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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소풍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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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도봉산역은 서울둘레길의 출발점이자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산정으로오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도봉산 쪽으로 우르르 빠져나갈 때 병풍처럼 울을 두른 암봉들을 뒤로 한 채 철로 아래로 길을 건넌다. 먹구름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수락산은 맞은편 도봉산에 비해 소박해 보인다.수락산 능선 위의 바위 봉우리들은 모두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인 모양이라는데,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도봉산역 맞은편에 조성된 서울창포원 입구에 수락·불암산 코스의첫 번째 스탬프가 있는 빨간 우체통이 서있다. 서울둘레길 전 구간을 완주하는 동안 모두 28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데, 각 구간마다모양이 서로 다르다. 창포원에서 수락산 암봉 모양의 스탬프를 찍으며 서울의 안쪽으로 숲과 마을과 하천을 이은 157km 둘레길 종주를시계방향으로 시작했다.


창포원에는 꽃의 기별 대신 칼날처럼 꼿꼿하게 솟아오르는 무성한 잎들이 더 싱그럽다. 옛사람들은 창포가 땅 위로 나오면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곡우 비까지 흠뻑 맞았으니 창포원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질 것이다. 보름 뒤면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던 단오다.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 모내기를 끝낸 사람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창포주를 마시고, 창포 뿌리를 비녀에 꽂거나 사내들 허리춤에 매달아 액을 쫓기도 했다.
서울창포원은 ‘노랑꽃창포, 부처붓꽃, 타레붓꽃, 범부채 등 130여종’의 다양한 꽃 30만 본을 심어놓았다고 한다. 붓꽃과 창포는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서로 계통이 다르다. 창포는 주로 물가에서 피고붓꽃은 산기슭의 건조한 땅을 좋아한다. 족보로 따져도 붓꽃은 백합과 창포는 천남성과다. 오월 양명한 기운 아래 보라 빛과 노란 빛깔창포와 붓꽃이 한데 어우러질 눈부신 풍경을 상상하며 아직 푸르기만 한 꽃밭 사이로 걸었다.

창포원을 나와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상도교를 건너야 수락산으로 갈수 있다. 상도교는 노원구 상계동과 의정부시장암동을 잇는 다리다.도봉산과 수락산 사이로 흐르는 중랑천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의정부 시계의 수락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양주와 의정부의 작은 하천들을 모아 서울의 북동쪽 경계로 들어온다. 이후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과 불암산 산줄기에서 흘러온 도봉천,방학천, 우이천, 당현천 등으로 세를 불린 물길은 도봉구와 노원구,성북구, 중랑구, 동대문구, 성동구의 경계를 나누며 흐르다 하류에서 청계천과 만나 한강으로 들어간다. 조선시대에는 배가 드나들던큰 물길이었다. 중랑천과 나란히 서울 경계 밖으로 이어진 경원선 철도나 3번국도 모두, 물길이 흐르는 대로 북에서 남으로, 변방에서중심으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상도교를 건너 ‘수락리버시티’라는 아파트 단지 사이로 흐르는 짧은 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징검다리가 놓인 작은 물길이 의정부와 서울을 나누고 있어 같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도시의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경계를 따지며 서로를 갈라놓는 것은 사람의 일이고, 산은 골골이 다른 골짜기에서 길러낸 물도 하나로 모아 바다로 가는 먼 길에 힘을 보탤뿐이다.




수락산의 둘레길은 산자락 남서쪽의 낮은 숲길인데 1-1구간 종착지 당고개역에 다다르기 전에도 수락골과 노원골에서 수락산역이나 귀임봉 아래 마들역을 통해 시내로 나갈 수 있다. 둘레길은 시작과 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들머리를 찾아 힘닿는 데까지 걷다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전 구간 완주를 목적으로 걸을 때도 어디든 시작한 곳에서 다시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벽운동계곡이 있는 수락골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영의정 홍봉한이 별장을 짓고 사는 동안 사람들이 구름처럼몰려들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현재 덕성여대 생활관 안에 퇴락한 벽운동 별장의 안채 우우당(友于堂)이 남아 있는데, 화려했던 과거의명성은 간데없고 추사의 글씨로 쓴 현판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온다. 그런데 추사는 이 별장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8년이 지나태어난 사람이고, 오래된 소문을 확인할 글자도 지금은 볼 수 없다.한 시대를 뒤흔든 권력자도 구름처럼 몰려들던 벗들도 간 데 없고,수락산 냇가 바위에 깊이 새겨진 벽운동천(碧雲洞天)이라는 각자만아직 뚜렷하다고 한다.


