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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문화 읽기 ⑪]서울둘레길 8코스 북한산 1·2·3구간(구파발역~북한산생태숲공원) 천연 도량, 깨달음의 큰 숲으로 가는 높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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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8코스 지도그림

서울의 정점에 북한산이 있다. 범상치 않은 이 바위산은 그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계속 쌓아가며
지금도 서울의 상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57km에 이르는 서울둘레길 종주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북한산 큰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은평의 실개천 거슬러 올라 구름정원으로

서울둘레길에서 가장 긴 북한산 구간은 구파발역에서 출발한다.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오랜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던 구파발역은 은평뉴타운이 들어선 뒤 주변 풍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산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둘레길로 들어서려면 산정을 향해 가는 인파에서 조금 떨어져 진관내천 조붓한 천변을 따라가야 한다. 진관내천은 오래전 복개한 물길을 되살려낸 것으로, 뉴타운을 가로질러 은평구와 고양시를 나누는 창릉천으로 섞여 들어간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는 길을 따라 폭포동 쪽으로 올라가면 둘레길은 선림사 입구에서 산속으로 들어간다. 선림사는 유서 깊은 절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숲’이란 이름처럼 천연 도량인 북한산으로 들어가는 산문(山門)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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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나무의 바다가 펼쳐진 하늘 다리 위를 걷는 구름정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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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숲’이란 의미를 지닌 선림사는 구름정원길 입구에 있다.

길은 줄곧 북한산 둘레를 따라 이어진다. 지난 2011년 서울둘레길보다 먼저 열린 북한산둘레길은 서울뿐 아니라 고양시와 의정부시를 거쳐 모두 71.5km 20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11개가 서울둘레길 8코스와 겹친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구름정원길. 진관동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에 높다란 하늘 다리가 놓여 있는 곳이다. 구름 위로 나무로 이루어진 바다를 건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스카이워크 덱에서 장중한 북한산의 풍모를 조망하는 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구름정원길은 불광동 북한산생태공원으로 내려와 옛성길 구간으로 이어진다. 진관동이나 불광동 모두 산자락의 절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오랜 세월 서울 서북 외곽의 한가롭던 마을들이 이제는 ‘북한산 큰 숲’을 자랑처럼 내건 은평구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되었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높은 다리 위를 걸으면서 발아래 부처의 서광이 서렸다는 마을 이름을 생각해본다. 철 따라 다른 빛깔을 뿜어내는 북한산 산빛이야말로 마을에 깃든 가장 상서로운 빛이 아닐까.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잇는 탕춘대 옛성길 따라

족두리봉 자락을 넘어온 둘레길은 구기터널 앞 도로를 건너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탕춘대능선을 넘어 구기동까지 이어지는 옛성길이다. 조선은 태조 5년에 한양도성을 완성하고, 315년이 흐른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건립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모진 시련을 겪은 뒤다. 탕춘대성은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연결하기 위해 쌓았는데, 북한산 비봉능선부터 인왕산까지 완만한 능선에 지금도 나지막한 성곽이 옛 모습을 담은 채 남아 있다. 홍지문은 바로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전시에 도성 안 백성을 세검정 일대로 피란시키기 위해 쌓던 대역사는 숙종의 사망과 함께 중단되었다. 닥쳐올지도 모르는 전쟁의 공포보다 성을 쌓는 동안 부역의 고통이 더 컸기에 시대의 대토건 사업은 완결되지 못했으리라. 탕춘대성이나 북한산성 모두 실전에 사용한 적은 없다. 전시에 대비한 시설은 쓸모 있게 쓰기보다 무용지물로 남는 게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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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성길 구간의 서울시 우수 조망 장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쾌한 북한산 비봉능선 일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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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연결해 전시에 백성을 피란시키기 위해 쌓은 탕춘대성 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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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마을길에 위치한 보현산신각. 지금도 해마다 음력 3월 1일 마을에서 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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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능선을 따라 줄곧 산을 오르면 아찔하게 깎아지른 향로봉을 거쳐 진흥왕순수비가 서 있던 비봉까지 장쾌한 암릉길이 이어진다. 북한산은 삼국시대부터 우리 역사의 주 무대에 우뚝 솟아 있던 걸출한 산이다. 탕춘대성 암문을 통과하면서 은평구에서 종로구로 들어선다. 탕춘대성에서 구기동 쪽으로 와 산에서 내려서면 둘레길은 다시 평창마을길로 올라간다. 마을길이라지만 산기슭으로 이어져 맞은편 북악산길과 비슷한 높이로 골목이 흘러간다. 높은 길 위에서 바라보는 평창동과 신영동 일대는 북한산과 이어진 북악산 산줄기 사이에 요새처럼 들어앉은 마을임을 실감할 수 있다. 평창동과 신영동 모두 북한산성을 쌓은 뒤 새로 군대가 주둔하고 식량 창고를 설치한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성을 쌓아 지키려던 피란지에는 스스로 담장을 높이 쌓아 올린 고급 주택들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호랑이가 지키던 산 넘어 청수 흐르는 정릉동으로

