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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걷다, 달리다]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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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걷다 달리다

길은 단순히 어딘가로 닿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 사색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기에 ‘걷기 좋은 길’은 도시에 더 필요한 영역이다.
<서울사랑> 10월호에서는 딛고 싶은 길 , 그 위에 서면 행복해지는 서울의 길을 이야기한다. - 편집자주

처음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했던게 아마도 1996년 가을이었겠다. 서울 연구원 시절 서울의 보행환경을 연구하던 중에 우리보다 앞선 유럽 도시들의 보행환경을 직접 답사하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몇몇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당시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도시들은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시하여 차들은 쉽게 다니는 반면 사람들은 육교와 지하도를 힘겹게 오르내려야 했다. 제2기 지하철(5, 6, 7, 8호선)이 개통되면서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지우는 곳들도 많았다. 교차로에 위치한 지하철역에 지하도가 만들어졌는데 ‘200m 이내에 횡단보도, 육교, 지하도를 병행 설치하지 말라.’는 도로교통법 때문에 횡단보도를 없앴던 것이다. 시민단체들과 함께 횡단보도 복원운동을 전개하여 지운 횡단보도를 다시 복원시켰지만 서울의 보행환경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며 불리했다. 걷기 힘든 도시, 걷고 싶지 않은 도시, 걸으면 걸을수록 손해보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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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런던 소호 - 런던 소호 지구 맥줏집. 가게 안이 손님으로 가득차면 가게 앞 거리에 서서 맥주를 마신다. 사람들로 북적일 때 거리에 생기가 돌고 도시의 활력도 커진다. 오른쪽) 파리 거리 카페 - 카페의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건물 바깥 쪽 길가 노상 자리다. 그 다음이 창가 자리이고 가게 안쪽 자리는 제일 나중에 채워진다.

유럽의 도시들은 정반대였다. 차보다 사람을 더 섬기는 도시였다. 승용차 이용은 불편하게 하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편리하도록 도로와 도시공간을 섬세하게 디자인 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나오면 바로 앞에 버스나 전차 환승 정류장이 있고, 역 가까운 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었다. 승용차 주차장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아주 후미진 곳에 있었다. 서울역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서울역 앞 광장은 승용차 주차장이 중앙에 있고, 그 다음이 택시 정류장이었으며, 버스 정류장은 가장 먼 곳에 있었다. 횡단보도가 없어서 길을 건너 버스를 타려면 무거운 짐을 들고 지하도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려야 했다.

20여 년 전 유럽의 도시들을 직접 가서 보고 걸었을 때 걷고 싶은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을 섬기는 도시, 모두가 편리한 도시,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교통약자들도 불편하지 않게 다닐 수 있고 도시 삶의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는 따뜻한 도시의 실체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서울의 보행환경은 그때보다 많이 나아졌다. 클로버 모양의 고속도로 나들목 같던 서울시청 앞이 보행광장으로 바뀌었고, 서울역 앞에도 환승 정류장과 횡단보도가 설치 되었다. 지하도 밖에 없던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었고, 차도 폭을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도로 다이어트도 곳곳에서 시행되었다. 인사동, 대학로, 관철동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차 없는 거리도 지금은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버스나 지하철 이용자들을 우대하는 정책도 다채롭게 시행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쉽고 안타깝다. 유럽 도시들에 비해 여전히 뒤떨어진 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서울이 걷고 싶은 도시가 될까? 세 가지 과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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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거리 갤러리 - 거리는 종종 화려한 변신을 한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스튜디오가 되고,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첫째는 횡단보도의 전면적이고 완벽한 복원이다. 교차로 마다 모든 방향으로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횡단보도를 복원 하고 횡단보도간 거리가 먼 곳은 사이사이에 횡단보도를 추가해야 한다. ‘승용차 이용은 불편하게,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보행은 더욱 편안하고 편리하게’이것이 세계 모든 걷고 싶은 도시들이 채택하고 있는 교통정책의 요체다. 횡단보도를 복원하는 것과 함께 안전하고 편리하게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도 개선이 필요하다. 덕수궁 쪽에서 서울광장을 지나 환구단이나 웨스틴 조선 호텔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청사까지 멀리 돌아서 가야 한다. 서울광장 남동측 모서리에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역 앞도 다르지 않다. 남대문경찰서 쪽에서 서울역으로 건너가려면 옛 대우빌딩을 지날 때까지 한참을 북쪽으로 걸어야 횡단보도가 나온다. 환승 정류장의 남측에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이다. 안전섬도 설치하고 교통약자들도 편히 건널 수 있도록 횡단보도의 디테일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둘째는 보도를 걸을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이다. 심하게 기울어 눈이라도 오면 걸을 수 없는 보도, 돌출되거나 함몰되어 여성들 하이힐을 붙잡는 보도들이 좀 더 평탄해져야 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고이지 않을 만큼의 경사면 족하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보도를 시설물을 설치하는 영역(barrier zone)과 시설물 없이 보행공간으로만 쓰이는 영역(barrier- free zone)으로 구분하고 있다. 장애물 경기장처럼 온갖 시설물들이 보도 여기저기에 난립해 있는 보도를 장애 없는 공간으로 바꿔야 좀 더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건물의 역할이다. 길가 건물은 보행환경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럽 도시들의 거리 풍경을 보면 길가가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의 1층은 대부분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가게들이 많다. 카페와 술집들도 건물 내부보다 가게 밖 자리가 더 인기다. 길가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미인들과 훈남들을 구경하는 재미를 그네들은 만끽하고 있다. 서울도심부를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작은 건물들 을 한꺼번에 철거하고 큰 빌딩을 짓는 재개발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아야 한다. 종로나 인사동이나 무교동처럼 나지막한 옛 건물들이 길을 따라 늘어선 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재개발 이후 길에서 떨어져 홀로 선 빌딩 주변에는 출퇴근 때를 제외하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걷고 싶은 도시는 합주곡과 같다. 여러 조건들이 두루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에서 걷고 싶어 하는 우리 시민들의 마음이겠다.

정석
1962년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1994년 서울대 도시공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에서 2006년까지 서울의 도시정책을 연구했다.
최근 책 최근 책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를 펴냈다.


글 김승희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이서연(AZA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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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5-11-04
관리번호 D0000028036663 분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