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울] 코로나19를 통해 새롭게 정의하는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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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쓴다고 세계화일까

전매청이라는 기관을 기억하십니까? 담배와 인삼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정부 기관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시작되었지요. 영어로는 ‘Monopoly Bureau(독점 기관)’였습니다. 세계에 민영화 바람이 불자 전매청은 한국담배인삼공사로 개편되었습니다. 이때 영문명은 ‘The Korea Tobacco & Ginseng Corporation’이었죠.

이쯤 들으면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민영기업인 KT&G가 바로 한국담배인삼공사의 후신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KT&G의 T와 G는 담배와 인삼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약자가 아닙니다. KT&G는 ‘Korea Tomorrow & Global Corporation’의 약자입니다. 명사 tomorrow와 형용사 global을 and로 묶은 창의성을 놀리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만큼 ‘세계화’는 우리를 짓누르는 화두였다는 것이지요.

1994년 11월 17일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시드니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종합적인 국가 개혁의 방향으로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겠다”면서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월드 클래스

이제 세계화를 설명하는 일은 너무나 쉽습니다. ‘서울시민 김철수 씨가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생산한 아이폰을 들고 독일산 이어폰으로 K팝을 들으며 남미 커피콩으로 만든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고, 영국에 여행 가서 구입한 핸드백에 일본에서 만든 물건과 프랑스에서 만든 물건을 넣고 다니며,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만든 신발을 신고 퇴근 후 인도인 요가 강사의 학원으로 가는’ 모습이 바로 세계화된 세상이니까요.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계화란 결국 자유무역의 확대입니다. WTO 체제가 완성되면서 세계화도 완성되었습니다. 국가 사이에 자원의 이동과 교환이 활발해졌습니다. 국가들이 서로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고 보니 각 나라 사이에 놓인 법률과 제도의 장벽이 사라져야 했죠. 덕분에 세계의 시민들은 공통적인 지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나라 사이에 문화와 정치적 양식이 동일해졌습니다. 우리만 팝송을 즐기는 게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K팝을 즐겨 듣게 되는 일이 생겼지만, 각 나라의 문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에 흡수되고 동화되었습니다.

세계화에 반기를 드는 것은 수구적으로 비쳐졌습니다. 마치 쇄국정책을 쓰던 흥선대원군을 연상시켰죠. 식량 주권이니 하는 이야기는 철 지난 유행가처럼 들렸습니다. 기존의 물리적·지정학적·공간적 의미의 장벽과 국경은 희미해졌습니다. 이제 실질적인 국경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국경 폐쇄라는 초강수를 만난 우리

코로나19는 세계화의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국경이라는 장벽이 없어졌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북한이야 워낙 그런 나라이고, 태평양의 나우루 같은 섬나라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1년에 관광객이 160명 정도에 불과하고, 온 나라에 병원은 한 곳뿐이며, 산소호흡기는 0개, 간호사도 몇 명 안 되는 나라니까요. 그런데요, 세계화를 온 세계에 강요해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다면서 유럽을 지목해 입국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국경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국경 봉쇄는 소용없는 짓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인 미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히 트럼프라는 지도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기술이 최고인 나라지만, 마스크를 만들 원자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공호흡기도 세계 각지에서 조달하는 부품으로 생산합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어떤 나라도 독자적으로는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지금보다 높은 적은 없었습니다. 정부와 서울시가 그 어떤 나라보다 잘 막고 있기 때문이겠죠. 잠깐 생각해봅시다. 이번 재난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곰팡이 때문에 식량난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미국과 유럽이 저렇게 무너졌을까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 곡물자급률은 22%에 불과합니다. 강대국의 공통점은 농업국가입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식량을 수입하면 된다고요? 천만에요!

이정모

© 최배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을 거쳐 현재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불리며
유쾌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야기꾼이다. 신간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통해 과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까운 학문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정모 사진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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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40094731 등록일 2020-06-0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20-06-01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