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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속 비밀상점 '다모아 선물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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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상가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선물이 다 모였다_다모아 선물코너(을지스타몰)

‘끼이익’ 몇 십 년은 된 것 같은 무거운 나무문을 간신히 밀고 들어가면 8와트 전구 하나만이 가게 안을 밝히고 있다. 어렴풋한 불빛 아래로 먼지 쌓인 장식물이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 같은 박제된 엘크 아래로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의자에 앉아있던 주인 아저씨가 인심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묻는다.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보세요.”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물건이 될 거란 게

판타지 소설 속 용사가 모험을 떠나기 전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들릴 것만 같은 곳.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비밀의 상점과 달리 이곳은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다. 어두컴컴한 실내부터 먼지 쌓인 물건과 인심 좋아 보이는 주인 아저씨까지 모든 것이 똑같다. 아, 물론 나무문은 없다. 여기는 지상에서 아래로 난 20개짜리 계단을 얼추 세 번 지나면 나오는 지하도상가니 말이다.

Since 1995. 시작은 팬시점이었다. 간단한 문구류와 필기류를 팔던 상점은 20여 년에 걸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닌 골동품 가게로 변했다. 그 계기는 장우천 대표가 머리도 식힐 겸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우연처럼 운명처럼 필리핀에서 소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방문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창고 한가득 쌓인 일명 B급 제품들. 충분히 괜찮은 상태였지만 약간 금이 갔다는 이유로, 칠이 조금 잘못된 죄로 모두가 소각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즉시 현지인과의 협상을 통해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거저 얻다시피 모두 들여왔다. 순간의 충동이 아닌 본능적인 ‘촉’에 따른 선택의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이윤을 많이 붙이지 않아도 매출은 급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호황인지라 뭘 가져다 둬도 잘 팔리는 시기였다. 이후 50여 번에 걸쳐 유럽, 미국,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5개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상품을 들여오고 판매하기를 반복했다. 여러 요건이 잘 맞으면 해외에서 가게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물건이 들어오면 다시 트럭에 물건을 한가득 실어 각종 레스토랑과 카페,바 등으로 다양한 소품을 날랐다.

① 외국에서 직접 들여온 다양한 가격대, 크기의 비행기 모형 ② 등유를 넣어 불을 밝히는 호야 램프 ③ 페이퍼 앤틱의 일종인 미국 서부의 현상범 포스터

① 외국에서 직접 들여온 다양한 가격대, 크기의 비행기 모형 ② 등유를 넣어 불을 밝히는 호야 램프 ③ 페이퍼 앤틱의 일종인 미국 서부의 현상범 포스터

한참 웨스턴 바가 유행했을 때는 미국 서부영화에 나올법한 소품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페이퍼 앤틱의 일종인 갱스터 이미지 현상범 포스터만 해도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새로운 매장이 개업하면 장우천 대표가 직접 출장을 가서 실내 인테리어의 전체 마무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작은 소품 하나를 어디에 배치할지도 그의 손끝에서 결정되었고 직접 벽에 장식물까지 달아줬다. 마치 신부가 결혼식 전 일평생 가장 공을 들이는 신부 화장을 하듯이 각 업소의 최종 마무리 단장을 해주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그래도 흐르는 세월은 야속해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며 사업을 운영하던 장우천 대표에게도 위기가 왔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당시 몇 살이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에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그 이름, IMF. 강남부터 혜화까지 비슷한 업종을 운영하던 가게 서너 군데가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라 하지 않던가.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장 대표는 직접 다른 가게를 인수하고 나섰다.

“어떻게 보면 멋모르고 들이댄 거였죠. 지금은 힘들지만, 이 물건들을 잘 보관해두면 나중에 호황이 왔을 때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인수한 가게들에서 물건을 깡그리 모아서 차곡차곡 쌓다 보니 경기도 양주에 있던 100평짜리 창고가 꽉 차더라고. 말 그대로 보물창고였어요. 98년도부터 2008년 무렵까지 창고에 있던 걸 다 판매하는 데 약 10년 정도 걸렸어요.”

