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3월에는 '3.1절 역사나들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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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 외벽에 게재되는 대형 현수막 시안

1919년 3월 1일,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우리 민족은 간절한 함성으로 하나 되었습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을 온 세계에 선포한 삼일절 96돌을 맞아, 3.1절 특집 기사 [그날의함성을 기억합니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왔던 함성처럼, 서울 곳곳에서 발굴해 낸 시민기자들의 이야기가 역사적 그날을 재현하듯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 3.1절 특집기사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연재 시리즈

①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2015.2.25.)

② 3.1절, 한용운 말고 백초월 스님도 있습니다 (2015.2.26.)

③ 3월에는 '3.1절 역사나들이' 어떠세요? (2015.2.27.)

④ 열여덟 소녀가 감옥에서 남긴 마지막 말(2015.2.27.)

[그날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3) 시민기자가 소개하는 3.1절에 가볼만한 곳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 박분 시민기자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위치한 경교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위치한 경교장


지하철 서대문역에서 내려 목적지인 경교장까지 3분여 밖에 안걸리는 짧은 거리인데도 경교장(관련기사☞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을 찾아가는 길은 더뎠다. 눈앞을 턱 막아선 병원건물을 두어 바퀴 돌고서야 비로소 경교장으로 가는 통로를 발견했다. 경교장은 높다란 병원 건물이 아래 키 작은 아이 마냥 숨어 있었다. 병원으로 들고 나는 차량들은 쌩쌩 거침없이 경교장을 스쳐 지나갔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김구 선생이 총탄에 쓰러져 생을 마친 곳이다. 경교장이 이렇게 도심 큰 빌딩숲에서 가려진 채로 잊혀져 가다니! 쓰임새를 못 찾아 허름한 옛 건축물로 밀려나게 했던 안타까움에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서울시에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되살려 경교장을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조성했다. 시민들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자 복원된 경교장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나온 역사를 유물과 영상 정보검색 코너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하층에서는 경교장의 역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 등이 전시 유물과 패널, 영상물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지상 1.2층은 임시정부의 회의 개최와 김구 선생이 인물을 접견하던 집무실과 응접실, 귀빈식당 등이 재현 전시돼 있다.

숭고한 정신이 깃든 이곳, 경교장이 위풍당당하게 살아나기를 바란다. 경교장에서 가져온 팜플랫에는 '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큰 글자로 찍혀 있었다. 전시관람은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오후6시이다.

※ 관람문의 02-735-2038

3,1 독립선언의 산실 태화관과 승동교회 | 이승철 시민기자


삼일독립선언유적지(좌), 인사동 승동교회(우)

삼일독립선언유적지(좌), 인사동 승동교회(우)


지하철1호선 종각역 3번 출구를 나서 종로타위빌딩 옆 골목으로 200여 미터쯤 걸어 인사동으로 들어가자 오른편에 12층 건물이 나타난다. 계단 위 건물 앞에는 '태화빌딩'이라는 표지석과 건물입구 오른 편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표지석이 안내문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 태화빌딩 앞에 서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된다.

이곳은 한 때 매국노 이완용의 별장이 있었는데 3,1독립선언서의 산실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본래 조선의 24대 임금인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순화궁이 있던 곳이다. 훗날 세도가였던 안동김씨의 소유였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사들여 마당에 정자를 짓고 '태화정'이라 이름을 붙여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1918년 순종임금의 요리사였던 부제조 안순환이 운영하던 궁중요리집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이완용의 별장 태화정을 사들여 명월관 분점을 내고 태화관이라 하였다. 그런데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바로 이 태화관 2층에 민족대표들이 모였다. 33인 중 일부가 미처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손병희의 제의로 한용운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담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모두 일어나 만세 3창을 했다.

민족대표들은 태화관 주인 안순환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게 했다.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리게 한 것이다. 그들은 곧장 달려온 일제의 경찰들에 의해 순순히 끌려갔다. 매국노 이완용이 조국을 팔아먹는 을사보호조약 등을 모의했던 곳에서 민족의 대표들이 구국의 결단으로 독립선언문서를 낭독한 것이다,

본래 독립선언서는 이곳 태화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탑골공원에서 낭독하기로 되어있었다. 탑골공원에는 오후 2시경부터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3시가 지날 때까지 민족대표 33인이 나타나지 않자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나 곧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공원 한가운데 있는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학생들과 군중들은 미리 준비해온 태극기를 흔들며 힘차게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종로거리로 나서자 거리에 있던 사람들도 합세하여 수만 명의 군중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어 번지는 불길처럼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인사동 승동교회는 태화관과 탑골공원의 중간쯤에 있는 교회다. 1893년에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사무엘 포맨 무어가 세운 역사가 깊은 교회로 교회당 건물은 2001년 4월6일 서울시유형문화재 130호로 지정되었다. 교회당 앞에는 '3,1독립선언 유적지' 표지석과 함께 '3,1 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학생대표들이 모의 하였던 곳'이라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국립현충원에 위치한 '독립 유공자 묘역' 아시나요 | 권영임 시민기자


애국지사의 얼이 깃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애국지사의 얼이 깃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의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의 얼을 만날 수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분들을 모신 곳으로, '임시정부요인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임시정부요인 묘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아서 활동하신 순국선열 18위가 모셔져 있다. '한국통사', '독립운동지헐사'를 집필해서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애국정신을 강조한 박은식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비롯해서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이택국 지사의 유해 5위를 1993년 8월 상해에서 모셔 오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노백린 장군은 미국에서 비행단을 발족하여 비행사를 양성한 분으로 우리나라 공군창설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애국지사 묘역'에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의병활동과 독립투쟁을 펼쳤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12위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13도 의병사령과 이인영, 평민 의병장 신돌석,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쓴 의병투쟁과 무장투쟁의 주역이었던 분과 일제 친일 외교고문인 스티븐시를 미국에서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의사, 서울역에서 사이또 마코토 통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도 이곳에 계신다.

