸길이는 25cm, 몸무게는 250~300g 정도로 다람쥐보다 덩치가 크다. 원래 이름은 푸른 쥐라는 의미의 청서(靑鼠)다. 예로부터 청서의 꼬리털이 고급 붓을 만드는 중요한 소재로 쓰이며 청설모(靑鼠毛)라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쓰임새가 본래 명사를 압도해 종명이 바뀐 지경에 이르렀다.

그 쓰임새와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청설모는 과거부터 우리나라에 살던 토착종이지만, 간혹 외래종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청설모의 주식은 잣나무·소나무·가래나무·호두나무·밤나무 열매다. 그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울창한 숲이 필요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우리나라 산림 환경에서 청설모의 삶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숲이 복원되고 울창해지면서 청설모는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저 토종 청설모의 귀환을 반갑게 맞이하면 된다.

다람쥐와 달리 청설모는 나무 위에 집을 마련한다. 나무구멍에 보금자리를 정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나뭇가지·나무껍질·마른 풀·깃털·동물 털 등을 채집해 둥근 형태의 집을 만든다. 하늘이 열려 있는 새 둥지와 달리 청설모 집은 지붕이 있는 원형으로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청설모는 가을이 오면 길고 촘촘한 겨울털로 털갈이를 한다. 귀 끝에 헤어 젤을 바르고 한껏 멋을 낸 듯 3~5cm가량의 털이 나 여름철 모습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학생주임 선생님께 걸리면 혼날 것만 같다.

도시 숲의 파수꾼

푸르름이 절정인 8월의 도시 숲에서 고개를 들어 보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마다 작은 아기 도토리들이 달려 있다. 비늘 조각 가득한 도토리 깍정이는 여물지 않아 푸르스름하지만, 다람쥐와 청설모는 매의 눈으로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테다. 결실의 풍요로움을 상상하면서.

겨울이 오기 전 다람쥐와 청설모는 미리 도토리나 밤을 주워 땅속 여기저기 숨겨놓는다. 다람쥐는 얕은 곳에 먹이를 숨기기도 하지만, 깊숙한 동면 굴에 집중적으로 먹이를 저장한다. 볼주머니에 먹이를 가득 채워 부지런히 굴에 옮겨놓는다. 그래야 겨울잠 중간중간 허기를 달랠 수 있다. 과거 화전민들은 다람쥐 먹이 저장고를 찾아내 숨겨진 도토리를 먹기도 했단다. 청설모는 주로 낙엽이나 돌 틈 아래에 먹이를 숨겨놓는다. 겨울잠을 자지 않기에 겨우내 식량을 더욱 부지런히 쟁여놓아야 한다. 볼주머니가 발달한 다람쥐와 달리 먹이를 하나하나 물어다 숨긴다.

하지만 저장해둔 먹이는 온전히 숨긴 자의 것이 아니다. 다른 개체들이 찾아 먹기도 하고, 어치나 까마귀 등 새들의 밥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다람쥐와 청설모가 숨긴 걸 다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숨겨놓은 먹이의 50~70%가량은 끝내 망각의 늪에서 건져내지 못한다. 기억력 감퇴로 찾지 못한 종자는 이듬해 봄에 새싹을 틔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대의 숲이 만들어지고, 다시금 다람쥐와 청설모를 살찌운다. 결과적으로 다람쥐와 청설모는 ‘단순 먹튀’가 아닌, 식물의 재생산과 분산을 돕는 도시 숲의 파수꾼이다.

도토리는 양보하기로 미리 약속해요

도토리는 다람쥐와 청설모 못지않게 사람들에게도 인기있는 먹거리다. 도토리에는 타닌 성분이 있지만, 우리 선조는 잘게 빻은 도토리를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빼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과거 도토리는 흉년이 든 해에 구황작물 역할을 하며 우리 민족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존재였다. 풍요의 시절이 왔음에도 우리의 도토리 사랑은 여전하다. 사람에게 별미인 도토리는 숲속 동물들에겐 주식이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명 줄인 것이다.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가진 도시 숲에서의 도토리 채집은 그만큼 동물들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을이 오기 전, 미리 약속을 하는 것은 어떨까. “도토리는 숲속 친구들에게 양보해주세요.”


우동걸
야생동물을 조사하기 위해 우리 땅 곳곳을 다녔다. 국립생태원 멸종 위기종복원센터에서 포유류의 생태와 보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숲에서 태어나 길 위에 서다> 등이 있다.

우동걸 일러스트 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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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서울] 도시 숲의 친구들, 다람쥐와 청설모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3-08-02
관리번호 D000004865632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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