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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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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사유리씨는 지난 2006년, 국내에 거주중인 외국인 여성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미녀들의 수다>라는 토크쇼를 통해 방송 활동을 시작한 일본 사람이다. 올해로 서울생활만 10년째인데 가끔 모국어로 이야기하는 자신을 보고 ‘일본말 정말 잘한다.’며 놀라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다.


“둘레길에서 입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서초동 대성사 앞마당에 도착한 사유리씨가 일행에게 인사하며 건넨 첫마디였다. 그가 준비한 것은 등산복 대신 검은 고깔모자를 쓴 둥근 호박 모양의 핼러윈 의상이었다. 엉뚱하면서 털털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4차원 방송인’ 이란 별명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그다운 준비물 이었다. 하지만 금세 땀이 차오르는 무대의상을 입은 채로 걸을 수는 없었다. 호박 모양 옷은 기념 촬영만 하고 차에 벗어둔 채 곧장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와! 이렇게 총 없이 걷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제 야 알겠어요!”


그는 군복 스타일의 얼룩무늬 멜빵바지 차림으로 걸었는데 총이 없어 행복하다고? 사유리씨는 최근 여자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을 다룬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완전군장으로부터 해방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꼭대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이내 병영 체험의 고된 훈련이 떠오르는지 걱정스러운 말투다. 그에게 둘레길은 정상을 향하지 않고 낮은 산자락을 따라 돌아간다고 설명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둘레길은 목표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네요. 인생도 그런것 같아요.”


그는 짧은 군생활 체험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했다. 군대 자체보다 고된 훈련을 통해 자신과 만나는 과정 자체가 소중했다고. 방송에서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보면 사유리를 엉뚱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하지만 SNS를 통해 그를 만난 사람들은 방송인이 아닌 인간 사유리가 지혜롭고 속 깊은 사람이라 느낀다. 인터넷에는 ‘사유리 명언’ 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트위터 내용이 화제인데 “사람이라는 책은 아무리 ‘표지’가 좋아보여도 마지막 ‘에필 로그’를 읽을 때 까지 모른다.”는 식의 글들이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이야기 대부분은 올 초에 펴낸 <눈물을 닦고> 라는 책에 썼던 것들이다. 글 쓰는 일은 오랫동안 간직해온 후지타 사유리의 꿈이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그와 만난 날은 초미세먼지주의보로 서울의 가을 하늘 자체가 실종된 것 같은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던 때였다. 금요일 오후 3시, 노약자들은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가 있었지만 그 시각 의외로 둘레길 산책에 나선 이들이 많았다. 숲에는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들고 있었다. 그 속으로 코스모스처럼 작고 여린 여자가 사뿐사뿐 걸어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뇽하세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먼저 말했다.


“네! 저는 사유리입니다!”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외국 여성에게 둘레길의 산책자들은 금세 마음을 열었다.


‘오후 3시’ 하루로 보면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것같지만 포기하기에도 너무 이른 그 시각. 낯선 외국에서 방송인으로 산지 10년 만에 오래된 꿈을 위해 다시 펜을 든 서른일곱살의 후지타 사유리의 인생도 그런 시기가 아닐까.


둘레길 뿐만 아니라 우면산도 처음이었던 사유리씨는 걷는 내내 ‘가까운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하면서 감탄했다. 서울의 산은 북한산과 남산밖에 모르던 그에게 우면산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러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싶을 때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 같이 걸어보고 싶은 길’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렇게 이유를 덧붙였다.


“이런 길을 같이 오래 걸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길을 오래 걷는 일… 분명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글 김승희 사진 이서연(AZA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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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5-11-19
관리번호 D000002803716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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