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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말바꾸기의 대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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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말바꾸기ⓒ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93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불법정치자금 3,000만 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는 진실게임이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말바꾸기, 거짓말 논란에 있다. 만약 처음부터 일관된 해명을 해왔다면 지금처럼 여론이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밀접한 관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보도가 나오며 거짓말 논란이 일어났다. 스마트폰 한 대라고 했다가 전화기가 두 대라고 하며 말바꾸기 논란도 일어났다. 대선에 관여 안 했다고 했다가, 그 다음엔 유세장에 몇 번 참석만 한 정도라고 바뀌었다가, 그 다음엔 유세를 직접 한 것으로 또 바뀌었다. 또, 선거사무소에서 성완종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총리 인준 당시엔 언론 외압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자 사과했다. 신체검사 엑스레이를 찍은 장소에 대해서도 내용이 바뀌었다.

이렇게 말이 계속 바뀌는 것이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처음부터 '성완종 회장과 친밀한 관계다. 다만 돈은 받지 않았다'라고 했으면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무리하게 전면부정을 했다가 말을 하나씩 바꾸면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성완종 회장을 비서실장 재직시절엔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성 회장 다이어리 공개 이후 만난 적이 있다고 말을 바꾸어 의혹을 샀다. 과거 김태호 전 총리 후보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알게 된 시기를 놓고 두 번이나 말을 바꾸는 바람에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태임 예원 사태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예원이 반말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 반말의 수위가 '아니 아니, 안 돼' 이런 정도였기 때문에 특별히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전면 부정했다가 나중에 동영상이 유출된 후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거짓말 논란 이후엔 네티즌의 공적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태진아 억대 도박 의혹 사건도 이를 해명하는 태진아의 말이 조금씩 바뀌며 태진아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었다. 처음부터 도박장에 여러 차례 갔다고 해명했으면 될 일을 굳이 한 번에 대해서만 해명하는 바람에 점점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진아의 거짓말 의혹보다 문제를 제기한 시사저널USA의 거짓말 의혹이 더 커지며 결국 태진아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대중이 거짓말이나 말바꾸기를 더 많이 한 쪽을 전면 불신한 것이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도, 만약 조현아 부사장이 처음에 폭언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면 그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상대 직원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말았다. 처음에 진실하게 말했으면 한 번 사과하고 끝냈을 일을, 나중엔 아무리 사과해도 용서 받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정환은 해외 도박 의혹이 불거졌을 때 병원에 누워있는 거짓 인증샷으로 해명한 것 때문에 아직도 연예계에 복귀를 못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지금처럼 여론이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잘못한 행위 그 자체보다, 그것을 숨기려는 과정에서 저지른 거짓말이나 말바꾸기 때문에 더 큰 질타를 받는 일이 자주 나타난다. 대중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신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때론 잘못도 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죄값을 치르고,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만 않으면 대중은 그 사람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

특히 우리처럼 인간적 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선 인간적 진실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작은 허물을 숨기려다가 자칫 인간적 신뢰 자체가 전면 붕괴할 수 있다. 결국 솔직함과 진정성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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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말바꾸기의 대중심리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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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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