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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년 서울 역사를 한 자리에...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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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묻혔던 한양도성 유적이 100여 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남산도서관과 안중근의사기념관 근처에 있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시범 운영 및 무료 개방했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한양도성 남산 구간의 일부로 그동안 멸실된 것으로 알았던 성벽 구간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민에게 공개한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은 약 18.6km 길이를 자랑하는 대규모 성곽이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은 약 18.6km 길이를 자랑하는 대규모 성곽이다 ⓒ김진흥

2009년부터 서울시는 남산의 역사성과 자연성 회복을 위한 ‘남산 회현자락 정비사업’을 추진했다. 힐튼호텔 앞 아동광장 일대 성곽 34m 발굴(1단계)을 시작으로 백범광장 일대 성곽 42.4m 발굴(2단계), 중앙광장 일대 성곽 189.3m 발굴을 끝으로 3단계 사업을 완료했다. 총 길이 약 189m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내 성곽은 3단계 사업으로 발굴된 구역이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은 약 18.6km 길이를 자랑하는 대규모 성곽이다. (현재는 약 13km 구간이 남아 있다.)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전국에서 약 20만 명을 동원해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과 그 사이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한양도성은 한성부(옛 서울 명칭)의 경계를 표시하고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삼순이 계단’으로 불리는 이 계단은 신사 입구에서 본전으로 향하는 돌계단 384개 중 일부다. 조선신궁의 흔적이다.

‘삼순이 계단’으로 불리는 이 계단은 신사 입구에서 본전으로 향하는 돌계단 384개 중 일부다. 조선신궁의 흔적이다. ⓒ김진흥

이 중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있는 남산 구간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깃든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제가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남산을 조선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신궁’을 세운 것이었다. 조선신궁을 설치하기 위해 한양도성을 무참히 허물었고 사잇길을 내버렸다. 현재는 남산 소월길로 불린다.

박정희 정부가 세운 남산 분수대

박정희 정부가 세운 남산 분수대 ⓒ김진흥

광복 이후, 조선신궁은 철거됐지만 한번 심하게 훼손된 한양도성은 점점 제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조선신궁 터에는 1956년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으나 4.19혁명 이후 분노한 시민들이 동상을 파괴했다. 1968년 12월, 박정희 정부는 같은 자리에 남산 식물원과 분수대를 건설했다. 둘레 20m 분수대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이 무렵 한양도성은 또 한 번 심하게 훼손된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반공 지도자를 기르고 선전활동을 펼칠 자유총연맹, 타워호텔(현 반얀트리호텔)을 지었다. 건축 과정에서 기존 한양도성 성돌 일부가 두 건물들의 축대로 쓰였다. (이러한 정황도 2007년에서야 밝혀졌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성벽 구간을 찾아 전시하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성벽 구간을 찾아 전시하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김진흥

14세기(파란색 선 아래), 15세기(파란색 선 위), 17세기 이후(빨간색 선 오른쪽) 성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4세기(파란색 선 아래), 15세기(파란색 선 위), 17세기 이후(빨간색 선 오른쪽) 성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김진흥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는 한양도성 남산 구간 수백 년의 역사 현장이 한자리에 잘 드러나 있다. 우선, 관람 데크를 따라 길게 이어진 한양 도성은 여러 시대에 걸쳐 보수된 흔적들을 관람할 수 있다.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성돌로 사용한 태조(14세기)때부터 돌을 납작하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어 성돌로 이용한 세종(15세기), 성돌의 크기를 가로, 세로 40~45cm 내외의 네모난 방형으로 규격화해 만든 숙종(18세기) 때까지 겹겹으로 보수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기별 축성 양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을 쌓을 때 임시로 나무 기둥을 박았던 구멍의 흔적들도 함께 발굴됐다.

관람데크 따라 한양도성을 관람할 수 있다

관람데크 따라 한양도성을 관람할 수 있다 ⓒ김진흥

1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내자육백척' 각자성석

1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내자육백척' 각자성석 ⓒ김진흥

한양도성을 따라 높은 언덕에 올라가면 이름이 새긴 성돌을 확인할 수 있다. 축성과 관련된 글자를 새긴 돌이라는 뜻의 각자성석은 천자문 순서로 표시된 축성구간 명칭(14세기), 축성 담당 지방(15세기), 공사 관계자 이름(17세기 이후) 등을 새겼다.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내자육백척’ 각자성석은 14세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벽 중간 멸실된 구간 왼편에는 조선 신궁 배전 터가 자리했다. 이 건물지는 조선신궁 내 배전(방문객들이 절하며 참배하는 곳)의 기초 구조물로 성벽 발굴조사 때 함께 발견됐다. 조선 수도의 상징을 헐고 한반도 최대 신사를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신궁 배전 터

조선신궁 배전 터 ⓒ김진흥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방공호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방공호 ⓒ김진흥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방공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방공호는 적의 공격이나 폭격기의 공습을 피하는 방어시설로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일제는 경성(옛 서울)에 수많은 방공호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현재는 관람객 안전을 위해 내부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조선신궁 배전 터 옆에는 분수대가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 1960년대 만들어진 분수대는 한양도성 발굴 전까지 광장 형태로 유지됐다. 남산식물원과 함께 옛 서울 랜드마크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울의 아픈 역사를 전하는 증거물이 됐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돌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돌들 ⓒ김진흥

이외에도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발굴하면서 발견한 돌들도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을 조성했을 때 사용된 축댓돌(견치석), 조선시대 성돌 등 생생한 발굴 현장 모습들을 관람할 수 있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김진흥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은 정기해설을 실시하는 중이다. 평일과 주말에 해당하는 시간에 선착순으로 신청하면 유적과 함께 생생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주말에는 영어 해설도 가능하다. 자세한 관람 정보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서울시는 1년간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11월 정식 개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

■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위치 : 서울 중구 회현동1가 100-177
○ 운영시간 : 3~10월 09:00 ~ 19:00, 11~2월 09:00 ~ 18:00
○ 홈페이지 : http://seoulcitywall.seoul.go.kr/main/index.do
○ 문의 : 02-779-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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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년 서울 역사를 한 자리에...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진흥 생산일 2020-11-23
관리번호 D000004130470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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