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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문화 읽기 ⑩]서울둘레길 7코스 봉산~앵봉산 구간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 봄소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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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별은 남녘으로부터 올라온다. 서울둘레길 7코스도 한강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간다. 쓰레기 매립장이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난지도를 거쳐 잠시 불광천 변으로 이어지다가 봉산, 앵봉산 마루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이 길을 따라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며 봄소식을 전해올 날도 머지않았다.

너른 한강 하구에서 가양대교를 건너다

강동에서 강서까지, 서울의 남쪽 지경을 돌아온 둘레길이 가양대교에서 다시 한 번 한강을 건너 북으로 향한다. 하구의 강물은 장엄하다. 서울 시계에서만 34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강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제 바다가 멀지 않았다. 강물은 이내 행주대교를 지나 임진강과 뒤섞여 서해로 흘러들 것이다.
가양대교는 강서구 가양동에서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어진다. 다리 이름은 옛날 공암나루가 있던 자리여서 공암대교가 되려던 것이 주민들 반대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가양대교 둘레길은 고가 램프 위에서 두 차례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다리 끝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각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등 걷기에는 다소 불편한 길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풍광은 그런 불편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너른 강물에 몸을 띄운 카약이 흘러가는 서쪽으로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보인다. 걸어서 강을 건너는 일은 익숙한 풍경도 낯설게 만든다. 다리 끝에는 정수리가 평평한 산처럼 솟은 난지도가 무심한 듯 버티고 있다. 난지도의 원주민인 풀과 나무들은 다리이름이 무엇이든 관심조차 없다는 모습이다. 난지도가 있는 상암동은 과거 고양군에 속해 있을 때 수상리와 휴암이란 지역이 합쳐져 생긴 이름이다. 가양동 역시 김포군의 가마동과 고양리가 하나가 되어 탄생한 새로운 지명인 것을 보면 두 곳 모두 경계에서 부침이 많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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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하늘공원 아래 메타세쿼이아 길 사이로 이어지는 둘레길.
오른쪽) 하늘계단.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길이다.

쓰레기 산이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난지도

가양대교에서 강을 건넌 둘레길은 난지도로 들어선다. 더 이상 섬도 아니고 쓰레기 매립장도 아닌 커다란 생태공원, 난지한강공원·노을공원·하늘공원·난지천공원·평화의공원으로 나뉜 월드컵공원 전체가 바로 오늘의 난지도다.  둘레길은 제일 먼저 난지한강공원의 생태습지원을 따라 이어진다. 자전거 행렬이 펼쳐지는 길 옆으로 강변 습지를 따라 오직 걷는 이들을 위한 조붓한 길이 갈대와 부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자유로를 질주하며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 소음만 아니면 도심 속에 이런 오솔길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습지원을 지나 자유로 아래를 통과하는 난지 나들목을 건너면 노을공원에서 하늘공원 쪽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노을공원 정상부까지 지그재그로 뻗은 노을계단이 하늘로 이어진 모습을 보면 이곳을 난지산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어 보인다. 난지도가 모래밭 위에 난초와 지초가 우거지던 아름다운 섬이었다는 옛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난지도를 둘러 흐르던 샛강을 막고 서울시의 생활 쓰레기를 쏟아붓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그전에는 서울 여러 곳에, 주로 하천변 같은 데에 매립장이 있었다고 한다. 조성된 뒤 15년 동안 서울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 더미 위에 노을 공원과 하늘공원이라는 인공 산이 형성되었다. 쓰레기를 복토해 만든 생태공원은 우공이 산을 옮긴 것만큼이나 놀랍다. 악취와 침출수로 죽어가던 땅 위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들의 강인한 생명력도 눈물겹다. 현재 서울 시민들의 쓰레기는 김포매립지에 쌓이고 있다. 난지도처럼 아름다운 섬이 이미 여럿 사라진 자리에 다시 현대인의 패총 같은 산이 여기저기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둘레길은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이어지다가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하늘계단 아래서 증산로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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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공원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오뉴월이면 팥배나무에서 배꽃을 닮은 흰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날 것이다.
봉산 팥배나무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생태 · 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불광천 물길 거슬러 물이 태어난 산을 향해

평화의공원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지난 둘레길은 불광천변으로 내려선다. 본래 불광천은 난지도를 거쳐 곧장 한강으로 흐르던 것을 1977년 난지도 제방 축조 공사 때 마포구 성산동에서 홍제천에 합류하도록 물길을 틀었다. 굽이마다 여울과 모래톱을 만들던 하천은 수변공원이 되어 반듯하게 흐른다. 천변은 걷거나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맑은 날이면 북한산을 품에 안 듯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불광천은 옛날에는 연서내, 연신내, 까치내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대 때 이 부근에 연서역(延曙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반정에 참여한 장단부사 이서(李曙)가 약속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인조가 애타게 신하를 기다렸다고 해서 연신천(延臣川)이 되었다고도 한다. 불광천과 만나는 홍제천 상류의 세검정 역시 반정을 주도한 이들이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고 하니, 역사의 굽이를 틀어놓은 풍운아들의 사연이 이 일대 지명에 스며 있는 셈이다. 둘레길은 증산역 방향으로 ‘해 담는 다리’ 앞까지 천변으로 이어지다가 도로 위로 올라가 증산동 마을을 통과한다. 이 다리 위에 서면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 조망점’답게 북한산의 우람한 산줄기들이 손에 닿을 듯 다가선다. 응봉, 의상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등 11개에 이르는 북한산 봉우리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불광천은 그중 비봉 골짜기에서 발원했다.

