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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자취가 고스란히! '작가의 집'이 미술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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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주택가에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2009년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구립미술관을 개관한 성북구가 지역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던 가운데 얻은 첫 결실이었다.

정릉 주택가에 자리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정릉 주택가에 자리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이선미

유럽에서는 파블로 피카소나 폴 세잔 등의 집이 미술관으로 문을 열어 무수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 뮤지엄’이 이제서야 발걸음을 떼는 중이다. 이 집은 ‘한국 추상조각 개척자’로 불리는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최만린이 직접 짓고 가족들과 살며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2018년에 성북구가 매입해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작가가 살았던 집 그대로를 최대한 살리고 여기에 전시실과 수장고,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들을 만들어 30년 동안 이 집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의 온기가 배어 있다. 작가는 시기별로 중요한 작품 126점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붉은 벽돌 벽에 낸 아치 통로가 아늑하고도 따뜻해 보인다. 저 너머에도 조각 작품이 있다

붉은 벽돌 벽에 낸 아치 통로가 아늑하고도 따뜻해 보인다. 저 너머에도 조각 작품이 있다 ©이선미

열린 대문을 들어서자 좀 낯설었다. 들어서자마자 집인 듯 미술관인 듯 특별한 느낌이 드는 공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왼쪽 오른쪽으로 눈길이 갔다. 붉은 벽돌담에 낸 아치문 너머에도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일상이 예술이었던 작가의 집에 들어선 것이다.

정원에도 ‘태’, ‘맥’, ‘점’ 시리즈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원에도 ‘태’, ‘맥’, ‘점’ 시리즈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선미

집 안으로 들어서니 더욱 놀라웠다. 높은 천장과 단정하게 정리된 미술관인데 누군가의 아늑한 집에 들어선 것 같았다. 1층에는 전시실과 두 개의 수장고 등이 있고 삐걱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자료실과 연구실 등이 있다.

높은 천장과 단정하게 정리된 미술관이지만 누군가의 집에 들어선 것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높은 천장과 단정하게 정리된 미술관이지만 누군가의 집에 들어선 것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이선미

최만린작가의 집에 놓인 그의 작품이 더없이 멋지다

최만린작가의 집에 놓인 그의 작품들 ©이선미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는 최만린미술관 내부 1층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는 최만린미술관 내부 1층 ©이선미

수장고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개괄할 수 있다. 먼저 1958-1965년은 “폐허에서 찾은 생명; ‘이브의 시대’”였다. 그에게 ‘이브’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넘어서는 존재다. “… 나와 내 옆의 사람이고, 하나의 인간을 말한다. 찢어지고 부서지고 다치고 죽음 앞에 허덕이고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부서진 상태를 주워 모아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흙으로 붙여나간 것이 ‘이브 연작’이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전쟁 후 폐허의 상흔을 표현한 이브 연작 가운데 ‘이브 58-1’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영구 설치 작품이다. 2층에서 내려다본 '이브 58-1'

한국전쟁 후 폐허의 상흔을 표현한 이브 연작 가운데 ‘이브 58-1’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영구 설치 작품이다. 2층에서 내려다본 '이브 58-1' ©이선미

이어서 작가는 1965-1977년까지 “정체성을 찾아; 천·지·현·황·아의 시대”를 지나 1987년까지 “생명의 근원 형태 탐구; ‘태, 맥’의 시대”를 만났다.

최만린작가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최만린작가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이선미

1층 한편에는 작가의 작업 공간도 예전 모습으로 연출되어 있다. 책상과 의자, 손때 묻고 낡은 작업 도구들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작가는 “마음의 움직임이나 느낌을 흙 속에 빚어서 다듬어 가는 작업을 제일 많이 했다”라고 했다.

창가 공간에 작가가 작업하던 모습이 연출되어 있다

창가 공간에 작가가 작업하던 모습이 연출되어 있다 ©이선미

2층의 오픈 아카이브에는 작가가 모은 자료와 책자들이 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리돼 있는 이 자료들이 ‘자신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는 자서전’과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보통의 자서전과 달리 이 자서전은 자신의 부끄러운 것도 그대로 보여주는 ‘꾸며 쓰지 않은 자서전’이다.

최만린작가의 ‘꾸며 쓰지 않은 자서전’인 2층 오픈 아카이브

최만린작가의 ‘꾸며 쓰지 않은 자서전’인 2층 오픈 아카이브 ©이선미

옆방에는 출생과 학업, 작품 활동, 교육자이자 예술행정가 활동 등 작가가 살아온 순간들이 담겨 있다. 자료로만 남은 초기 작품들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도 있다.

자료로만 남은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자료로만 남은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선미

지금 최만린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다. ‘흙의 숨결’은 작가가 정릉에 터 잡은 196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 추상 조각을 향한 그 마음의 근원에 주목하고자 한다고 미술관은 밝히고 있다. 평생을 마음 농사꾼의 자세로 흙을 어루만지며 살아온 작가의 진지한 자세가 ‘흙의 숨결’에 남아 있다.

지금 최만린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다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지금 최만린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다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이 집의 주인이었던 최만린 작가는 지난 11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는 살아 있는 것만이 생명이라고 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지나가는 바람, 한 방울의 물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 … 형태는 생명의 진실된 드러냄이다"라고 말했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최만린작가가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

이 집의 주인이었던 최만린작가의 모습 ©이선미

이제 작가는 흙으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작품을 통해 그의 세계는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그가 초기 작품인 ‘이브’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말을 생각한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부서진 상태를 주워 모아 엇비슷한 원상 속에 다시 회생시키는 것”이 ‘이브’였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잃고 힘겨운 오늘 우리의 나날도 이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흩어진 것들을 한 조각씩 모아 탄생시킨 이브처럼 우리도 오늘 우리 일상에 대해 그런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 위치 : 서울 성북구 솔샘로길 23
○ 운영시간 : 매주 월~ 금 10:00 ~ 18:00
○ 휴무일 : 토, 일요일, 법정공휴일
○ 홈페이지 >>바로가기
○ 문의 : 02-6952-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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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자취가 고스란히! '작가의 집'이 미술관이 되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콘텐츠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이선미 생산일 2020-11-24
관리번호 D0000041315298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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