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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겨울산은 비어도 길 위에는 뜨거운 기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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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 구간(사당역~석수역)


나무는 무성하게 키운 잎을 털어내며 겨울 채비를 한다. 꽃보다 붉은 단풍의 시간은 꿈처럼 짧다. 봄부터 가을까지 머리에 이고 있던 무거운 관(冠)을 벗듯 이파리를 떨군 나무들. 겨울로 가는 관악산 둘레길에는 이미 빈몸이 된 나목들이 늘어서 있다.


삼성산 서쪽 호암산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호압사 경내에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장관이다.



관음사에서 무당골로, 낙엽이 지운 길을 따라 관악산(冠岳山)


관음사에서 무당골로, 낙엽이 지운 길을 따라 관악산(冠岳山)은 관을 쓴 바위산이다. 풍수에서는 남쪽에 있는 이 산을 불기운이 왕성한 뜨거운 것으로 읽었다. 아득한 옛날 땅속 마그마가 굳어진 화강암이 대지를 뚫고 올라와 산을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도 그 열기가 쉽게 식지 않은 모양이다. 관악산 화강암은 중생대 중엽 쥐라기때 생성된 것으로, 까마득히 먼 후대 사람들까지 그 기운을 두려워했다. 조선은 북악산 아래 새 나라의 터를 잡으면서 광화문과 숭례문이 멀리있는 관악산과 일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염려해 곳곳에 불을 막는 해태상을 세우고 연못을 파는 등의 비보책을 세웠다. 관악산 둘레길이 지나는 산 주변에도 이와 연관된 흔적들이 있다. 사당역 4번 출구에서 나와 남현동 주택가를 지나 관음사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절집이 있는 남현동은 남태령으로부터 비롯된 이름으로, 1980년 관악구에서 동작구를 분리하기 전에는 사당동에 속했던 마을이다. 남태령은 둘레길 4코스에서 지나온 우면산과 5코스 관악산을 잇는 고개이자,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남쪽의 큰 고개다.


관음사 뜨락에 들면 자신을 부르는 중생들의 ‘소리를 보고 (觀音)’ 그들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이 서있다. 돌을 쪼아 만든 천관(天冠)을 쓴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로 관악산의 희부연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둘레길은 관음사 낮은 담장을 따라 낙성대 방향으로, 관악산 북쪽기슭의 숲으로 이어진다. 숲에는 여름내 무성했을 참나무 이파리가 갈색 융단처럼 길을 덮고 있다. 초록의 숲에서 도드라져 보이던 주황색 둘레길 표지 리본도 이제는 낙엽에 묻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나무는 제 몸을 비워 숲 사이로 난 사람의 길들을 애써 지우고 있다. 관세음보살을 간절하게 부르면 ‘불구덩이가 연못으로 변하고, 성난 파도가 잠잠해 지며, 높은 산에서 떨어져도 공중에서 멈추게 된다’는데 숲에는 기도 대신 낙엽 밟는 소리만 가득하다.


낙성대로 가기 전 시야가 탁 트인 바위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리막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망대 아래는 촛농이 얼룩져 있는 바위굴이 기다리고 있다. 무당골이다. 관세음보살이든, 바위굴이든 모두 간절한 희원의 흔적들이다. 어디로부터든, 어떤 식으로든 답이 있지 않았을까.


왼쪽) 5코스 둘레길의 들머리에 있는 관악산 관음사. 오른쪽) 관음사에서 낙성대 가는 길의 무당골.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서울대학교까지 길은 ‘관악’으로


길은 낙성대공원으로 내려와 잠시 번잡한 찻길과 만난다. 낙성대로를 건너 작은 숲을 통과하면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이어진다. 관악산공원관리사무소까지 인도를 따라 걷는다. 낙성대는 다들 아는 것처럼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태어난 강감찬 장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의 시호와 어릴적 이름이 인헌과 은천이었다고 하니 근처 인헌동이나 은천로도 다 이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강감찬의 생가터를 유적지로 정비해 공원으로 만든 것은 1973년의 일이다. 2년 뒤 낙성대 곁으로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옮겨왔다. 그 이전까지 산아래 봉천동 일대는 ‘하늘을 떠받는 것처럼 높은 동네’라는 이름 답게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유명했다. 관악산은 서울에서 두번째로, 한강 남쪽 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서울대학교 입구에서 출발하는 관악산 들머리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다. 정상을 향해 행진하는 인파들과 불과 몇백미터 걷지 않다가 오른편 삼성산으로 향하는 샛길로 빠지며 둘레길이 갈라진다. 수해로 쓰러진 나무를 다듬어 세운 장승들이 줄지어 서서 길안내를 하는 숲으로 들어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다 보면, 오래지 않아 서울대학교와 관악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다다른다. 그곳에 서면 서울대학교를 그냥 ‘관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긍하게 만드는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실제로 관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도 서울대학교 공학관 뒤편으로 이어진다. 이 나라의 높은 곳을 향해가는 출세가도 역시 ‘관악’으로 통하기라도 하듯, 교정 뒤에 산이 그렇게 우뚝 솟아 있다. 산정에는 1969년 들어선 기상 관측레이더 시설이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관장식처럼 익숙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왼쪽) 관악산으로 가는 가장 대중적인 들머리가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 앞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삼성산 둘레길에 수해로 쓰러진 나무를 깎아 세운 솟대들.



