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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눈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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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조세현



지난 9월 서울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에 특별한 사진관이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희망사진관’. 수익금으로 노숙인 들의 자활과 자립을 돕기 위해 사용되는데 ‘(사)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을 통해 노숙인 자활 사진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사진사들이 운영한다. 사진을 통해 노숙인에서 사진사 로,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찍 고 있는 곳이다. 희망프레임은 사진을 통해 봉사와 나눔 을 실천하는 비영리단체로 노숙인뿐 아니라 소외 계층 청소년을 위한 사진 교육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희망프레임을 이끄는 사진가 조세현(중앙대학교 석좌교 수) 씨와 서울둘레길 5코스 삼성산 성지에서 호압사까지 겨울날 해거름 햇살처럼 짧은 길을 함께 걸었다. 삼성산 들머리 천주교청소년수련관 앞에서 만난 그는 알파인 스 틱 하나만 들고 가볍게 산책에 나섰다. 사진을 찍을 때 모 노포드로 쓸 수 있는 제품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의 손에 카메라는 없었다. 그는 평소 사진을 찍기 위해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을 때도 많다는데 둘레길은 초행이라고 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고즈넉한 소나무 숲에 다다랐다. 조세현 씨는 십자가 앞 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곁에 한참을 머물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말했다.



"산속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정말 행운이네요."

그는 오래전 신부인 외삼촌의 권유로 천주교 사회복지시설 식구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 다고 했다. 이전까지 주로 유명인의 화보나 광고 촬영만 을 하던 조세현의 카메라 속으로 입양아, 노숙인, 다문화가정, 위안부 할머니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가 조세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부지불식간에 무수히 많은 그의 사진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한석규, 고 소영, 이영애, 서태지, 전지현…. 그가 찍은 광고 속 얼굴 들이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영정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저는 그냥 사진가예요. 제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아요."

그는 나눔과 봉사 등의 이미지로 자신의 사진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처음부터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러나 입양아들을 위한 특별한 백일 사진을 찍는 일만큼은 올해 로 13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조세현의 권유로 ‘천사들의 편지’라는 자선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명인들은 그가 찍은 흑백사진 속에서 아기를 안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응시한다. 천사들의 편지는 자 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온전히 부모들을 만나지 못한 아기들의 애절한 이야기다. 그가 찍은 아기들의 90% 이상이 양부모를 만나는데 대부분 해외 입양이라고 했다. 입양아 들의 백일 사진은 그가 줄 수 있는 이 땅의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자 아기를 알 몸인 채로 찍는다. 옷을 입는 순간 어떻게든 신분이 드러 나 보이기 때문이다. 조세현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사 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까 제가 사진을 통해 일부러 더 강조하는 거예요."

그는 정치인이든 노숙인이든 연예인이든 시선이나 배경, 조명, 카메라 눈높이 등을 똑같이 찍는다고 했다. 각양각 색의 사람들을 같은 프레임으로 담아 평등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 자신도 상대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사진가로서 그의 일관된 태도다.
삼성산 성지에서 호압사로 가는 조붓한 오솔길, 야트막 한 고개 하나를 넘던 그가 돌연 가던 길을 되돌아와 이렇게 부탁했다.

"제가 꼭 찍히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조세현과 함께 걷는 둘레길을 동영상 카메라에 담으며 다 소 긴장하는 듯 보였던 제자뻘의 젊은 촬영감독은 이내 얼굴이 편안해졌다. 그는 평소 교육 현장에서도 사진 찍는 사람 스스로 모델이 되어 역할을 바꾸어보라고 강조한다.

"오늘이 아니면 낙엽 쌓인 이 순간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날씨도 너무 좋아요."

실제로 그와 함께 걸었던 날은 비 온 뒤의 스산하고 어둑한 풍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거기 있는 그대로, ‘자연의 빛’ 이 좋다고 말했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모델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했다.

"늘 그리워하면서도 잊고 있던 것을 오늘 걸은 길이 일깨 워주었어요."

조세현은 둘레길을 덮고 있던 낙엽들이 모두 부서지기 전에 카메라를 들고 다시 산을 찾을 생각이다. 자신이 사진으 로 찍히고 싶었던 그곳에서 누군가의 눈을 오래 들여다볼 것이다. 그의 렌즈는 사람들의 눈에서 영혼을 읽는다.

명사와 함께하는 서울둘레길은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TV.seoul.go.kr





글 김선미(작가)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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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5-12-10
관리번호 D000002803717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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