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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풍류 1번지, 궁산으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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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한강변은 예로부터 한반도 최고 절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올림픽대로를 건설하며 옛 풍광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조선의 화가들과 시인들이 자주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던 곳이었다.

폭염 속에 찾아간 곳은 서울의 젖줄 한강을 바라보며 봉긋이 솟은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궁산이다. 해발 74m, 야트막한 산이지만 의외로 역사적 숨결이 깊은 산이다. 이 작은 산에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이나 기암괴석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찾아간 까닭은 이곳에 양천향교와 조선시대의 화가인 겸재 정선의 발자취를 찾아가 볼 수 있는 소악루와 백제의 옛 성터인 양천고성지 등이 두루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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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내려 궁산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보면 붉은 홍살문 너머 단청을 입힌 양천향교가 산 아래 먼저 반긴다. 서울에 있는 단 하나 뿐인 향교를 지나칠 수 없다. 태종 12년(1411년)에 창건된 지방교육기관으로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했던 양천향교는 1981년 복원됐고 1990년에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다. 고풍스런 향교 외삼문을 지나면 유생들이 학문을 읽히던 명륜당 앞뜰이다. 낭랑한 책 읽는 소리가 경내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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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빠르게 변화해가는 디지털시대에 웬 공자 왈? 하겠지만 바쁠수록 멀리 돌아가라고 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사서삼경을 읽으며 책 속 지혜를 얻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 모인 이들이 펴든 책은 한문투성이인 논어다.

“혼자 읽으라면 어렵겠지만 함께 읽으니 재밌습니다.”

교우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논어는 공자 사후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풀이해 삶의 모습을 기록한 문답형식의 글이다. 마을 고전학자의 재능기부로 시작돼 양천향교에서 6년째 꾸준히 이어지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논어 맹자를 비롯한 동양의 고전인 사서삼경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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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둔 봉수영(42)씨는 “마음 속 감성을 끌어내는 고전은 아이들 치다꺼리에 지친 주부들에게 보양식 같은 것”이라며 “아침 밥 짓기 전, 배웠던 글귀를 읊으면 감로수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 선현들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동양고전에 심취해보면 어떨까? 고전읽기는 매주 금, 토요일(오전10시~12시)에 열리는 고전읽기며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수강료는 무료다. (문의 : 02-2659-0076 / 02-3663-5797)

양천향교에는 방문객들에게 해설과 안내를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해 있고 초·중·고교생과 성인 대상으로 한문과 전통예절도 가르치며 명륜당과 대성전 등 향교 내 부속 건물을 탐방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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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빠끔히 고갤 내민 향교 담장 밖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궁산둘레길로 이어진다. 나리꽃과 비비추 금계국 등 여름 꽃들의 은은한 향이 발길을 붙든다. 가파르지 않은 둘레길 따라 무리지어 피어난 꽃들은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옛날 임금이 지방에 행차하면 묵었던 객사를 궁이라 했다. 그런 궁이 있는 산이라 해 ‘궁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궁산은 파산, 성산, 진산 등 다양하게 불려졌다. 청량한 공기가 감도는 솔숲을 지나면 언덕 위에 아담한 정자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의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소악루(小岳樓)다. 시인묵객들을 불러들였던 이곳에 조선시대의 화가인 겸재 정선 또한 양천 현령 시절에 자주 찾아와 그림을 그렸다. 한강 일대의 풍광을 그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전하고 있으니 이곳은 가히 명작의 고향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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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는 겸재 정선의 작품 두 폭이 나란히 전시돼 그의 예술 혼을 기리고 있다. 수려한 산 아래 유유자적 노니는 나룻배가 그려진 산수화는 한강과 궁산의 소악루를 배경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더욱 생생함을 안긴다. 당시의 풍경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묘미를 더한다.

사방이 탁 트인 궁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의 풍광이 더욱 시원하게 다가온다. 풀밭으로 변해버린 양천고성지가 보인다. 2만 9370여㎡ 넓이의 옛 성터로 1992년 국가사적 제372호로 지정된 이곳은 한국전쟁 때도 국군이 주둔했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 전략요충지였다고 한다. 양천고성은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삼국시대부터 한강 어귀를 지키는 주요한 군사 요충지로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문헌기록에도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와 형태를 발굴 조사 중이다.

겸재 정선이 5년간 양천현감으로 봉직했던 양천현아가 있던 가양동 궁산 자락에는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을 기념한 겸재정선미술관도 있으니 꼭 들러 봄이 좋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실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 내면의 회화적 재구성을 통한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화풍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금강전도, 인왕재색도와 같은 겸재정선의 대표적인 작품을 비롯한 그의 생애를 연대별로 정리한 전시물도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1층 양천현아실은 옛 양천현의 모습을 모형도로 재현해 놓고 있어 양천현 일대를 담아낸 그의 그림을 따라 당시의 겸재 정선이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다.

두어 시간을 양천향교에서 경 읽고 소악루에 올라 겸재정선에 취하니 마치 유람하며 풍류를 즐긴 선비가 된 듯 여름 무더위도 이만하면 참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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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풍류 1번지, 궁산으로 떠나볼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6-08-12
관리번호 D000002705234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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