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글보다 인생이 먼저 보인다…어르신들의 '시화전'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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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2020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했다. ‘온라인 시화전’이다. 그때 출품한 작품 중 서울특별시장상 3편,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장상 14편, 전국 시화전 입상작 18편 등 수상작 총 35편이 있다. 모두 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이다. 필자는 시화전의 작품을 보면서 배움에 목말라하셨던 어릴 적 할머니가 떠올랐다.

2020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 포스터

2020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 포스터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필자의 할머니는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집안에 유일한 남자였던 막내동생만 초등학교에 보내서 글자를 깨우치게 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원거리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실 때면 차례대로 한글을 깨친 손주들의 손을 잡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철부지였던 우리에게 늘 배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할머니는 자신을 보라면서 우리가 공부를 게을리하기라도 하면 엄하게 꾸지람을 하셨다.

그러다 노인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시곤 “내가 이 나이에 한글을 배워서 뭐하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동네 친한 할머니와 같이 노인대학에 등록하셨다. 그때부터 하교한 뒤 할머니가 공책에 한 글자씩 따라 쓰면서 한글을 익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린 시절 연필을 손에 쥐고 꾹꾹 눌러서 글자를 쓰면서 소리 내 발음하셨던 할머니가 그립다.

2020 서울시 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작품집

2020 서울시 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작품집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서 서울시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은 문해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수상작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다. 농삿일에 바쁜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배워서 쓰지 못하는 점을 불쌍히 여긴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처음엔 한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불렀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시화전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작품을 구경한다면 정말 기뻐할 것 같다.

'서울 문해교육 시화전' 작품은 카카오 갤러리(다음 갤러리)를 통해서 공개했다. ‘다음 모바일 뉴스탭’과 ‘카카오톡 #뉴스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지금 누구든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문해교육 시화전을 구경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를 크게 혹은 작게 구경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를 크게 혹은 작게 구경할 수 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시화전을 한 편씩 감상할 수 있다. 35편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총 4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화면 중앙의 왼쪽과 오른쪽에 화살표 표시가 있어서 왼쪽으로 넘기면 앞의 작품이 나타난다. 온라인 전시회가 아닌 오프라인 전시회가 열려서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면 어땠을까? 관객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한 편씩 집중해서 구경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오가는 관객들도 있고,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 전시회만의 장점이 느껴졌다. 작품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수도 있다. 작품을 감상했단 표시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짧은 감상평을 입력할 때 그것을 읽어보실 어르신의 환한 표정이 떠올랐다.

마우스로 작품을 누르면 화면의 오른쪽 위에도 동일한 작품이 뜨면서 그 아래 -,+가 나타난다. +를 누르면 작품이 점점 커지고, -를 누르면 작품이 점점 작아지면서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온다. 작품의 글자가 깨알같이 작아서 보기 어렵다면 +를 눌러서 작품을 키우면 작품 속 글자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위 작품은 27% 확대된 크기다.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은 작품 3편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은 작품 3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먼저 서울특별시장상을 받은 작품 3편을 살펴봤다. ‘코로나가 갑자기’를 쓴 윤집득 님은 90세다. 평생 코로나19처럼 지독한 놈을 처음 봤다면서 의료진의 노고와 코로나19로 지친 많은 사람에게 힘내라고 응원하고 있다. ‘희망’을 쓴 김덕례 님은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마스크를 벗고 글을 잘 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콩닥콩닥 설레는 내 마음’을 쓴 송정숙 님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상황이지만, 수업을 받을 때면 설레는 마음을 콩닥콩닥 뛰는 가슴에 빗대어서 표현했다.

시나 소설이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은 특히 바깥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경로당이나 복지관에서 또래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꼼짝없이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 집안에서 문해교육으로 배움을 이어나가면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달래고 계신 것이다. 시에서 그분들의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작품마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 어르신들을 응원할 수 있다

작품마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 어르신들을 응원할 수 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시에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시의 내용을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물론 어르신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시 자체도 결코 난해하지 않다. 어르신들이 시를 쓰는 그 순간엔 어릴 적 동심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때론 세월을 가늠키 어려울 만큼 천진난만한 표현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물론 한두 줄의 글을 적어놓은 작품을 시라고 간주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애써 시화전에 작품을 출품한 어르신들의 용기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아직 글자를 완전히 깨치지 못한 어르신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글자로만 표현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을 것 같다.

어르신들이 문해교육 시화전에 작품을 출품할 수 있기까지에는 ‘문해교육센터’가 있었다. 평생교육법 및 서울특별시 성인 문해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서 서울특별시 문해교육센터가 출범했다. 25개 전 자치구에 문해교육센터가 있다. 필자의 할머니께서 다니셨던 노인대학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 내 나이에 한글을 배워서 무엇하리”라고 체념하는 어르신들이 주저하지 말고 문해교육센터의 문을 두드리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생각으로 바뀔 것이다. 배움엔 끝이 없다. 그래서 평생교육이라 하지 않던가. 한글을 익히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어르신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문해교육센터의 존재를 어르신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시화전 갤러리에서 총 35편의 수상작을 감상할 수 있다.

시화전 갤러리에서 총 35편의 수상작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2020 문해교육 시화전의 제목 '인생, 글을 만나 시와 그림이 되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에서 어르신들의 인생이 드러난다. 과거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까막눈으로 지내왔던 분들이다.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의 시적인 표현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 글자만 익히면 누구든 시인이 될 수 있다. 각자 감정과 생각이 있어서 그것을 글자로 표현한 뒤 다듬고 다듬으면 한 편의 멋진 시로 탄생한다. 늦었지만 배움엔 끝이 없음을 몸소 보여준 어르신들이 코로나19를 이겨낸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문해교육센터에서 배움을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 2020 문해교육 시화전 온라인 작품집 : http://slec.kr/online-collection/
■ 각 자치구 문해교육기관 : http://smile.seoul.kr/Munhea/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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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윤혜숙 생산일 2020-10-16
관리번호 D0000041028508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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