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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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재단사로 일하며 열악한 근로 여건을 개선하라고 외치다가 22세 나이에 분신자살한 전태일 열사.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을 기념하는 ‘전태일 기념관’에 어린이기자들이 다녀왔다.



노동 운동의 상징 ‘전태일기념관’ 문 열어

어린이기자단은 평화시장 근처에 위치한 전태일 기념관에 모였다. 지난 4월에 문을 연 이곳은 공연장과 전시실, 시민체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2층에서 전태일 열사에 대한 영 상을 보며 취재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1960년대 후반, 많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열악한 공장에서 힘겹게 돈을 벌었대.

전태일 열사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고난의 연 속이었다. 12세부터 돈을 벌었고, 16세가 되던 해 평화시장에서 봉제사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첫 직장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비참하고 끔찍한 노동 현실과 마주쳤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1.5미터도 되지 않는 낮은 천장의 작업실에서 노동자는 허리도 못 펴고 일했대.

3층 전시실에 가면 전태일 열사의 유품 등을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니 우리 또래의 어린 노동자도 있어서 놀라웠다.
1960년대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 가자 당시 노동자의 현실이 확 느껴졌다. 환기도 안되는 좁 은 작업실에서 하루 15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 고도 받은 월급은 3천 원 남짓. 전태일 열사는 이 런 상황을 보며 노동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죄수도 아닌데 노동자를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렀대.



노동자의 삶을 세상에 알리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는 야간 학교를 다닐 정도로 배움에 목말라했다. 또 직장 동생들이 배를 주리는 것을 보고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 주고 본인은 수돗물을 마시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재단사가 된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했다. 그러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질러 자살해 노동자의 땀과 눈물을 세상에 알렸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전태일기념관을 취재하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근로기준법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 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법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전태일에게 편지 쓰기에 참여한 어린이기자



장 소
1호선 종로3가역 15번 출구
문의문의
318-0903, 누리집(www.taeil.org)


탐방취재 및 기사 작성에 참여한 어린이기자

강세희(중곡초 5) 고지연(신목초 5) 권순범(동교초 5) 김교영(고산초 5) 김다혜(서강초 5)
김서연(개운초 4) 김시은(묵동초 4) 김지윤(석계초 4) 김채원(대현초 6) 김한서(선곡초 4)
김해린(월천초 5) 김현성(묵동초 4) 박정빈(문래초 3) 박주윤(양진초 6) 박지민(숭인초 4)
박초영(문래초 6) 방재현(화계초 5) 신예진(가동초 6) 신윤진(가재울초 4) 오수빈(양원초 5)
윤송아(묵동초 4) 윤현준(경동초 5) 이건민(정덕초 5) 이대현(명덕초 4) 이도연(석계초 4)
이서연(서이초 5) 이서진(유현초 4) 이현민(증산초 4) 정다인(잠동초 5) 정하연(논현초 5)
조진영(서교초 6) 조하경(양동초 4) 조현규(소의초 5) 주아현(위례별초 6) 진유림(온곡초 4)
채윤서(잠원초 5) 최윤서(방산초 6) 허예나(온곡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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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36188294 등록일 2019-05-08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친구서울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지현 생산일 2019-05-07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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