애국지사묘역 앞은 지난 2013년 8월에 새단장하였는데, 좌 우에 대리석으로 조각된 대형 태극기가 애국지사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애국지사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하였으나 후손이 없거나 유해를 찾지 못한 133위 순국선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꽃다운 나이에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3.1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 만주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홍범도 장군과 정의부 총사령 오동진 장군을 비롯해서 고종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상설, 이위종 열사의 위패가 있다.

독립유공자묘역을 천천히 돌면서 묘비에 적힌 위인들의 업적을 찾아보면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의 살아있는 역사책이 되는 것 같다. 3.1절, 광복절과 같은 날이 하루 쉬는 공휴일이 아니라 그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독립유공자 한분 한분의 업적과 숭고한 정신을 잊지않고 오래도록 추모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근대를 기록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허혜정 시민기자

솜옷을 두껍게 껴입어도 시리기만 한 겨울이다. 맨살이 찬 기운과 살짝만 닿아도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는 물러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따스한 햇빛이 반짝이는 봄은 곧 온다. 대한민국의 혹독한 시련이었을 일제강점기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국민의 염원이었던 대한민국의 독립은 제자리를 찾아온 봄처럼 현실이 되었다.


독립선언문과 독립운동사를 기록한 사료들이 전시되어있다

독립선언문과 독립운동사를 기록한 사료들이 전시되어있다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사회에 관련된 전시관이다. 2월이 지난 후 바로 다가온 3.1절은 96주년을 맞이한다. 매년 3월 1일이 되면 고난의 역사를 지내온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본다. 역사 속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해보자.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평화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각계각층의 하나 된 뜻을 안고 석 달 넘게 계속되었다. 삼일운동 후 국내외 독립운동은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임시정부가 통합되어 1919년 9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난징, 창사를 거쳐 충칭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지만, 국내조직과 연계하여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3.1만세 운동 이후 각 분야에서 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 문맹을 퇴치하고자 문자를 보급, 언론운동,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라는 가치 아래 일어났던 소년운동,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농민운동,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특히, 일제의 수탈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적 자립을 위한 물산장려운동까지 독립을 위한 운동이 일제의 억압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삼일운동은 핍박받는 세계 여러 민족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제국주의 국가 지배 아래 있었던 아시아지역의 민족운동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 3.1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일어났던 독립을 위한 부단한 노력 덕분에 현재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어나 독립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던 역사의 그 날 3월 1일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관람 시간은 무료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전시관람 가능하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1번 종각역 1번 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를 이용하면 되겠다.

조선총독부가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 심우장 | 박칠성 시민기자

3ㆍ1독립운동에 참여하시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해방 및 광복에 기여를 하신 분 중 내가 살고 있는 성북구에 한 분이 계신다. 멀리가지 않고 가까운 곳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심우장(尋牛莊)은 독립운동가 겸 승려이시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님의 침묵』시집을 내신 시인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선생 자택이다. 선생님은 충청남도 출신으로 용운(龍雲)은 법명이며 만해(萬海, 卍海)는 아호이다. 그는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가하여 의 공약 삼장을 집필하고 서명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었다.


성북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생가, 심우장

성북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생가, 심우장


성북동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이곳 성북동은 원래 성 밖 마을 북장골로 한적한 빈촌이었다고 한다. 도로변에서 올라선 가파른 골목길에 금방이라도 쓰려질 것 같은 판자촌은 아니지만 토담 벽에 슬레이트와 깨어진 기와지붕 모습이었다. 태극기가 펄렁이는 길 따라 100여m 힘들게 오르니 보통 집보다 큰 문패 심우장 앞에 섰다. 건물 현판 심우장(尋牛莊)의 글은 같은 독립선언발기인 葦滄(위창) 오세창선생의 친필이었으나 지금은 서예가인 一滄(일창) 유치웅선생의 글이라고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해설사 겸 경비(방재관리인) 한분의 안내를 받아 한용운 선생과 집 건축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집은 승려 한 분께서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고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심우장(尋牛莊)」이라고 명하였다.

보통 집은 원칙적으로 남향으로 짓는 것인데 대지를 보았을 때 아무런 제한도 없는데 북향이었다.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통독부와 마주본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집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애국적인 사연이 깃든 건물이었다. 이런 면까지 챙기면서 평생 민족 독립을 위해 애썼던 그의 생을 느끼면서 방에 걸려있는 시 편『님의 침묵』을 낭송해 보았다

『님의 침묵』은 빼앗긴 조국의 광복을 애절한 사랑으로 표현한 저항적 시로,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로 서울시에 산재되어 있는 기미 3ㆍ1독립운동의 역사현장에 시민들께서 한번 방문하여 잠시나마 그날의 독립의 함성을 느껴보기를 권유해본다.

방문 시 주차공간은 없으며 관람시간은 09:00~18:00까지이며 관람시간 내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마음껏 사진도 찍고 앉아 있을 수 있다. 전철4호선 한성대역(삼선교) 6번 출구를 나와 인도를 따라 20여분정도 걸으면 되고, 굳이 교통편 이용하고자 하면 03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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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3.1절 역사나들이' 어떠세요?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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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생산일 2015-02-27
관리번호 D000002154859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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