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와 마주하기 ‘모두를 위한 세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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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세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모두를 위한 세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세상은 넓고 서러움은 많았다. 역사상 억압과 서러움을 견뎌낸 국민은 우리나라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연과 울분을 영상과 그림, 설치작품 등으로 구성한 전시가 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모두를 위한 세계(Zero Gravity World)’전 이 그것이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은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한다. 사당역 6번 출구에서 60m 가량 직진하면 왼편에 품위가 느껴지는 갈색 건물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다.

미술관 정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미술관이 된 구벨기에 영사관’이라는 상설 전시가 진행 중이다. 벨기에영사관 건물이었던 남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이며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탁월한 건축미뿐 아니라 백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그 자체로 가치있는 건물이다.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오르는 길 벽면에 아흐멧 우트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오르는 길 벽면에 아흐멧 우트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왼편의 두터운 커튼 사이로 친절한 화살표가 보인다. 좁고 높은 오르막이다. 이곳은 분명 전시회장인데,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하다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오르는 길 중간 중간 연필로 그려진 그림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터키 출신의 작가 아흐멧 우트의 ‘공상적 환상의 물질세계’이다. 기울어진 방, 종이에 그린 연필 드로잉, 그리고 타자기 출력, 등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액자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스페인에 정착하기 위해 가짜 결혼을 하는 시리아인,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절망하는 모습, 잘못된 여권으로 4개의 검문소를 통과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여자의 모습 등이다. 비스듬한 바닥에서 중심을 잡으며 작품들을 감상하기 수월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은 ‘역사적 사건은 어렵게 추진되지만, 희망적 진보를 보장할 것’이라는 작가의 은유적 바람이 담겨있다.

제주 4·3사건을 조명한 제인 진 카이젠의 ‘거듭되는 항거’

제주 4·3사건을 조명한 제인 진 카이젠의 ‘거듭되는 항거’

제인 진 카이젠의 ‘거듭되는 항거’는 제주 4·3사건을 조명한다. 1948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발생한 4.3사건은 인명피해만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아픈 역사라는 얘기다. 그 파편적 기억과 억압된 역사는 8개 브라운관 속 구분된 영상들로 드러난다. 그 중심에 앉아 우리의 불행한 역사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더욱 달콤하게 춤을’

윌리엄 켄트리지의 ‘더욱 달콤하게 춤을’

1층 전시관을 둘러보는 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소리가 있었다. 한이 서린 듯 읊조리는 멜로디는 2층 전시된 윌리엄 켄트리지의 ‘더욱 달콤하게 춤을’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작가는 르완다 피난민, 발칸반도 탈출 행렬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무렵의 인구 이동에서 받은 영감을 7채널 영상에 투영했다.

장례 의식과 난민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행렬은 춤과 노래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애도한다. 등장인물은 모두 흑색 그림자로 묘사된다. 어두운 전시관에 검은색 그림자들이 장송곡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끊임없이 돌고 있는 현장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살 곳을 잃은 자들의 서러운 마음이 공기 중에 맴도는 듯 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국제 난민의 문제를 인류 본질의 문제로 확장시키고자 했다고 한다.

타이페이 사진 작가 야오 루이중은 세계 각국의 차이나타운에서 찍은 ‘모두를 위한 세계’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국가에 존재하는 비슷한 양식의 차이나타운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작가와 그의 가족은 차이나타운을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도피처로 삼아 정착했으며 이때 차이나타운은 분명하게 현존하는 것임과 동시에 미래의 환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작품에 둘러싸인 가짜 권총으로 사진 속 인물을 쏘아 볼 수 있게 한 것도 인상적이다.

히카루 후지이의 ‘2.8 독립선언서’

히카루 후지이의 ‘2.8 독립선언서’

‘2.8 독립선언서’의 히카루 후지이는 이번 전시를 위해 도쿄의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3·1운동이 있기 20여일 전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300여명의 한국인 학생들은 도쿄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선언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2.8 독립선언문을 일본어로 낭독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이 영상 작품은 1919년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을 재조명하기 위해 제작됐다.

종교 집회는 물론 출판과 사업까지 철저히 감시당했던 일본에서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모여 선언했던 행위를 재조명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의 독립선언문을 일본어로, 그것도 외국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야오 루이중 ‘모두를 위한 세계-중국 저편의 중국’

야오 루이중 ‘모두를 위한 세계-중국 저편의 중국’

‘판투랑가에서 온 편지’는 베트남의 공식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참파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편지를 낭독하는 사람들은 주름 많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베트남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참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잔잔한 물결이 이는 강물과 나무들의 풍광 속에 참파의 마지막 생존 영토였던 닌투언에 살았던 참족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복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복도

5월 26일까지 남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만, 베트남, 터키, 덴마크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 6명이 참여했다.

‘코스모폴리티나즘’(Cosmopolitanism)이란 말이 있다. 인종이나 민족, 국민이나 국가에 관계없이, 전 인류를 세계적인 동포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모두를 위한 세계’전은 3.1 운동을 통해 전 지구적 관점에서 숨겨진 역사를 재조명하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세계 속 불행한 역사, 그 의미와 무게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 아픈 역사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작은 저항일 수 있다.

■ ‘모두를 위한 세계’전
○ 기간 : 2019.3.1~5.26
○ 장소 : 남서울미술관
○ 관람시간 : 평일(화-금) 10:00~20:00 / 토·일·공휴일 10:00~18:00 (월요일 정기휴관)
○ 관람료 : 무료
○ 홈페이지 : 서울시립미술관
○ 문의 : 02-2124-8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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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와 마주하기 ‘모두를 위한 세계’전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35808706 등록일 2019-03-19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은영 생산일 2019-03-18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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