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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00년 역사 기행] 청계천에서 연 날리고 다리 밟으며 새해 복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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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농사는 봄에 시작하고 가을에 끝난다. 요즘에야 사계절 영농을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겨울은 시골은 물론 서울 사람들에게도 휴식의 계절이자 재충전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매서운 바람이 불고 냉기가 엄습하는 겨울에 예전 서울 사람들은 어떤 놀이 문화를 즐기며 추위를 이기고 건강을 지켜냈을까?



아이와 청년들의 놀이, 연날리기
정초에 즐긴 놀이로는 서울 상류층이 주로 실내에서 즐기던 승경도놀이, 여성이 즐기던 널뛰기,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던 윷놀이, 청소년이 주로 즐기던 연날리기 등이 있다. 또 대보름 무렵에 즐긴 대표적 놀이로 다리밟기, 달맞이놀이, 지신밟기가 있었으며, 팽이치기, 제기차기, 제웅치기, 돈치기, 팔랑개비, 석전, 화전 등이 있었다.


옛날 서울의 개천과 고갯마루 그리고 작은 뒷산에서는 정월이면 동네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모여들어 연을 날리곤 했다.
특히 청계천에 아이들이 붐볐다. 18세기 말의 실학자 유득공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당시의 청계천 연날리기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들은 ‘액(厄)’이라는 글자를 연에 써서 해 질 무렵 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날리는 법도 한곳에 국한하지 않고 전후좌우로 휩쓸면서 다른 사람의 연과 마주쳐 연줄을 끊는 것으로 재미를 삼는다. 실을 겹치고 아교를 문질렀으니 매끈하기가 백마의 꼬리 같다.
심한 사람은 자석 가루나 구리 가루를 바르기도 한다.
연줄을 교차시키는 능력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매년 정월 보름 전 하루 이틀은 수표교(水標橋) 주위를 따라 연싸움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담을 쌓듯이 모여 선다.”


연을 날리며 다른 연의 실을 끊어먹는 것을 ‘깸치 먹인다’고 하는데, 이 끊어먹기는 대개 아이는 아이끼리, 청장년은 청장년끼리 많이 한다.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인데, 대체로 12월 20일경이면 벌써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액(厄)연을 띄운다’고 해 연에 ‘액(厄)’ 자를 쓰거나, ‘송액(送厄)’이니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고 써서 얼레에 감긴 실을 모두 풀고 끊어서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액운을 멀리 보내고, 새로운 복을 맞아들인다는 의미다.


여성만의 놀이, 널뛰기
긴 널빤지 한가운데에 짚단이나 가마니로 밑을 괴고 양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마주 보고 번갈아 뛰면서 즐기는 널뛰기는 서울의 양반집 뒷마당이나 마을에서 정초에 젊은 여자들이 즐기는 가장 대표적이고 발랄한 놀이였다.
설빔으로 곱게 단장한 여자들이 널을 뛸 때마다 휘날리는 치맛자락과 옷고름의 아름다운 모습은 뭇 남정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널을 뛸 때는 먼저 두 사람이 양쪽에 각각 올라선 뒤 널이 평형을 이루도록 조절한다. 널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누군가가 불리해지거나 널을 구를 수 없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비슷한 사람끼리 뛰면 널을 같은 길이로 차지하지만, 몸무게가 차이가 날 때에는 몸무게가 적은 사람에게 널을 많이 주어 균형을 맞춘다.
이를 ‘밥을 준다’라고 한다.
널뛰기에도 승부가 있다. 어느 한쪽이 힘껏 굴러서 상대편의 발이 널빤지에서 떨어지면 구른 쪽이 이기는 것이다.
이처럼 널뛰기는 개인끼리 승부를 내는 놀이이자, 여러 명이 편을 갈라 승부를 가릴 수도 있는 놀이였다.
<경도잡지>는 “항간에서 부녀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가로로 걸쳐놓고 양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 뛰는데, 그 높이가 몇 자씩이나 올라간다.
그때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낙을 삼으니 이것을 초판희라고 한다”라며 정월 놀이 문화로서 신명 나게 널뛰는 모습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윷놀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가 윷놀이다. 오늘날에도 정월이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모여 즐기는 대표적 놀이 문화이기도 하다.
둥근 나무를 반으로 자른 4개의 나무 막대기, 곧 윷가락을 던져 떨어지는 모양에 따라 도·개·걸·윷·모가 정해지고 말을 이동하는데, 보통 4개의 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사용한다.
말판에는 돌아가는 길과 지름길이 있으며, 말도 느린 것과 빠른 것이 있어서 내기를 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4개의 나무, 4개의 말, 넷을 의미하는 윷 등으로 ‘윷놀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윷놀이의 도·개·걸·윷·모라는 이름은 각각 특정 가축의 이름과 연관이 있다.
즉 도는 돼지를, 개는 개를, 걸은 양을, 윷은 소를, 모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 가축은 우리 조상에게 가장 큰 재산이자 가장 친밀한 동물이었으며, 이들의 걷거나 뛰는 속도가 서로 다른 데서 이런 놀이의 연관 관계가 생겨났을 것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잘 던지는 것은 물론, 말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서울 사람들이 즐기던 정월의 윷놀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마니나 멍석을 깔아놓고 즐기는 놀이로, 마을의 단합된 힘과 정신을 북돋워주는 것은 물론 가족의 화목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다리 질환의 만병통치약, 답교놀이
정월 대보름날 밤에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밟으면 다릿병[脚病]을 앓지 않는다고 해 전국에서 성행하던 놀이가 일명 ‘답교(踏橋)’ 또는 ‘다리밟기’다.
한양의 경우 정월 대보름 저녁이 되면 종각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일제히 종로로 몰려나왔다.
이렇게 운집한 사람들은 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은 다음 흩어져서 청계천에 이르러 다리밟기를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거리는 혼잡했는데, 수표교·대광통교·소광통교 부근이 가장 심했다고 한다.
장안의 다리는 주로 청계천에 있었고, 그 수가 몇 개 되지 않았으므로 장안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는 무척 혼잡했다.
그래서 점잖은 양반과 부녀자들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미리 14일 저녁에 다리밟기를 하거나, 하루 뒤인 16일 저녁에 하기도 했다. 이를 흔히 ‘양반 다리밟기’라고 했다.
개인이나 가족끼리 나와서 다리밟기를 할 때는 조용하게 했으나, 한 동네의 젊은 패들이 집단으로 하거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리밟기를 할 때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혼잡한 가운데 여흥으로 기분을 돋우기도 했다.