수락골에서 다시 산자락으로 들어가 노원골로 이어지는 숲길에는 한참 뒤에 두고 온 북한산과 도봉산을 한눈에볼 수 있는 첫 번째 전망대가 있다. 수락산 정상에서 맞은 편 산줄기를 내다보는 것과 낮은전망대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산줄기가 서울로 휘몰아쳐 들어오던 대자연과 역사의 북풍한설을 막아주는 든든한울타리였음을 실감하기에는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편이 낫다.



북한산(837m)에서부터 도봉산(740m)으로 다시 수락산(637.7m)과 불암산(510m)까지 이어진 서울 북쪽의 높은 산줄기는 시계방향으로 100여 미터 이상씩 키를 낮추며 흐른다. 그래서 산을 즐겨 오르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해 계단 오르듯 달려가는 ‘불수도북 종주’라는 극한의 등반을 만들어냈다. 멀리 밖을 내다보려면길 밖으로, 산의 능선 위로 보다 높이 올라서야 한다. 하지만 높은곳을 향하는 사람들은 결국 빠르게 질주할 수밖에 없다. 높고 빠른길로 올라갈 것인지 길섶의 여린 들꽃과 눈 맞추기 위해 걸음을 늦출 것인지 사람마다 선택이 갈릴 것이다. 전망대에서 노원골로 다시내려가는 오솔길에는 산벚꽃 여린 꽃잎이 바람 따라 꽃비처럼 흩날린다. 둘레길 바깥세상에서도 꽃이 지는 속도대로 사뿐히 발아래 꽃잎을 밟듯 그렇게 느긋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노원골에는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을 기리는 산길과 공원이 있다. 시인은 생전에 ‘수락산변’이란 시에서 “일요일의 인열은 만리장성이다 /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 막무가네로 가고 또 간다”고 했다. 시인이 떠난 뒤 산정을 향해 꾸역꾸역 몰려드는 인파는 더욱많아졌다. 가끔은 인파를 빠져나와 둘레길로 소풍처럼 가볍게 발길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지.



노원골에서 다시 징검다리로 개울을 건너 숲길로 오르면 이웃한 불암산이 잘 보이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내려와 수락산채석장 자리를 복원한 깎아지른 벼랑 위 전망대까지 길을 이어 걷는다. 그 사이 먹구름은 모두 걷히고 햇살이 숲속 깊은 곳까지 쏟아져내렸다. 연두빛 새순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길은 고즈넉하다. 세 번째 전망대에 서니 불암산에서 망우산, 용마산과 아차산 그리고 남산 너머 관악산까지 서울을 에두르고 있는 먼 산들까지 시야가 트였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만 길을 이어 걸으면 겨울 즈음눈 덮인 북한산과 도봉산을 지나 처음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채석장 전망대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빽빽한 아파트 숲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 어딘가로 실려 갔을, 수락산에서 잘려나간 단단한 바위덩어리들을 생각한다. 잘린 산들이 사람의 마을에 와서 다리가 되고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고 벽이 되어서 오늘의 서울을 만들었으리라. 산을 깎아 세우는 도시의 마천루들은 점점 높아지고있다. 멀리 고층빌딩 숲 사이로 우뚝 솟구쳐 오른, 말도 많고 탈도많은 제2롯데월드도 보인다. 높이 555m로 완공되면 불암산 정상보다높아질 것이다.


채석장을 지나면 서울둘레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조구간을 만들어 놓은 덕릉고개 코스와 당고개로 곧장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학림사를 지나 불암산과 이어지는 덕릉고개까지 길을 이으면 대략 두어시간 더 걸을 수 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은 오직 걷는사람의 체력과 의지에 달려있다.

수락산의 숲길은 순하다. 가파른 곳은 모두 나무 계단이 놓여 있어 천천히 자기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면 노약자도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 그곳에 벚꽃은 이미 고개를 떨구었고, 진달래가 흐드러진 사이사이 물오른 산철쭉이 살며시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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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700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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