붉은 봉산 팔배나무 숲 사이로

둘레길은 증산체육공원을 거쳐 봉산 산마루로 향한다. 증산은 비단 증(繒) 자를 쓰는데, 처음에는 산 모양을 따라 시루산[甑山]으로 불렸다. 하지만 시루 밑으로 재물이 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생각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증산에서 봉산 산마루로 가는 길은 고양시와 은평구 구산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양쪽을 함께 내려다볼 수 있다.
봉산은 정상에 있던 봉수대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봉산 산악 기상관측소를 지나면 옛 봉수대를 재현해놓은 산정에 이른다. 봉수대에서는 과연 북한산부터 북악산, 인왕산, 남산, 안산, 청계산까지 훤히 내다보인다. 이곳에서 피운 횃불과 연기는 안산에 있는 무악봉수대로 전해졌다. 이러한 신호 체계는 12시간 안에 전국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봉수대 뒤편 서남쪽으로는 둘레길이 지나온 가양대교와 노을공원, 하늘공원 그리고 멀리 망월산, 행주산성까지 조망할 수 있다. 봉수대 앞에는 이동통신 중계탑이 서 있다. 먼 산마루를 지켜보며 횃불과 연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을 봉졸들을 떠올리게 된다. 전 세계 어디로든 즉시 연결되는 스마트폰을 손에 든 우리는 산정에서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던 옛사람들에 비해 더 잘 소통하고 덜 외로워졌는가.
봉산 산마루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 곳곳에는 팥알 모양의 팥배나무 열매들이 무채색의 겨울 숲을 붉게 물들였다. 오뉴월이면 팥배나무에서 배꽃을 닮은 흰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날 것이다. 봉산 팥배나무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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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봉산에 대규모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팥배나무의 열매. 늦봄에는 배꽃을 닮은 흰 꽃이 무리 지어 핀다.
오른쪽) 불광천 변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은 북한산을 마주 보며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앵봉산 너머 통일로를 가로질러 구파발로

팥배나무 숲 아래 봉산의 동쪽 산기슭에는 세조가 스무 살에 죽은 맏아들을 위해 세운 수국사가 있다. 그의 아들은 사후에 덕종으로 추존되었고, 봉산 북쪽으로 이어지는 앵봉산 서쪽 기슭의 서오릉에 묻혔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막강한 군주에게도 어쩔 수 없는 애환이 있었을 것이다.
서오릉 가운데 제일 먼저 들어선 경릉이 덕종과 왕비의 묘다. 봉산에서 내려와 다시 앵봉산으로 올라가려면 은평구에서 고양시로 넘어가는 서오릉로의 벌고개를 건너야 한다. 풍수상 경릉의 ‘좌청룡’ 자리인 벌고개가 너무 낮아서 허물어질 것을 두려워해 함부로 지나다니는 자들에게 큰 벌(罰)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뒤에 지명이 벌[蜂]고개로 바뀌면서 경릉터를 잡은 지관이 벌에 쏘여 죽었다는 전설도 덧붙여졌다. 자동차 도로가 뚫린 벌고개는 이미 완만한 구릉이 된 지 오래고, 고양시와 경계에는 서울 북방 경계 지점이 으레 그러하듯 육중한 콘크리트로 만든 전차 방호벽이 들어서 있다. 오늘 우리에겐 살풍경한 분단의 현실이야말로 가장 큰 형벌이 아닐까. 앵봉산은 효경산, 매봉, 서달산 등으로도 불린다. 둘레길은 앵봉산의 서쪽 기슭 서오릉의 경계를 따라 오르고, 정상에서 은평뉴타운으로 내려간다. 산줄기는 불광동 박석고개에서 향로봉을 거쳐 비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봉산에서 시작해 앵봉산까지 걷는 동안 시야가 트이는 곳마다 북한산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앵봉산이 서울의 북쪽방어선이라는 사실은 산을 내려와 건너야 하는 도로의 통일로라는 이름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일로를 건너면 7코스의 마침표를 찍는 구파발역이다. 봉산의 봉수대가 변방의 동태를 빠르게 도성으로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파발은 중앙정부의 공문서를 지방으로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역에서 기운을 정비한 파발마들이 평양, 의주 등 거침없이 북쪽 벌판으로 내달리던 광경을 상상해본다. 힘 좋은 파발마들이 머물던 구파발역은 지금 지하철 3호선 서울시 구간의 마지막 역이다. 통신수단은 빛처럼 빨라졌는데, 끊어진 봉수와 파발처럼 단절된 북쪽으로 가는 길은 아직 너무 멀다. 그래도 봄 기별은 변함없이 북상할 것이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 의 탐하지 않는 삶>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글 김선미 사진 나영완, 김선미, 홍하얀(램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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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문화 읽기 ⑩]서울둘레길 7코스 봉산~앵봉산 구간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 봄소식처럼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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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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