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왕비는 아니지만 조선의 왕을 낳은 일곱 후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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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궁 전경

칠궁 전경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2) 칠궁

칠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일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시간에 맞춰서 무궁화동산에 있는 칠궁 안내소로 가야 한다.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한 후에 도로를 건너면 비로소 칠궁에 들어갈 수 있다. 관람객들과 함께 경찰과 경호원이 동행한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이유는 칠궁의 담장 너머에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지금도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칠궁은 조선시대 임금을 낳은 후궁들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비록 임금을 낳았지만 왕비의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과 함께 종묘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로 세운 사당에 모셔야만 했다. 원래는 이곳에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만 존재했다. 그러다가 고종과 순종 때 다른 사당들이 이곳에 옮겨왔고, 1929년에 덕안궁이 이곳에 오면서 칠궁이 되었다.

이곳에 모셔진 사당은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과 남편인 숙종의 손에 죽은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사당인 대빈궁,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효장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를 모신 연호궁,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 정조의 아들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를 모신 덕안궁으로 모두 일곱 개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사당은 모두 다섯 채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이 각각 한 사당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3개의 사당 중 가운데가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

3개의 사당 중 가운데가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희빈 장씨를 모신 대빈궁이다. 다른 사당의 기둥들이 모두 사각형인데 비해 대빈궁의 기둥만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후궁들 중에 유일하게 중전의 자리에 올랐던 흔적으로 보인다. 칠궁 안에는 사당 외에도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송죽재와 풍월헌 같은 재실과 전사청, 향대청 등이 있다. 사당에 모셔져있는 신위를 옮겨야 할 때 잠시 모셔두는 이안청은 사당마다 하나씩 딸려있다.

칠궁 정자의 가을 풍경

칠궁 정자의 가을 풍경

서쪽의 사당이 있는 담장 너머에는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보인다. 이곳에 흐르는 냇물인 냉천의 이름을 딴 냉천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아래에는 냉천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는데 여기 장대석에 어머니의 신위가 모셔진 육상궁을 들린 영조가 남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냉천에서 흐르는 물은 사각형 연못으로 이어진다.

칠궁 옆에는 1.21사태가 나기 이전까지 이씨 왕족들이 살던 고택이 남아있다. 전체 관람 시간은 30분 정도이고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 정도면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탓인지 고즈넉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가을의 정취를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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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는 아니지만 조선의 왕을 낳은 일곱 후궁 이야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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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정명섭 생산일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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