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역사 따라, 문화 따라 경희궁·경희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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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경희궁 전경 ⓒ박분

복원된 경희궁 전경

‘서울의 고궁’ 하면 으레 경복궁과 창덕궁 혹은 덕수궁이나 창경궁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서울에는 한 개의 궁이 더 있으니 바로 경희궁이다. 다른 궁에 비해 덜 알려졌을 뿐 어엿한 서울 5대 궁궐이다.

종로구 신문로 2가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경희궁을 찾았다. 도심에 있지만 건물 뒤편에 위치한 까닭에 한발 물러나 앉은 듯 고요함이 감돈다. 정문인 흥화문을 지나 바람이 이는 쓸쓸한 궁궐의 빈 터에 이르렀다. 희끗한 바위로 뒤덮인 인왕산을 병풍 삼은 아담한 궁궐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단 몇 채의 전각과 행각만이 남아 맥을 잇고 있다.

숭정전 모습. 숭정전 앞마당에는 품계석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박분

숭정전 모습. 숭정전 앞마당에는 품계석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경희궁은 광해군 15년(1623년)에 건립됐다. 경희궁 숭정전에서 첫 번째로 즉위한 16대 임금인 인조부터 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10대에 걸쳐 정사를 보았던 궁궐이다. 본래 왕이 거동할 때 머무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다. 여러 임금이 정사를 보면서 궁궐로서 가치가 높아진 까닭일까. 동쪽의 창덕궁을 부르는 ‘동궐’에 대비해 서쪽에 위치한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다.

고궁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 ⓒ박분

고궁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

궁궐에 들어서려면 첩첩이 두른 문을 넘어야 한다. 정문을 통과하면 숭정문이 엄숙하게 앞을 막아선다. 숭정문을 밀고 들어서자 눈앞에 숭정전(崇政殿)이 늠름한 자태로 펼쳐진다.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다. 정전(正殿)의 좌우로 길게 이어지는 회랑 때문일까? 숭정전의 주위는 더욱 조용하고 아늑하다. 정전의 마당은 조정(朝廷)으로 불린다. 납작한 돌이 깔린 조정에는 정1품, 종2품 등 돌에 품계를 새긴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조정의 행사 때면 돌의 품계에 따라 도열했을 신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떠들썩했을 그 자리에 지금은 고궁 나들이에 나선 일가족이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1909년에 촬영된 홍화문의 모습(좌). 경희궁 숭정전의 옛 모습(우)

1909년에 촬영된 홍화문의 모습(좌). 경희궁 숭정전의 옛 모습(우)

숭정전을 에워싼 회랑에서는 옛 경희궁의 사진이 전시 중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찬란했던 경희궁의 옛 모습을 빛바랜 사진으로 전하고 있었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앞에 상투를 튼 채 궐 밖에 나앉은 노인이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무려 1909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일제가 경희궁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헐리기 시작한 흥화문과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에 남아있는 숭정전의 사진, 그리고 회상전, 흥정당…,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경희궁의 옛 전각들이 흑백사진으로 남아 가슴을 아리게 파고든다. 100여 채에 이르던 경희궁의 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제강점기 궐내에 일본 통감부 중학교가 들어서면서 경희궁 수난의 역사는 시작됐다. 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일본이 남산에 세운 박물사라는 절의 정문으로 이전돼 쓰였고 정전, 동궁, 침전 등 전각 대부분이 철거되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궁궐은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됐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궁터 복원은커녕 학교(서울중고등학교)로 사용했고 주변 대지 일부를 매각했다는 점이다.

왕기가 서린 바위로 전해지는 경희궁의 서암. ⓒ박분

왕기가 서린 바위로 전해지는 경희궁의 서암.

다시 경희궁의 남은 전각들을 둘러보았다. 숭정전 뒤편으로 자정전(資政殿)과 태령전(泰寧殿)이 잇따른다. 경희궁의 편전 자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므로 정전보다 더 안쪽에 위치해 있다. 선왕들의 어진(왕의 조상화)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던 곳으로 알려진 태령전 뒤로 큰 바위가 눈에 띈다. 인왕산의 왕기(王氣)가 서린 바위로 전해진다는 경희궁의 명물 서암이다. 물길이 마르지 않는 샘을 품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위 아래로 흐르는 물길이 보였다. 서암 뒤편으로 담장을 따라 빽빽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복원된 궁에 위엄을 더한다. 울창한 수림이 궁궐을 잘 지켜주는 것 같아 다소 위안이 되었다.

서울시에서는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자정전 등 주요 전각을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서울시가 발굴해 확인한 자리에 복원됐거나 제자리로 돌아온 경희궁의 전각들은 다섯 손가락을 겨우 꼽을 정도라 궁의 면모를 세우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시민들의 발길이 뜸하고 다른 궁에 비해 덜 알려진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복원된 건물이라 고건축으로서의 가치는 덜할지 모른다. 하지만 고건축물이 아니라고 해서 경희궁 자체의 가치가 폄하될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등 거친 역사의 한복판을 지나온 경희궁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경희궁은 다른 궁궐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살펴야 할 것 같다. 비록 옛 모습이 사라졌다 해도 경희궁은 여전히 조선의 궁궐이며, 국왕들의 삶과 업적이 깃든 장엄한 역사유적이기 때문이다. 숙종은 경희궁의 회상전에서 태어나 융복전에서 승하했고 영조는 재위기간 8차례 19년 동안이나 경희궁에 머무를 정도로 경희궁을 사랑했으며 특히 경종·정조·헌종 등 세 임금은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했으니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이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경희궁은 문헌의 기록뿐이지만 복원이 진행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참 기쁘다.

서울역사박물관 광장에 복원된 경희궁의 금천교를 보면서 경희궁이 얼마나 큰 궁궐이었는지를 짐작해 본다. 서울역사박물관 자리도 사실은 경희궁의 터라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야외 전시장도 경희궁의 옛 터에 속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전차 모습. 이곳 역시 옛 경희궁 터였다. ⓒ박분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전차 모습. 이곳 역시 옛 경희궁 터였다.

경희궁 오른편의 일명 ‘경희궁길’을 걷는다. 경희궁길은 아담한 카페와 한옥이 드문드문 보이는 한적한 골목길이다. 고궁이 지척에 있어 더욱 고즈넉한 정취가 풍긴다.

경희궁길 언덕을 오르면 성곡미술관에 이른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 선생의 자택을 개조한 미술관이다. 미술관 안에는 아담한 야외 갤러리가 있다. 숲 곳곳에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나무와 숨바꼭질 하듯 어우러져 있다. 성곡미술관에서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다. 한두 명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은 오솔길은 천천히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야외갤러리 입구에 카페가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성곡미술관 야외갤러리의 산책길에서는 숨바꼭질 하듯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분

성곡미술관 야외갤러리의 산책길에서는 숨바꼭질 하듯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곧 만물이 깨어나는 경칩이다. 경희궁과 경희궁 길을 거닐며 역사와 문화의 향취를 듬뿍 느끼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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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7-03-06
관리번호 D0000029300847 분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