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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래된 것들 (10) 서울기상관측소

기상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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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관측소는 경희궁 뒤편 낮지 않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관측소를 향해 올라가는 가파른 길을 씩씩하게 걸어 숨이 턱에 찰 무렵 계단 위의 소박한 2층 건물을 만난다. 과하지 않은 장식의 외형,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근대 모더니즘을 표방한 건축물은 회색 하늘 아래 새하얀 외관으로 명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 서울기상관측소에서는 80년이 넘게 공식적으로 서울의 날씨를 기록해 오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였던 1907년 낙원동에 경성측후소가 처음 생겨 서울의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933년 일제강점기 때 현 위치로 이전해 온 뒤 지금까지 관측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자리하던 기상청이 새로운 청사 건물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관측소는 자리를 지켰다. 공식적인 분석 자료 때문이다. 흔히 날씨 보도에서 얘기하는 ‘평년’이란 최근 30년의 기록을 종합해서 10년마다 작성하게 되는데 이 통계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같은 위치에서의 관측이 중요했던 것이다.

관측소에서 하는 일은 크게 지상 관측과 계절 관측으로 나누어진다. 지상 관측에는 기온, 풍향, 풍속, 강수량, 적설량 등 21가지를 하루 18회 관측하여 기록한다. 계절 관측에는 관측소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벚꽃, 개나리, 진달래 등 7종의 수목을 관찰하여 봄꽃의 개화나 가을 단풍 등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그 외에도 여의도 윤중로 벚꽃의 개화와 북한산의 단풍, 한강의 결빙도 기록의 내용에 포함된다. 또한 나비나 잠자리, 제비처럼 계절을 알리는 곤충과 동물들의 출현도 중요한 관측 대상이 된다. 아마도 서울의 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바로 담당 관측관이 아닐까 싶어진다.

기상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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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얘기하는 관측의 기본은 목측이다. 즉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가시거리 측정을 위해 밖으로 나와 지형지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비나 눈이 내리는지도 본다. 감지 센서가 자동으로 눈과 비를 확인하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해주기도 하지만, 돌발적인 형태의 기상 요인들은 전적으로 사람이 직접 관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가령 함박눈이 내리다가 싸라기눈으로 변하고, 우박이 내리던 것이 진눈깨비가 되는 것을 기계는 일일이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모양을 보고 오늘의 구름을 기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무슨 구름인지 혼동이 올 때에는 도감도 찾아보지만 결국 마지막 도움은 경륜 있는 선배의 도움만 한 게 없다고 하니 관측이란 요소에 어느 정도 인간적인 감성이 남아 있는 듯하여 흥미롭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옥상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랐다. 급격한 경사에 오래된 난간을 붙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무거운 철문을 지나고 나니 확 트인 서울의 경관이 펼쳐진다. 반드시 관측소가 산꼭대기에 있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야 했던 관측소는 다른 고층 건물들로부터 관측에 지장을 받지 않는 곳을 찾아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덕분에 관측소 전망대에서 만난 서울의 또 다른 풍경에 기분도 새로워졌다. 하늘은 무거운 회색 구름.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다. 문득 이곳에서 나비와 제비를 쫓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비와 눈을 바라보며 바쁜 하루에 수도 없이 관측소 안팎을 들락날락했을 담당 관측관들의 노고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이내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한다. 주무관도 덩달아 분주해진다. 나는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며 인왕산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눈 내리는 날 맞는 서울의 오후였다.

출처_서울사랑 vol.148(2015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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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내려야 서울의 첫눈이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장희 생산일 2015-12-24
관리번호 D000002469899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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