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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봄을 마주하다! '북악산 북측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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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북측 탐방로가 개방된 지도 벌써 반 년이 넘었다. 많은 시민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찾은 북악산도 봄을 맞았다. 겨울에도 걸었지만 50여 년 만의 봄을 만나고 싶었다. 2번, 3번 출입문으로는 이미 올라가 본 터라,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코스에 도전해 보았다.
윤동주 문학관 맞은편 길에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이선미
윤동주 문학관 맞은편 길에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이선미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창의문은 자하문으로도 불렸다. 여기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쯤에 항상 물이 흐르는 약수처가 있는데, 이곳을 청계천 발원지라고 보고 있다.
북악산 탐방이 시작되는 창의문 ⓒ이선미
북악산 탐방이 시작되는 창의문 ⓒ이선미

이제는 신분증 제출 없이도 출입이 가능해져 예전 같은 긴장감은 없었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고 곧장 북악산으로 향했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고 북악산으로 향한다. ⓒ이선미
창의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고 북악산으로 향한다. ⓒ이선미

1번 출입문에서 오르는 북악산은 ?길고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고 해서 무척 긴장을 했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구간 중간마다 위험이 따를 수 있으니 난간을 잡고 올라가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창의문을 올라서자마자 성곽이 내려다보인다. ⓒ이선미
창의문을 올라서자마자 성곽이 내려다보인다. ⓒ이선미

경고는 사실이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다들 힘이 드는지 몇 걸음 오르다 쉬고 또 쉬며 올랐다. 그렇다고 못 오를 만큼 힘들지는 않다. 어린이들도 오르기는 한다. 물론 동행한 엄마 아빠가 두 배로 힘들어 보이기는 했다.
세보지 않았지만 거의 천 개 정도의 계단이라고 한다. ⓒ이선미
세보지 않았지만 거의 천 개 정도의 계단이라고 한다. ⓒ이선미

사실 북악산에 오르면서 기대하는 게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산에는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고 졌을까. 그 산에서 어떤 봄꽃들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기도 했다. 허락된 길로만 다녀야 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데크 너머로 보이는 꽃들이 풍성했다. 더 좋은 날이 와서 북악산 야생화도 마음껏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 경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선미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 경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선미

2007년 개방된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의 구간은 악명 높은 가파른 계단길이 힘들긴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서울 백악산(북악산) 일원'은 명승 제67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마련된 백악 쉼터에 들어섰다. 창의문에서 올라오는 이 길은 한양도성 순성길 내사산 코스 중 백악구간에 해당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숙정문을 거쳐 혜화문까지 약 4.7km에 달하는 길이다.
시민들이 백악쉼터에서 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시민들이 백악쉼터에서 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해발 342m 높이의 백악산은 내사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으로 지금도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운대로 가는 길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곳에는 백악마루가 있다. 이곳이 백악산 정상이다. 이 백악마루 바위에서 시민들이 인증샷을 찍곤 한다. 바로 옆에는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이라고 쓴 표지석이 있다. 1979년부터 북악통제대와 발칸 진지가 설치 운용되다가 2000년 이전했다는 기록이었다.
백악마루 바위에 올라 시민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선미
백악마루 바위에 올라 시민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선미

백악마루에서 백악 곡장 쪽으로 길을 나서면 1.21사태 소나무가 바로 옆에 있다. 이 소나무는 북악산이 50년 동안 폐쇄되어야 했던 김신조 사건의 증거다. 1968년 31명의 무장공비가 백악산까지 내려와 이곳에서도 교전이 있었다. 그 순간의 총탄이 박힌 소나무가 15발의 탄흔을 간직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15발의 탄흔이 남아 있는 1.21사태 소나무 ⓒ이선미
15발의 탄흔이 남아 있는 1.21사태 소나무 ⓒ이선미

한양도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각자성석(글자를 새긴 성돌)이 청운대 아래쪽 성벽에도 남아 있었다. 이곳의 각자성석은 1804년 10월 순조 4년의 기록이다. 각자성석에도 시대별 차이가 있는데 18세기 이후에는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한양도성에는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이 280개 이상 남아 있다. 성벽 밖으로 걸으면 각기 다른 벽 축조 형태를 볼 수도 있다.
청운대 아래 성벽에서도 각자성석을 볼 수 있다. ⓒ이선미
청운대 아래 성벽에서도 각자성석을 볼 수 있다. ⓒ이선미

조금 힘들었던 호흡을 편히 쉴 수 있는 언덕에 닿았다. 청운대는 백악산에서 가장 평평한 곳으로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백악산에서 가장 평평한 청운대 언덕 ⓒ이선미
백악산에서 가장 평평한 청운대 언덕 ⓒ이선미

탐방로에는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서 잠시 쉬거나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특히 2번이나 3번 출입구에서 들어서면 둘레길처럼 편안한 길이 이어져 있어 산책처럼 가볍게 길을 나서도 좋다. 곡장으로 가며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한양도성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 아름다운 그림의 끝에 백악 곡장이 이어졌다.
곡장으로 가는 길에 내려다본 백악 구간 풍경 ⓒ이선미
곡장으로 가는 길에 내려다본 백악 구간 풍경 ⓒ이선미

곡장은 성벽 일부를 둥글게 돌출해 쌓은 곳으로 더 효과적인 방어를 위한 구조물이다. 이제 본래의 용도를 다한 백악 곡장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유적이다. 사방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곡장에서 시민들은 한참을 머물곤 했다.
성벽 일부를 둥글게 돌출해 쌓은 곡장은 적을 더 잘 살피고 방어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이선미
성벽 일부를 둥글게 돌출해 쌓은 곡장은 적을 더 잘 살피고 방어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이선미

이젠 더 이상 곡장에서 경계를 하고 적을 방어하지 않지만 여전히 철조망이 쳐진 주변이 현실을 상기시켰다. 철조망 너머 곡장을 다시 되돌아보며 한적한 길을 내려왔다. 곡장 안내소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받은 표찰을 반납하고 4번 출입문을 향해 산길을 내려왔다. 나무 사이로 북한산 자락이 바라보였다. 북악스카이웨이도 언뜻언뜻 내려다보였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어도 철조망이 쳐진 주변 풍경이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선미
아무리 멋진 풍경이어도 철조망이 쳐진 주변 풍경이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선미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4번 출입문에는 한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입산 가능 시간이 임박해서 나갈 수만 있다고 했다. 내년에는 북악산 남측 면도 개방될 예정인데, 안전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입산 시간과 탐방로는 제한된다. 계절마다 입산 시간이 다르므로 느지막이 출발할 때는 시간을 챙겨봐야 한다.
북악산 4번 출입문이 그리 크지 않아 지나칠 수도 있다. ⓒ이선미
4번 출입문은 출입문이 그리 크지 않아 지나칠 수도 있다. ⓒ이선미

50년 만의 찾아간 북악산 북측 탐방길의 봄, 산에는 옛날처럼 꽃이 피고 바람이 불었다. 병꽃나무, 팥배나무꽃 피고 애기똥풀, 애기나리, 각시붓꽃도 피어나는 오월의 북악산은 인상적이었다.

■한양도성(백악구간)

○ 구간: 창의문~혜화문 (4.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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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봄을 마주하다! '북악산 북측 탐방로'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선미 생산일 2021-05-25
관리번호 D000004263091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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