삼성산 순교자의 피와 호암산 호랑이 기운을 넘어


삼성산은 관악산의 연주대 서쪽으로 이어진 능선 위에 솟은 481m의 봉우리로, 신림동과 안양시 석수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성산이란 이름은 신라때 처음 이 산에 초막을 짓고 수도했던 원효, 의상, 윤필로부터 이후 고려말 지공, 나옹, 무학의 수행처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남다른 기운 때문일까. 조선시대에는 기해박해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세명까지 품에 안았다. 둘레길이 지나는 곳에 있는 삼성산 성지가 바로 그곳이다. 새남터에서 효수된 벽안의 신부들이 모래밭에 가매장된 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삼성산으로 처음 옮겨온 것은 1843년이다. 그 후에도 여러번 이장을 거듭했고, 1989년 천주교회에서 삼성산 성지를 조성하면서 명동성당 지하 묘지에 있던 유해 일부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고즈넉한 산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성지(聖地)’에서 백골이 진토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은 성자들의 멀고 험한 여정과 가시관의 영광에 대해 더듬어본다.


삼성산 성지를 지나 멀지 않은 고개 너머에 호압사가 있다. 호압사는 삼성산 서쪽에 우뚝 솟아 있던 바위가 호랑이 모습으로 궁궐을 위협한다고 해서 그 꼬리를 눌러 세운 사찰이다. 호랑이를 닮은 봉우리는 호암산이라 부른다. 호암산 정상에 남아 있는 호암산성 터에는 한우물이란 큰 연못도 있다. 그 역시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해 판것이다. 삼성산과 호암산 모두 관악산의 산줄기답게, 목숨을 버리는 불꽃같은 신앙과 맹렬한 호랑이 기운까지 닮아 산자락 구 석구석 이야기도 뜨겁다. 호압사 경내로 내려가기 전 소나무 숲에는 나무 그늘마다 벤치가 하나씩 놓여 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저무는 햇살이 약사전 앞마당에 기도하듯 서있는 느티나무를 비추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500년을 훌쩍 넘은 늙은 느티나무는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빈 몸으로 겨울 햇살을 맞는다.


호압사에서 시흥동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산사태로 무너진 산자락을 복구하기 위해 심은 잣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삼림욕 쉼터가 되었다. 근처 약수를 끌어 모아 하루 몇차례 물을 쏟아내는 호암산 인공폭포도 허물어진 산자락을 보듬어 만들었다. 산이 무너져 내린 자리로 쏟아진 돌무더기들은 행인들의 손길로 차곡차곡 길가에 쌓아 올려졌다. 그곳이 관음사에서 시작해 무당골을 지나 천주교 성지에서 호압사까지 이어져온 둘레길의 마지막에 있는 신선길이다. 하늘에서는 해와 달과 별을, 땅위에는 산과 들과 바다처럼 광대한 것에서 집안의 우물과 부뚜막, 대들보까지 허투루 여기지 않는, 세상 만물의 신령한 기운을 모시는 그런 믿음의 자리다. 화려한 불상도, 십자가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포개 놓은 작은 돌멩이가 전부인 가장 낮은 자리의 기도처, 그 위로 나무가 몸을 비워낸 이파리들이 쌓이고 있다.


숲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텅 비었고, 산아래 금천구 시흥동에는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오래전 이 일대를 뒤덮고 있던 달동네가 재개발되면서 들어선 집들이다. 서울로, 안양으로 품을 팔러 다녔을 서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고 보듬어주었을 숲에서 빠져나오면 석수역에서 둘레길이 마무리된다. 국철 1호선 남쪽, 서울의 끄트머리이자 관문인 역이다.


왼쪽) 소나무 숲에 천주교 성인들의 묘지가 있는 삼성산 성지. 오른쪽) 시흥동으로 내려가는 산자락에 인공폭포를 조성한 호암산 폭포가 있는 곳이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 의 탐하지 않는 삶>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글 김선미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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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5-12-10
관리번호 D000002803717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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