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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소울]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도시의 크리에이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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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다양한’ 서울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의 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서울의 지역성을 이해하는 도시 크리에이터들이다.
나는 서울에서 사는 게 좋다. 서울은 일단 놀 데도, 가볼 데도 많다. 최근 새롭게 생기는 멋진 공간들과 매일 열리는 행사, 전시는 다 찾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넘쳐난다. 오랫동안 참고 있던 서울의 다양한 모습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취향이나 매력이 다른 것을 두고 우위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동안 다녀본 해외 도시의 멋진 공간들과 비교해봐도 “서울에 더 좋은 데 많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샤넬이나 디올·루이 비통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와 미디어, 디자이너들이 서울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프리즈 서울’ 기간이면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 같은 세계 최고의 큐레이터를 비롯해 전 세계 아트 딜러와 작가, 컬렉터들이 몰려든다. 지금 서울이 여러모로 가장 ‘뜨거운’ 도시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 높은 물가수준과 인구밀도, 젠트리피케이션 등 이 도시가 앓고 있는 문제도 있지만 그것마저 서울의 역동적인 면모 중 하나다. 예전에는 해외에 나가면 일본 혹은 중국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국인이냐고 제일 먼저 묻는다. 국적을 묻는 말도 국가 인기도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 나가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뉴욕 같다’, ‘파리 같다’라는 얘기는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일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반듯하게 개조해야 하는 개선 대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흔히 매체에서 묘사하는 서울의 모습은 이런 식이었다. ‘거대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집단 주거 형태의 무표정과 삭막함, 크고 작은 업체들의 치열한 홍보전이 보여주는 무질서와 번잡함,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하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모방과 혼합….’ 여기에 무질서한 간판과 표지판은 늘 서울의 도시경관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그때는 이런 서울의 면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도시의 개성이자 매력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배달의민족은 을지로에서 만날 수 있는 간판 글씨를 모티브로 ‘을지로체’라는 서체를 만들었다. 이것은 도시를 망쳤다던 그 요란한 간판이나 제멋대로인 서체들이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면서 되돌아온 경우다. 이제 서울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간판은 오히려 서울의 다양한 시공간과 혼재된 풍경을 담아내기 좋은 매체가 되었다. 이 도시의 못생긴 모습까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은 서울이 그 자체로 충분한 콘텐츠가 되었고, 어쨌거나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K-팝, K-드라마, K-뷰티 등이 한류를 알리는 도화선 역할을 해왔고 음식이나 쇼핑, 고궁을 앞세우던 서울의 매력 포인트는 ‘오리지널리티’로 바뀐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 이 도시를 가장 멋지게 만드는 이들은 바로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이해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다. <어반라이크>, <더 서울 라이브>, <아는동네>, <아마추어 서울>, <브로드컬리> 등 서울을 기록하는 로컬 미디어를 비롯해 ‘메이드 인 을지로’ 조명 브랜드 아고와 서울과학사, 서울번드처럼 한국인의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도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언리미티드 에디션, 서울레코드페어, 오픈하우스 서울,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타이포잔치 같은 대형 행사를 비롯해 신선한 관점이 돋보이는 크고 작은 디자인 전시도 부쩍 많아졌다. 서울에 새로운 문화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보안여관, 피크닉, 그라운드 시소, 더 레퍼런스, 갤러리 팩토리 같은 문화 공간 그리고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더북소사이어티 등 수많은 독립 서점은 오래오래 잘됐으면 좋겠다 싶은 곳이다. 특히 상수동의 틸라 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오디오 비주얼·사운드 축제 ‘위사 페스티벌(WeSA Festival)’은 지금 가장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예술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덕분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다양한’ 서울이 펼쳐지는 중이다.
또 이 동네 저 동네에 옮겨붙는 ‘힙’ 열풍에도 끄떡없는 고유한 로컬 문화가 건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 오래된 노포(老鋪)들은 지켜야 할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넓은 서울을 좁고 깊게 이해하면서 서울을 넘어 각 지역의 로컬리티에 대한 생각도 무르익어가는 지금, 우리는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베를린이나 파리, 런던같은 도시가 즐거운 이유는 길거리 곳곳에서 살아 있는 생활 디자인 뮤지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숍과 카페, 근사한 문화 공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련되고 멋진 장소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된 곳에서도 얼마든지 깊은 인상을 받는다. 오래되었든 새것이든 오리지널리티를 품고 있는 사람과 장소, 기억들이 그 도시의 진짜 실력이다. 거대한 랜드마크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들 수도 있지만, 시간의 켜가 쌓여야만 가능한 것들이 분명히 있다. 진짜 실력은 평소에 닦아야 나오는 것처럼.
보안여관, 그라운드 시소 등의 문화 공간은 서울에 새로운 매력을 더하고 있다.
사진. 김재형, 최현석
글. 전은경
디자인 저널리스트이자 디자인 어드바이저,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으로 200여 권을 마감하며 국내외 디자이너·경영인 등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와 전시, 공간, 트렌드에 관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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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 서울사랑 | 제공부서 | 시민소통담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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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 한해아 | 생산일 | 2025-02-19 |
관리번호 | D0000052833681 | 분류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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