한 해의 기원을 담은 달맞이 놀이
정월 대보름날, 서울 장안의 많은 사람은 밖으로 나와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거나 농사일을 점치곤 했다.
달이 솟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는 것이 좋고 길하다 하여, 달맞이를 하고자 다투어 남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동쪽 하늘에서 크고 둥근 달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제각기 소원을 빌었다.
농군은 농사가 잘되어 풍년 들기를 소원하고, 과년한 자녀를 둔 부모는 금년에는 좋은 배필이 나타나 여의기를 빌고, 처녀 총각은 시집가고 장가들기를 빌고, 서당에 다니는 학동은 글공부가 늘기를 빌고, 규수는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
첫 보름달을 보면서 1년간의 농사일을 미리 판단하는 풍습도 있었다. 달빛이 붉게 보이면 가뭄이 들고, 희게 보이면 장마가 질 징조로 판단하는 식이었다. 달빛이 맑으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정월에 땅의 귀신을 사람이 밟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자 한 풍습이다.
이로써 마을의 평안과 건강을 빌고, 나아가 가정의 다복과 풍년을 기원하던 민속놀이다.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적 마을 행사로, 지방에 따라서 마당밟기, 매구(埋鬼), 걸립(乞粒), 걸궁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꽹과리·징·북·장구·쇠납 등의 민속 악기가 동원되고, 소고패·양반·하동(河童)·포수·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마을의 당산(堂山)을 비롯해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을 밟는다.
이때 지신풀이 가사를 부르고 춤과 익살, 재주를 부리며 흥을 돋운다.
지신밟기패가 자기 집에 도착하면 주인은 술과 안주 등을 차려 대접하며, 돈이나 쌀을 형편에 맞게 정성껏 희사한다.
지신밟기패는 모든 집을 돌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이 희사한 것을 모아 마을의 공동 비용으로 사용했다.
이런 놀이 외에도 아이들이 모여서 즐기는 대표적 놀이로 팽이치기와 제기차기가 있다. 팽이는 나무를 깎아 만들고 팽이채를 이용해 돌린다.
그리고 상대방의 팽이와 부딪치면서 승부를 가리는데, 당연히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것이다.
제기차기는 미농지와 창호지로 만든 제기를 여러 사람이 모여 발로 차는 놀이로, 가장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오늘날에도 명절에 고궁에 가면 옛 놀이의 하나로 쉽게 즐길 수 있다.

*서울 600년 역사 기행은 이달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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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00년 역사 기행] 청계천에서 연 날리고 다리 밟으며 새해 복 기원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78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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