평창마을길을 걷는 동안 앞쪽으로 삼각뿔처럼 우뚝 솟은 봉우리가 성큼 다가온다. 북한산의 예리한 기운이 모인 보현봉이다. 보현봉은 백운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북한산의 맥이 북악산에 다다르기 전에 크게 용솟음친 곳. 예부터 한양도성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 이곳에 오르곤 했다. 광화문에서 바라보면 북악산 뒤로 우뚝 솟은 삼각 봉우리가 그것이다. 세종은 천문 관측기구인 규표를 바로잡기 위해 왕자들이 직접 보현봉에 올라 해가 지는 것을 관찰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보현봉 자락에 크고 작은 사찰과 기도원이 특히 많이 들어선 것도 그곳에 남다른 기운이 깃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창마을길이 지나는 청련사와 연화정사 사이에는 보현산신각이 있는데, 왕이 아플 때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산신각에서는 매년 음력 3월 첫째 날 대동제가 열린다. 산신각 안에 모신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이제 사라져 자취조차 없고, 산길 곳곳에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플래카드만 사람들을 맞이한다. 형제봉 탐방안내소부터는 마을을 등지고 산을 올라가는 명상길이 시작된다. 작은 굽이를 돌고 오르막을 넘고 내려가면 길은 정릉계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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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샘길이 지나는 곳에 다양한 숲 생태 체험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성북생태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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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숲으로 잘 정돈된 솔샘길 구간은 길이 편안하다.

명상길 초입에는 나무미륵대불이라는 글자를 새긴 집채만 한 바위가 서 있는데, 구복암 일주문 구실을 하는 곳이다. 둘레길은 그 곁을 무심하게 지나쳐 곧장 산마루로 올라간다. 구복암은 50년이 조금 지난 절집이라는데, 호랑이의 보살핌을 받은 자리에 법당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바위에 새겨놓았다. 북한산 호랑이가 공룡처럼 까마득히 먼 존재는 아닌 듯 여겨지는 반가운 사연이다. 제법 힘겹게 산등성이를 오르면 길은 형제봉 정상과 북악하늘길로 갈라진다. 북한산 호랑이는 이 능선을 따라 북악산을 거쳐 인왕산까지 한걸음에 내달렸을 것이다. 인왕산 호랑이는 한밤중이면 도성 안으로 내려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호환보다 무서운 일이 훨씬 더 많은 시절이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형제봉능선에서 미련 없이 다시 산을 내려간다. 내리막길부터는 성북구로 접어드는데,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묘가 있는 정릉동이다. 본래 정릉은 중구의 정동에 있었다. 태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계모의 능을 이 산골짜기로 내쳤다. 그가 첫 번째 왕자의 난으로 죽인 이 모두 신덕왕후의 자식이었다. 태종에게 버려진 뒤 방치되다시피 하던 묘가 능으로 복원되기까지 200년이나 걸렸다. 정릉동으로 내려오는 산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가족끼리 칼을 겨눈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곱씹어보게 된다. 그들의 불화가 권력욕이 빚어낸 필연이었을까, 오해와 예단이 길러낸 우연적 비극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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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길에서 정릉계곡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전망대에서 칼바위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마을에서 새 마을로 나아가는 길

명상길 내리막길에는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마주 보이는 칼바위능선을 넘으면 강북구 수유동이다. 지나온 형제봉능선과 앞으로 넘어가야 할 칼바위능선 사이 골 깊은 정릉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명상길은 정갈한 장독대 위로 오색 깃발을 단 청수사 절집 옆 오솔길로 내려가 정릉탐방안내소 주차장에서 끝난다. 이 지역은 정릉이 근방으로 이전하기 전부터 청수동으로 불리던 곳이다. 근대 이후 이곳에 들어선 청수장이 일본인 별장에서 요릿집, 여관 등으로 탈바꿈하다 북한산국립공원 정릉탐방안내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동네 명칭처럼 남아 있다.
이어지는 솔샘길 구간은 명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번잡한 등산로 입구를 빠져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버스 종점이 있는 산속 오래된 마을에서 걸어 나와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새 마을 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장안의 부호가 모여들던 청수장이나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던 뜨거운 정릉유원지의 추억도 모두 한 세대 전 일이 되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솟던 솔샘의 물맛 역시 기억하는 이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반면 솔샘마당에서 성북생태체험관을 지나 북한산생태숲공원으로 이어지는 솔샘길 끝자락 풍경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정릉초등학교 뒤편 산자락에서 만나는, 휠체어나 유모차를 타고 산을 오를 수 있는 무장애숲길도 마찬가지다. 정릉동과 길음동 달동네가 헐린 자리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면서 일부 공원 숲으로 조성한 것들이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는 새 세대의 추억이 자라날 것이다.
오래된 마을에서 새 마을로 이어진 솔샘길에서 지나온 길들을 되돌아본다. 형제봉능선을 넘던 고즈넉한 산비탈의 길만 명상길이라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산을 넘든 평지를 걷든 옛길을 따라가든 새 길을 찾아가든, 바람과 새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걷는 사람의 발소리와 숨소리에도 귀를 열고 마음을 모으면 어디서든 명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를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 <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 등을 펴냈다.

글 김선미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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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정보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3-15
관리번호 D0000028036525 분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