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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에 일본군 감옥이 있다? 광복절을 맞아 둘러본 용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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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과 함께 용산기지를 둘러보다
용산기지 역사에 대해 설명해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
용산기지 역사에 대해 설명해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 ⓒ김윤경
용산기지의 진정한 광복은 담장이 사라지고,
미래세대가 자유롭게 활용하는 그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 -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 -

햇빛 내리던 지난 12일, 서빙고역 앞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이하 용산공원)에서 김천수 용산문화원 연구실장과 마주했다.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용산공원의 굴곡진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천수 연구실장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용산공원을 둘러보며 일제강점기의 용산공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김윤경

용산공원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주둔해 대륙침략을 위해 건설한 전진 기지이자 병참기지였다.

“용산공원은 알다시피 많은 나라가 주둔했던 걸로 유명하죠. 오늘은 광복절을 맞아 용산 위수감옥과 그곳에 수감된 강기동 의병장을 특별히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내 길라잡이(안내라운지)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내 길라잡이(안내라운지) ⓒ김윤경

용산공원 전시공간으로 향하면서 김천수 연구실장은 여러 자료를 보여주며 상세히 그 시대의 용산기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용산기지 버스투어'를 운영할 수 없어 더 많은 시민에게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필자 역시 충분히 그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용산기지 버스투어에 참가했을 때, 총알이 뚫린 흔적이 남은 '위수감옥'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벅찼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로 갈 수 없는 만큼, 용산공원 전시공간에서 모형과 VR로 접했다. 김천수 연구실장은 대신 위수감옥은 용산구청 10층 북카페에서 조망가능하다는 팁을 알려줬다.
용산공원 내 자리한 위수감옥. 군율을 어긴 일본 육군과 군속을 수감하던 곳이었다
용산공원 내 자리한 위수감옥. 군율을 어긴 일본 육군과 군속을 수감하던 곳이었다 ⓒ김천수

국내에 남은 유일한 일본군 감옥 위수감옥

1909년 완공된 용산위수감옥은 일제강점기 붉은 벽돌과 한국전쟁의 탄흔이 새겨져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군용감옥이었고, 해방 이후, 미7사단 구금소로 사용됐으며, 공교롭게도 육군형무소로 이어졌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하고 본격적으로 용산 병영건설을 착수하면서 군사전략을 굳혀 갔다. 그는 여러 이야기를 하며 "용산위수감옥이 일시적인 목적이 아니라 일본군의 영구적인 군사기지 목적인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인 위수감옥 ⓒ김천수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인 위수감옥 ⓒ김천수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군사도시와도 같았다. 일본은 한국에서 영구주둔을 하며 식민지화를 목표로 용산기지를 건설했으며, 용산위수감옥도 만들었다. 둔지산을 포함하면 당시는 서대문 형무소보다 훨씬 넓었는데, 민간인이 수감된 서대문 형무소가 인왕산과 안산, 무악재 고개로 가로막혀 수감자 통제에 유리한 지형이듯, 용산위수감옥 역시 둔지산 구릉에 둘러 쌓인 유리한 입지를 지녔다. 다만 위수감옥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서대문 형무소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노출되었다고 한다. 용산병영 내에 설치된 위수감옥은 일반적으로 군율을 어긴 일본 육군과 군속들을 수감하는 곳이었다.
3D 영상 속 위수감옥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천수 연구실장
3D 영상 속 위수감옥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천수 연구실장 ⓒ김윤경

위수감옥에서 순국한 한국인 강기동 의병장

일본 군용감옥에서 순국한 강기동 의병장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강기동 의병장은 서울 명동에서 태어나 1909~1911년까지 반일투쟁을 하다 일제에 의해 사형을 받았다. 본디 일본어가 능통해 헌병보조원으로 경기도에서 근무하다가 의병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특히 헌병보조원으로 있었기에 군자금 및 일본 군부대 등의 상세한 정보를 잘 알아, 대일항쟁에 동참해 경기도와 강원도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용산위수감옥 모형.
용산위수감옥 모형 ⓒ김윤경

또한 위수감옥은 대한민청 사건으로 미7사단 구금소 당시 김두한이 구속돼 있던 곳이다. 훗날 이태원 육군형무소였을 때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갇혔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용산기지는 강기동 의병장이 의병활동을 하다 수감되었고, 일제 말기 징병제로 끌려온 수많은 한국인이 훈련받았던 곳이잖아요. 그런 사실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죠. 단지 누가 주둔했던 곳이 아닌 여러 사실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천수 연구실장이 말했다.
용산공원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디오라마
용산공원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디오라마 ⓒ김윤경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필자가 방문했던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김윤경

"사실 용산의 역사를 말하자면 끝이 없어요. 지금 개방된 곳도 아직은 일부일 뿐이죠" 큰 전시공간에 놓인 모형을 보니, 필자가 있는 곳이 작아 보였다. 용산공원은 정말 거대한 곳으로 91만 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용산공원 안내 3D 영상을 보여주는 키오스크
용산공원 안내 3D 영상을 보여주는 키오스크 ⓒ김윤경

용산전시공간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용산공원 3D 투어 영상 키오스크가 생겼다. 올 연말쯤이면 국립중앙박물관 뒤편 야구장 등이 개방된다. 이렇듯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에 희망이 생겼다.
용산공원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상세히 알려준 김천수 연구실장
용산공원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상세히 알려준 김천수 연구실장 ⓒ김윤경

김천수 연구실장은 역사를 전공하고, 한미 연합사령부에서 근무를 하면서 역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간 강의와 여러 책을 써왔다. 한동안 용산구청 소식지에 글을 실어 필자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철저한 고증을 위해 외국에 가야 했는데 여러 도움의 손길 덕분에 미국과 일본에 직접 가서 현장을 확인하며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국민이 가진 애국심이 절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용산기지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아직 용산공원에 관련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람들이 어떻게 접하게 되면 좋을까, 그에게 물었다.
"용산공원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용산공원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접하다 보면 다양한 흥미들이 쌓여 소통이 되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을까요"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김윤경

무더웠지만, 용산공원 내 잔디가 유독 푸르게 보이던 날이었다. 이런 푸른 빛을 지금의 우리가 볼 수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15일은 고난 속에 찾은 광복절이다.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광복절 그날 또한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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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에 일본군 감옥이 있다? 광복절을 맞아 둘러본 용산기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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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김윤경 생산일 2021-08-17
관리번호 D000004327465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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