기본적으로 인테리어 소품은 일종의 사치품이다. 불황일수록 치마는 짧아지고 넥타이는 화려해진다지만 소품은 아무리 예쁘고 귀해도 의식주가 흔들리는 상황에선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IMF의 당시의 풍파는 운 좋게 비껴왔지만 좀처럼 경기가 풀렸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 지금 다모아 선물코너는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을지로 상권 역시 처음 다모아 선물코너가 문을 열 때만 해도 강북에서 제일 먼저 생긴 유일한 지하도상가였다. 지상에 횡단보도도 얼마 없던 시절이라 지하로 유입되는 인구도 상당했다. 하지만 위로 편하고 좋은 길이 많이 나 있는 지금은 역세권 상가가 아니면 유동인구도 그리 많지 않다. 빠져나간 건 사람만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같은 장소에 지금의 50배 이상 물건이 쌓여있었다. 게다가 똑같은 제품을 여러 점 들여오는 게 아니라 엄격한 기준에 따라 상품을 구분 짓기도 힘들었다고.

④ 현재 다모아 내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엘크 박제품 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문 제작해 들여온 장식용 금속 조형물 ⑥ 80여 종을 보유하고 있는 벽걸이 장식품

④ 현재 다모아 내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엘크 박제품 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문 제작해 들여온 장식용 금속 조형물 ⑥ 80여 종을 보유하고 있는 벽걸이 장식품

그래도 크게 나눠보자면 업소용 장식품, 홈 인테리어 소품, 개인 수집용 소품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중 요즘 가장 많이 나가는 상품은 2, 3만 원대의 중저가 개인 소장용 제품들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각자의 때를 기다려 100명이 오면 100명 다 찾는 물건이 다르다는 다모아 선물코너. 손님마다 개성과 취향이 제각각이지만 유독 잘 나갔던 물건을 살펴보면 중세시대 유럽풍의 갑옷과 칼, 소총 모형 등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딱 한 점 남은 박제 엘크 역시 한때 순록이나 사슴뿔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었다. 이제는 국제야생동물보호법 때문에 더는 들여올 수도 없어 그 희소성과 가치가 더 높아졌다. 이렇게 장 대표의 젊음이 고스란히 들어간 완성된 다모아 선물코너만의 컬렉션. 지난 20년을 한결 같이 지나올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사심을 비우는 것을 꼽았다.

“나는 뭐든지 솔직하게 다 말하고 팔아요. 사가기 전에 육안으로 다 확인하고 흠이 있으면 흠이 있다 말하고 그래서 이 가격이라는 걸 설명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트집 잡는 사람도 없어요. 내 사심을 비우면 비울수록 좋은 고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신뢰 관계를 쌓아왔고요. 이런 인생관이면 나쁘게 살진 않았다고 봐요.”

재고관리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같은 품목이 많으면 재고가 되지만 다모아의 상품들은 단품으로 한 두 점 있어서 하나하나 희소성 있는 상품이라고 답한 장우천 대표. 당장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시점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고 각자의 때를 찾아 나가길 기다린다. 지금 있는 상품들을 다 정리하면 한 품목만 전문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 분야에서 20년을 일한다는 건 애정이 없으면 못 하는 일이에요. 유럽 같은 곳에서 앤틱 상점에 들어가 보면 주인분들이 참 인상도 좋고 매너도 좋아요. 신사 같은 면이 있다고. 그런 모습에 반해서 나도 사업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나 같은 사람을 전문가로 쳐주지 않아요. 그런 면들이 조금 아쉽지.”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없어졌지만, 장우천 대표는 앞으로 남은 인생도 힘닿는 데까지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호시절은 다갔다고 말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두 시간 남짓 동안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러 명의 사람이 ‘우와’ 소리를 남발하며 가게를 둘러보다 돌아갔다. 당신만의 보물을 만날 수도 있는 만큼 을지로3가역에 내리면 다모아 선물코너에 들러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인터뷰 : 장우천 다모아 선물코너 대표
글 : 이은수 / 포토그래퍼 : 강정호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스타몰 304호(지하철 2호선, 3호선 을지로3가역 3, 10번 출구)
문의: 070-7764-4971

출처 : 매거진 G:HA[지하] 3호(서울시설공단)
G:HA[지하]는 서울 지하도 상가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Good:G) 상품, 즐거운(Haha:HA) 경험을 발굴하여 새로운 쇼핑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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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속 비밀상점 '다모아 선물코너'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서울시설관리공단 생산일 2015-07-23
관리번호 D000002300169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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