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테마 기획] 사람을 키우고 이웃을 품는 ‘마을’이라는 공동체

문서 본문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좋은 먹거리를 나누며, 마을 사랑방에서 만나 소통하는 동네.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를 열고, 마을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며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르신들이 모두의 어르신이 되고,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모두의 소중한 아이가 되는 곳. 거기에 ‘마을’이 있다.

서울은 이사 중입니다. 하루에도 6천500여 명이 이사를 하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공동체가 붕괴되는 아픔을 겪었지요. 동의 경계를 넘어 거주지를 옮기는 이사율도 17.5%로 5%대의 도쿄와 비교해보면 세계적으로 단연 높은 수준입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대신 우리는 정든 이웃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층간 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이웃끼리 다툰다는 뉴스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지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회복하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 동네 이웃들과 정답게 인사하는 마을, 즐거운 마을을 만나봅니다.

이웃을 얻으면 마을이 안전해진다
마포나루에 배가 드나들던 시절, 마포구 염리동은 소금전이 서고 소금 창고가 있던, 말 그대로 소금 마을이었다. 최근 염리동 소금마을은 서울시 범죄 예방 디자인(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을 적용한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좁고 무서운 골목길이 마을 사람들의 운동 코스이자 커뮤니티 공간인 ‘소금길’로 바뀌었고, 주민이 직접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소금 지킴이집’의 노란 대문과 해가 지면 별처럼 빛나는 지킴이 등은 마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염리동의 마을 활동가 조용술 씨는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이웃끼리 말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었고,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해 마을이 한층 활기차게 변했다”고 말한다.
옆집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도시의 익명성은 범죄율을 높이고, 개인의 안전을 위협한다. 이웃을 얻으면 마을이 안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저소득 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염리동 소금마을은 서울시와 마을 주민, 지역 공동체가 힘을 모으면서 열악한 환경의 쇠락한 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었다.
홍성택 염리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소금길 초입에 방치돼 있던 흉물스러운 가압장 자리에 마을 공동체 거점 공간인 ‘소금나루’가 5월에 문을 열면, 마을 커뮤니티가 한층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주민과 동떨어진 마을 공동체가 아니라 주민과 시민사회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염리동 소금마을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주민자치위원회와 마을 기업 ‘솔트 카페’, 마포아트센터에서 활동하는 ‘극단 민들레’, 되살림 가게와 대안 공간 등을 운영하는 ‘나무그늘’ 등 다양한 지역 공동체가 마을 축제를 함께 기획하는 등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소금길과 소금마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염리동에 산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염리동 소금마을 사람들. 안전한 마을, 행복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주민이 참여하는 주거 재생이 답이다
한양 도성을 따라 낙산공원을 오르면 성곽 바로 밑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보인다. 이곳은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얼마 전 삼선 4구역은 뉴타운 구역 해제가 결정됐다. 지리적으로 경사도 심하고, 문화재가 인접해 재개발 사업성이 거의 없던 곳으로, 현재 주민 참여형 주거 재생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근 이화동 벽화마을과 함께 마을 계단과 담벼락의 벽화로 유명해진 삼선동 일대는 몇십 년 된 낡고 노후한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붕 위의 고양이들이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간간이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지나는 젊은 방문객이 눈에 띈다.
삼선동 마을 기업 ‘동네목수’의 박학룡 대표는 “전면 철거 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집수리 지원을 통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기반 시설로는 주민들의 가장 큰 숙원 사업인 도시가스가 올가을 들어올 예정. 향후 세입자 주거 안정이 장수마을 사람들에게 남은 가장 큰 숙제다. 임대료 상승 문제나 집수리 시 지켜야 할 사항 등은 마을 협정으로 결정해 나갈 계획이다.
마을 학교, 마을 축제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장수마을은 1년에 두 번 마을 회의를 연다. 또 마을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을 기업 ‘동네목수’를 운영 중이다. 집수리와 리모델링 사업을 펼치는 ‘동네목수’는 지난해 11월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허물어져가는 빈집을 리모델링해 작은 카페도 열어 마을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몄다.
박 대표는 “뉴타운의 새로운 대안 중 하나로 장수마을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은데, 세입자 주거 안정 등 난제를 해결해, 장수마을이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
많은 마을 공동체가 공동 육아에서 출발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내 아이를 키우는 육아 고민은 결국 이웃, 마을의 고민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마을 만들기의 대표 사례로 일컫는 마포구 성미산마을이나 삼각산 재미난마을 등은 모두 공동 육아 협동조합이 주축이 되어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된 경우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은 강서구 화곡동 마을 공동체 ‘바람쐬다’는 공동 육아 어린이집인 ‘개구리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일곱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이미화 씨는 “지난해 11월 마을 사랑방을 열었는데,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볍게 바람 쐬듯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바람쐬다’라고 이름 지었다”고 소개한다. 사랑방은 목공과 재봉을 위한 공간과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 등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작은 가구를 뚝딱뚝딱 만드는 김희정 씨,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바느질 강좌를 여는 김정선 씨 등 손재주 많은 엄마들이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솜씨를 뽐내고 있다.
이들은 “이웃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면 동네 어른들이 모두 믿을 만한 어른이 되고, CCTV 몇 대 다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 주민들 속의 섬이 되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목표다. 동네 어르신들의 손맛 배우기 같은 요리 강좌 프로그램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지역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과 후 교실도 올해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에 정식 운영할 계획이다.
“사람이 모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는 ‘바람쐬다’ 사람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이들의 마을 만들기에 응원을 보낸다.

