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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의혹이라는 참담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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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1

소설가 신경숙이 표절 의혹 논란의 주인공이 되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이 일반적인 표절 논란에 비해 특히 참담한 것은 신경숙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으니 우리 국격이 말이 아니게 됐다.

문제의 표절 논란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소설인 <우국>과 신경숙의 단편소설인 <전설>에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내용이다. 부부가 성애를 나눈다는 에피소드인데, 여기에 ‘육체’, ‘격렬’, ‘흙먼지’, ‘안타까워’, ‘쓰러뜨려’, ‘기쁨을 아는 몸’, 이런 키워드들이 동일한 순서로 등장한다.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것이다.

신경숙이 <우국>을 읽은 적도 없다며 전면 부인해 비난이 더 커졌다. 차라리 비슷한 점을 인정하고, ‘과거에 어쩌면 <우국>을 접했을 수도 있고, 그 가운데에 내용이 무의식중에 남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표현됐다’는 정도의 해명과 함께 사과했다면 지금처럼 여론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을 많이 접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읽은 책을 잘 잊어버린다. 나도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던 책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처음 보는 책인 줄 알고 또 구입한 적이 허다하다. 특히 단편소설은 거의 기억 못 한다. 따라서 신경숙이 <우국>을 망각한 것도 이해가 가긴 하나 어쨌든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건 확실하기 때문에, 이점에 대해선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한국 대표 작가로서의 처신일 것이다.

이번 표절 의혹 파문이 더욱 심각하고 참담한 것은 이 사태를 통해 우리 문단의 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경숙 표절 의혹은 이미 15년 전에도 제기됐었지만 크게 공론화되지 못하고 묻혔다. 문단이 쉬쉬하면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문단의 문제가 있다.

몇몇 대형출판사가 스타작가와 공생관계를 형성하면서, 스타작가는 출판사에 돈을 벌어다주고 출판사는 스타작가를 절대적으로 방어해준다. 대형출판사가 발행하는 문예지는 스타작가의 작품을 최고의 명작으로 치켜세워주는 ‘주례사’ 비평을 게재한다. 수많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대형출판사와 대형출판사가 발행하는 문예지의 눈치를 보느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소리도 못하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어쩌다 감히 스타작가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오면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된다. 바로 이런 마피아, 썩은 구조가 오늘날 우리 문단을 이렇게 추락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해양 마피아를 개탄했다. 원전 마피아, 철도 마피아 등 마피아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이번 표절 의혹 파문은 가장 순수하고 고결해야 할 문학 창작의 영역마저 마피아 구조로 얽혀있다는 진실을 폭로했다. 한국 사회 그 어디에도 투명한 곳이 없는 셈이다.

출판사 창비도 이번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표절 의혹에 대해 신 작가를 과도하게 방어해주는 해명을 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창비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비판적 지성의 산실 역할을 한 출판사였다. 일개 회사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적 위상과 사회적 존경을 받는 곳이었다. 그런 회사에서 스타작가를 ‘묻지마’로 옹호해주는 상업적인 모습을 보이자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 창비는 하룻 만에 잘못된 해명에 대해 사과했다.

한국 문단이 호황기였다면 아마도 출판사들이 조금은 단호한 입장을 취했을지 모른다. 지금 같은 불황기엔 스타작가에 회사의 명운이 걸려있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선 결사적으로 보호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런 식의 상업주의가 한국 문학을 향한 독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려 더욱 큰 불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쉬쉬 해왔던 일이 SNS 시대를 맞아 비로소 터졌다. 이번 진통을 성장통 삼아 우리 지성계가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단순 표절 의혹을 넘어 문단 마피아 구조 전반에 걸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몇몇 스타작가, 출판사, 문예지가 문화권력으로 군림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창작과 비평’은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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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의혹이라는 참담한 사태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6-23
관리번호 D000002271012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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