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메르스 최전선에 있는 검사요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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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김영은 보건연구사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김영은 보건연구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는 건 메르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힘들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오늘은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메르스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은 보건연구사의 이야기입니다. 아래 내용은 김영은 연구사가 직접 보내온 글을 거의 편집없이 게재한 것입니다.

[메르스 현장의 사람들] ③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김영은 보건연구사

저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서 메르스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연구사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몇 달은 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고작 3주밖에 지나지 않았네요. 그동안 힘들었던 일, 억울했던 일, 보람되던 일, 나름 재미있었던 일들이 너무 많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연구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업으로 아들 셋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시댁과 합가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저와 동료들은 치사율이 높지만 전염력이 높지 않다는 WHO 질병정보를 당연히 믿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병원 내 감염으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순식간에 평화로운 일상이 전쟁터가 됐습니다.

아무리 능숙해도 보호복 입는데만 10분

저희 연구원에서 본격적으로 메르스 검사가 시작된 것은 5월 30일부터입니다. 물론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연구원에서 메르스 진단이 가능하냐는 상부의 문의가 있었고, 저희는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발생하기 이전부터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메르스 교육도 받고 진단검사 정도관리도 받아온 터라 가능하다고 답변해왔습니다.

이후 자체적으로 메르스 진단검사 키트도 점검하고 예비실험도 해보면서 차분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메르스 의심검체가 의뢰되기 시작했고 저를 비롯한 실험자들은 실험실에서 눈물겨운 사투를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실(BL3)’이라고 하면, 병원의 격리음압병상과 비슷한 곳에서 실험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국내에 몇 개밖에 없는 매우 높은 수준의 초밀폐형 음압실험실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실은 질병관리본부 다음으로 잘 지어진 실험실입니다. 메르스 검체 실험에서 가장 힘든 점은 전처리와 RNA추출과정이 모두 이 실험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험자들은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 보호복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능숙한 요원도 이 옷을 입는 데만 최소 10분 넘게 걸립니다. 실험용장갑도 2~3겹으로 착용해야 하고 전 국민에게 유명해진 N95급 이상의 마스크와 보안경을 착용한 후 후드를 쓰고 발토시, 팔토시까지 착용한 후 테이핑까지 해서 몸을 완전 밀폐로 만들어야합니다. 실험실 내 에어컨이 작동되긴 하지만, 일단 보호옷을 입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립니다.

메르스 유전자 분석결과를 판독하는 모습

메르스 유전자 분석결과를 판독하는 모습

연속으로 실험실에 5번이나 들어간 적도

처음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실(BL3)’에 들어갔을 때의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부터 교육도 받고 가끔 실험하러 들어가기도 했지만, 처음 메르스 검체를 들고 들어갔을 때의 심정은 세월호 사건 때의 잠수부 같았습니다. 함께 들어간 남자 동료는 탄광 지하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하고 다른 이는 인터스텔라의 우주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렵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그게 바로 내 일이라는 것은 의외로 사람을 담담하고 비장하게 만들더군요. 초기에 4명이 2인 1조로 BL3에 들어가다 1명이 빠지면서 연속으로 실험실에 5번이나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기만 하던 그곳도 지금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와 연구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2명이 6개의 실험조로 나뉘어 메르스 진단업무를 하고 있고, 상황팀과 접수팀도 꾸려져 훨씬 체계적인 메르스 관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원과 물적 지원이 대폭 늘면서 초기의 살인적인 스케줄에서는 벗어나긴 했지만, 작업시간이 최소 2시간이 넘다보니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공통적으로 잦은 두통과 귀가 멍한 현상이 나타나고, 피부건조증과 눈이 충혈되는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검사원 반 이상이 가사와 육아를 맡고 있는 아줌마

3주째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다 보니 가족들은 당연히 소외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험조의 반 이상이 실험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또 다시 가사와 육아를 해야 하는 아줌마들입니다. 저는 다행히 시댁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메르스 사태 직후 2주 동안 애들을 시골친정으로 보내 실험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만, 다른 동료들의 아이들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찍고 있습니다. 한 동료는 초등학교 4학년 오빠가 아픈 동생 밥과 약을 챙겨주고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기를 붙들고 우는 통에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실험 종료 후 샤워를 깨끗이 하고 나오지만, 집에서 애들을 대하면 혹시나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걱정에 안아주는 것도 뽀뽀해주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우리는 감염자 접촉자는 아니지만, 항시 의심 검체를 다루기 때문에 공공장소에 가는 것도 꺼려지고 외부접촉을 최소화 하면서 반 자체격리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연구원 내에서도 메르스 실험자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는 시선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꺼려하는 시선도 느낄 수 있어서, 저희는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것도 포기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의 상황이라도 비운의 전파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실험자들은 출퇴근 시에도 마스크로 중무장하고 스스로 죄인처럼 다닙니다. 대부분의 실험자들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잠도 잘 못 자고 잠을 자도 꿈에서 메르스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는 보건환경연구원 직원들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는 보건환경연구원 직원들

잘못된 언론보도, 억울하고 허무해

특히 힘들었던 것은 지난번 임산부 검체 실험 때였습니다. 저는 보건환경연구원에 들어온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말단 연구직 공무원이지만, 대학 초년 인턴생활은 물론 석박사 과정동안 의대 조교를 하는 등 연구실경력 만큼은 10년이 넘습니다. 저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 또한 석박사급 이상으로 최소한 저보다 두 배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결코 일부 시민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검사능력을 의심받을 만한 실험자들이 아닙니다. 삼성병원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양성이었으나 저희 연구원에서는 음성결과가 나왔다는 잘못된 언론보도로 저희 연구원의 메르스 진단자질을 운운하시는 댓글을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실험자들은 과로사 직전의 검사업무를 해내고 있고, 중요한 검체들의 경우 4번 이상의 반복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정정보도가 있었지만, 임산부 검체의 경우 검체특성상 양성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낮은 검사 결과가 있었고, 미결정으로 재취를 요구한 상태에서 재채취검체 결과 양성이 나왔지만 질병관리본부에만 보고한 상태에서 언론이 오보를 낸 것입니다.

처음부터 박봉에 고생이 많다든지 힘내라는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검사하지도 못한다는 비난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적인 진단업체들은 이번 메르스를 계기로 많은 수익을 올리겠지만, 저희는 공적기관이기에 전혀 이윤을 남기지 않고 무료로 확진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

물론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나름 재미있고 보람된 일도 많았습니다. 우선 실험조 인원이 4배로 많아지다 보니 실험실이 난민수용소처럼 변하는 건 당연지사였습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같이 고생하면서 동료애를 느꼈고, 샤워시설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남녀 실험자들 사이의 소소한 갈등과 아웅다웅하는 재미있는 해프닝도 생겼습니다.

기존 실험자들은 메르스 검사업무 외에 원래의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메르스 실험이 끝난 후에도 소화기 바이러스나 호흡기 바이러스 실험을 해야 합니다. 어제도 식중독 50건을 처리하느라 아들들이랑 놀아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병원의 담당 의사선생님들이 격려와 감사의 메일을 보내주면서 잠시나마 흐뭇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힘든 중에 보람주신 노원을지병원,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르스와 싸우느라 가정은 뒷전인 며느리를 대신해 아들 셋을 전담해주시는 시어머니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립니다!!

■ '메르스 현장의 사람들' 다시보기
 ① 24시간 이송보호팀 박광표 구급대원(중화119안전센터)
 ② 메르스 예방활동 펼치는 강동소방서 의용소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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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메르스 최전선에 있는 검사요원입니다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22710126 등록일 2015-06-24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김영은 생산일 2015-06-23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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