마을 사람들은 근사한 예술가
집 밖을 나와 이웃과 마음을 터놓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문화’는 좋은 매개가 된다.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 예술가들은 마을 주민과 호흡하며 서로 앞에 놓인 벽을 허문다. 공공 예술 프로젝트 기획자인 플러스마이너스 1℃ 유다원 대표와 나무도예방 등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양천구 목2동을 중심으로 ‘모기동 마을예술창작소’를 만들어가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며 지역 예술가들과 모임을 열고, 다양한 지역 축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유 대표는 “마을 사람들이 문화로 소통할 수 있는 지역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 바람”이라며 “우리부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 계획”이라고 말한다.
공방 벼룩시장으로 시작한 ‘모기동 마을축제’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나무도예방 박명주 대표는 “처음에는 간단히 공방 사람들이 모여 우리끼리 즐기는 행사였는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러 단체가 참여하면서 마을 축제라는 틀을 갖췄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지역 아동 센터 ‘나무와 숲’, 창작 공간 ‘손즐’, 기린 청소년 센터, 청소년 문화 공간 ‘청.청.청’, 어린이책시민연대 등이 모여 공연도 하고, 마을 영화 상영회도 여는 등 축제를 한층 풍성하게 꾸몄다. 올해 역시 지역 예술가들이 총출동한 축제를 기획 중이다. 모기동 마을예술창작소는 카페에서 마을 회의나 인문학 강의 등을 진행하며, 마을 사람들이 직접 셰프가 되어 요리를 만들고 판매하는 ‘○○씨의 밥상’, 누구나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는 심야 식당 등 지역 주민과 호흡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이렇듯 마을 문화를 만들고, 아이를 함께 키우고, 이웃과 소통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소음 때문에 이웃이 원수가 되고, 옆집에 사고가 나도 모르는 척하는 삭막한 도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내쫓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행복한 살기 좋은 서울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공동체가 뿌린 씨앗이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드는 희망의 새싹이 되리라 기대한다.





글 송영미, 한해아 사진 문덕관, 하지영, 강민구, 홍하얀

문서 정보

[테마 기획] 사람을 키우고 이웃을 품는 ‘마을’이라는 공동체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652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