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

영화 기생충 촬영지가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관왕을 수상하면서 촬영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마포구에는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가 두 곳이나 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손기정로에 위치한 '돼지슈퍼'와 슈퍼에 인접해 있는 '계단'이 그 곳이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로 핫한 돼지슈퍼 내부와 주인부부 ©박분

충정로역 6번 출구에서 아현동 가구거리를 지나 10분 남짓 걸으면 돼지슈퍼가 모습을 보인다. 영화 기생충에서 등장인물인 '기우'와 '민혁'이 슈퍼 앞 파라솔 아래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 장소가 바로 이 곳 돼지슈퍼다.

돼지슈퍼는 골목을 오가다 잠깐 앉아 음료수로 목을 축이거나 귀가 길에 간단한 찬거리를 살 수 있는 평범한 동네가게의 모습이다. 가게의 주인부부는 손님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가게 유리창에는 ‘기생충 촬영 우리슈퍼’라고 쓴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영화에서는 돼지슈퍼가 아닌 ‘우리슈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까닭에 아마도 방문객들이 맞게 찾아왔는지 혼동할까 염려한 것 같았다.

돼지슈퍼 옆 가게 '꿈은 이루어진다' 간판 모습 ©박분

슈퍼 옆 가게에서 종이학을 접고 계신 어르신도 환한 미소를 보인다.

“방문객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슈퍼의 사진을 찍어 가는데 우리 가게도 알게 모르게 함께 찍혀 기왕에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가게를 단장하는 중”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간판 이름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더욱 축하하는 것 같았다.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걷다보면 깔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론 잔잔하게 마음을 흔들기도 하는데 이게 영화 촬영지를 찾는 매력이 아닐까?

돼지슈퍼 앞 골목길 풍경 ©박분

영화 속 배경이 된 곳을 직접 보니 반갑고도 신기했다. 수려한 경관이 아닌 동네 골목길에 숨은 듯 있는 작은 가게와 후미진 골목길 칙칙한 계단도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콩닥콩닥 가슴을 뛰게 한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뒤섞여 다니는 골목길에는 마을버스도 오간다. 돼지슈퍼 앞은 고맙게도 마을버스의 정류장 구실도 하고 있었다.

이 가파른 계단이 기생충에 나온 '기택계단'이다 ©박분

돼지슈퍼 옆 골목길 뒤편으로 영화 속 배경이 된 장소가 또 한 곳 펼쳐진다. 허름한 골목길 끝에 가파른 계단이 있다. 기생충의 주인공인 기택이 사는 동네 계단이다. 돼지슈퍼에서 몇 발짝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이 계단은 벌써 ‘기택계단’으로 불리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박분

주인공처럼 계단에 올라서서 마을 풍경을 바라본다. 위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전선줄이 흡사 케이블카 선로를 방불케 해 신기할 정도다.

영화 촬영지라는 특별함으로 더욱 새롭게 다가왔지만, 사실 작은 슈퍼와 가파른 계단은 서민들의 생활터전이자 외진 도시 골목길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들이 아닐까 싶다. 동네 미장원과 책방, 세탁소 등 외양이 화려하진 않지만 오랜 시간을 마을과 함께한 사랑방 같은 곳이 아직 곳곳에 있다. 이번 영화 기생충 수상을 계기로 평범한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촬영지와 더불어 가볼만한 명소 손기정체육공원과 손기정 기념관 ©박분

손기정로에서 손기정 체육공원은 꼭 돌아봐야할 코스다. 돼지슈퍼가 자리한 골목길 언덕바지를 직진해 올라오면 손기정 체육공원이 지척이다.

손기정 체육공원은 그의 모교인 양정보통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학교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할 당시 지중해 지방에서만 자라는 월계수를 대신하여 수여받은 대왕참나무가 심어져있다. 공원 내부에는 1904년에 지어진 기존의 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주민체육시설, 문화시설, 기념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청동투구를 끌어안은 손기정 동상 ©박분

투구를 끌어안은 손기정 동상도 보인다. 손기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손기정 기념관을 방문하면 손기정 선수와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인근 중림동에는 ‘약현성당’과 ‘성요셉아파트’가 있으니 함께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성당 약현성당 ©박분

붉은 벽돌건물의 단정한 모습의 약현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성당이다. 성당이 자리한 이곳은 오래전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의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렀고, 점차 줄여서 ‘약현’이란 지명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약현성당은 천주교 박해 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역사성과 한국 최초의 벽돌집 성당으로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252호로 지정돼 있는데 1998년에 화재로 성당 내부가 소실돼 현재 성당 건물은 2000년에 복원됐다.

중림시장길 골목의 성요셉아파트 ©박분

새벽시장인 중림시장길 골목으로 들어서면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이웃을 이룬 ‘성요셉아파트’가 몸체를 드러낸다. 지은 지 40년을 넘어선 아파트는 굽어진 골목길 따라 곡선으로 함께 굽어진 모습이 이채를 띤다. 직선의 형태의 보통 아파트와는 다른 형태다. 성요셉아파트의 1층에는 식당과 미장원, 방앗간 등 가게가 들어서 상가를 대신하고 있음도 또 다른 볼거리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이나 ‘트래비 분수’는 누구라도 잊을 수 없는 영화의 배경이 된 명소들이다.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기생충 촬영지로서 '손기정로' 일대가 아무쪼록 관광객과 거주민들 모두에게 알찬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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