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서울]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광장의 어제와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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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심장부,
광화문광장의 어제와 내일

‘빛이 사방에 널리 퍼져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의미의 광화문(光化門)은 조선 시대부터 줄곧
우리 역사의 중심지였다. 광화문 앞에 넓게 펼쳐진 세종로는 ‘광화문광장’이란 이름을 갖기
훨씬 전부터 서울의 대표적 광장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기쁜 일은 함께 축하하고
슬픈 일은 함께 애도했다. 광화문이 여러 번 훼손되고 복원되는 다사다난한 여정 속에서
광화문 앞 광장 역시 변화를 거듭했지만, 오랜 세월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

경복궁전로, 육조대가 등으로 불리던 조선 시대의 광화문 앞길은 주요 관청이 자리한 정치·행정의 중심부이자 임금과 백성이 만나 공간이었다. 국가의 다양한 의례와 행사가 이뤄졌고, 평소에는 수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거닐었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왕조의 권위를 부정하고 조선을 정신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광화문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도쿄의 상징인 은행나무가 들어선 광화문 앞길은 조선총독부 선전 광장으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해방 이후

광화문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크게 훼손됐다가 1968년에 들어서야 복원됐다. 해방 후 일제 극복의 상징으로 광화문 앞길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졌고, 이후 이곳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혁명의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히 철거됐다.





2002년

2002년

2000년대에 들어서며 광화문 앞은 시민들의 행사와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붉은 응원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 앞 거리를 가득 메우며 벅찬 감동과 기쁨을 함께 나눴다.





2009년

2009년

2009년,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마침내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조성됐다. 일제가 심은 은행나무들을 없앴고,광장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펼쳐 든 세종대왕 동상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





현재

현재

오늘날의 광화문광장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자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진행되는 곳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인 광장으로서의 측면은 미흡한 점이 있어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상 속 쉼터가 될 새로운 광화문광장

매주 화·목요일에 떠나는 광장 역사 여행

광화문광장은 ‘10차선 도로에 갇힌 섬’ 이라는 현재의 오명을 벗고 진정한 ‘시민의 광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변화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제1차 공개 토론회를 열어 전문가와 시민 단체 등이 함께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런 형태의 토 론회는 앞으로 세 차례 더 진행되며, 시민 300명이 참여하는 ‘시민 대토론회’도 두 차례 예정돼 있다. 광화문광장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역사성·시민성·보행성을 회복한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날 전망이다.

매주 화·목요일에 떠나는 광장 역사 여행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광화문 일대 역사를 살펴보고 새로운 광화문 사업과 관련해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열린다.
일시 11월까지 매주 화·목요일 오후 3시
주제 광화문 일대의 근현대사와 새로운 광화문 소개
코스 해치마당 소통방,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 월대, 서울역사박물관 등(탄력적 운영)
신청 gwanghwamun.seoul.go.kr
문의 02-2133-7815

전하영사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경운박물관, 연합뉴스, 광화문광장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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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38541842 등록일 2019-11-06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9-11-01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