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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등학교 운동장 안에 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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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에 있는 ‘장의사지 당간지주’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에 있는 ‘장의사지 당간지주’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5) 장의사지 당간지주

자하문을 넘어가면 인왕산 자락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비록 주택과 도로 때문에 많이 가려졌지만 야트막한 산자락과 홍제천이 따라 흐르는 주변 풍경은 조선시대는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 백사실 계곡이 있고, 대원군이 탐을 낸 석파정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검정을 지나 신영동 삼거리에 세검정초등학교가 있다. 1948년 개교해서 7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이곳에는 보물 제235호인 장의사지 당간지주가 운동장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에 문화재가 있는 경우는 보물로 지정된 석등과 5층 석탑이 있는 군산 발산초등학교와 더불어서 유이하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발산초등학교에 있는 석등이 장의사지 당간지주보다 하나 앞선 보물 제234호라는 점이다. 당간지주는 사찰의 입구에 만들어놓은 깃대로서 짐대라고도 부른다. 보통 사찰에서 법회가 열릴 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탱화를 높이 매달아놓는데 그걸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당간지주였다. 보통은 돌기둥 두 개를 나란히 세우고 위 아래로 구멍을 뚫어놓은 형태로 남아있는데 장의사 당간지주는 위쪽에 하나만 뚫려있다. 돌기둥 사이에 탱화를 매단 나무 기둥을 세우고 넘어지지 않도록 위쪽 구멍에 빗장처럼 나무를 꽂아서 고정시키는 방식을 쓴다.

당간지주가 남아있다는 것은 이곳에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당간의 높이가 3.6미터나 되기 때문에 사찰의 규모도 적지 않다고 추측할 수 있다. 장의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태종무열왕 때인 659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종무열왕의 꿈에 백제와 싸우다 전사한 화랑인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삼국시대 이 지역이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세력이 맞물린 전쟁터였다는 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장의사는 신라가 사라진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간다. 고려 때는 임금이 행차해서 불공을 드렸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제사를 지내면서 왕실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산군이 장의사를 없애고 꽃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도성 인근에서 장의사 앞 계곡이 으뜸으로 꼽혔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이후 장의사는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게 되었다. 강의를 하러 들릴 기회가 있어서 당간지주를 잠시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놀이기구에서는 학생들이 웃고 떠들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었다. 권력자의 놀이터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걸 지켜보면서 역사가 아픈 과거를 치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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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정명섭 생산일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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