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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박물관서 만난 동대문 패션의 시작, 그리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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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은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에 희망과 꿈이 있었다 ⓒ박세호

평화시장은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곳에 희망과 꿈이 있었다 ⓒ박세호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변의 청계천박물관에서는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전시회가 오는 11월 24일(일)까지 열린다. 동대문에서 오간수교를 건너다 보면 일대가 평화상가로 대한민국 섬유 의류산업의 중심부라 할 수 있다. 전시회는 평화시장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장, 사무실, 작업장의 모습을 미니어처, 화면,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노소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청계천박물관 ⓒ박세호

남녀노소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청계천박물관 ⓒ박세호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기획전시장은 1층이라, 윗층에서 시작되는 청계천박물관 상설전시 '서울의 역사를 품은 물길, 청계천'을 관람 후 내려와 볼 수 있지만 원한다면 바로 1층 기획전시장 입구로 입장해도 된다.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의 기획전시장 입구 ⓒ박세호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의 기획전시장 입구 박세호

실제 크기 공장사람들의 모형이 창을 통해 비춰지는 가운데, 당시의 역사적 경제적 배경을 해설해 놓았다. 1960~70년대 평화시장에서 제작됐던 상품과 그 상품을 제작했던 노동자들의 값진 삶의 자취들이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공간 낡은 작업대에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박세호

좁은 공간 낡은 작업대에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박세호

미니어처들은 동심에 가득찬 흥미로운 창작품들이었다. 청계천 변을 중심으로 처음에는 판자촌 동네가 형성되었고, 이곳에서 생활과 더불어 생산, 유통 등 상거래가 이뤄지는 중심지로도 작용을 했다. 원자재와 부자재 조달, 판매와 운송이 편리한 지리적 이점 덕에 의류 유통의 중심지로서 평화시장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장 바쁜 거리 중 하나인 평화시장 앞길 ⓒ박세호

지금도 가장 바쁜 거리 중 하나인 평화시장 앞길 ⓒ박세호

재현된 봉제공장의 모습을 통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선 특별한 자격 없이도 쉽게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서울에서의 안정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성공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만큼 작업환경은 혹독하였다. 다락에서 뜨거운 열기를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며 일했던 봉제공장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미싱을 돌리며 활기찬 작업을 이끌어갔던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박세호

미싱을 돌리며 활기찬 작업을 이끌어갔던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 박세호

옷감과 실이 날리는 방향으론 선풍기 바람도 막아야 했다. 전시장에는 ‘선스타’, ‘부라더’ 미싱, ‘단춧구멍 재봉틀’ 등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평화시장은 생산량 증가로 직접 생산에서 하청으로 생산 방식을 바꿔나가는 등 다양한 변모를 겪는다. 1970년대 후반부터 동대문 주변 일대까지도 의류산업을 중심으로 한 특수한 경제단지로 바뀌는 등 지역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

지난 11월 13일은 전태일열사 49주기였다. 한국 근현대사에 또렷이 기록되는 중요한 날이다.

청계천박물관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장 안내 화면 ⓒ박세호

청계천박물관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장 안내 화면 박세호

문재인 대통령도 전태일 열사의 49주기를 맞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모두가 공정한 사회로 열사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박물관에서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조금 더 시내 쪽으로 나가면 종로5가와 중구 을지로 그리고 동대문구 등 3개 지역이 맞닿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평화시장 큰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전태일다리(구 버들다리)가 있다. 다리와 길 위에 추모사 및 격문이 새겨진 금속 타일들이 길게 깔려 오랜 동안 보존되고 있다. 청계천박물관과 전태일다리는 모두 다 청계천변에 자리잡아 가깝게 위치한 거리다.

평화시장 앞 청계천 위 종로구와 중구를 이어주는 전태일다리(버들다리) ⓒ박세호

무심코 다리 위를 지나다 열사의 꽃피우다 만 짧은 생애를 돌이켜보고 가슴에 시린 감정과 회한을 느껴본 사람들이 많았다. 전태일 열사는 동대문구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힘썼고, 1970년 11월 13일 만 22세 나이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해 그 짧은 생을 마쳤다. 전문 재단사로서 한 몸의 이익이나 고초 때문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압박 받는 수많은 여공들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의 피고용자들을 위한 양심에 기초한 성숙한 자각이요,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며 노동자의 자각과 조직화에 전기를 이끈 역사적인 계기를 이뤘다.

그 당시 사용하던 계산서와 옷본 대장과 장부들 ⓒ박세호

그 당시 사용하던 계산서와 옷본 대장과 장부들 ⓒ박세호

수많은 시민 학생과 민주운동가들에게 자신의 시대와 함께 걸어가는 동시대인들에 대한 의무감을 한 차원 더 높이 자각시켜준 계기가 됐다. 1970년의 청계피복노동조합 등 과거의 형식에서 탈피한 노동자들의 자기 결단으로 새로운 참신한 노동조합이 결성됐는데, 모두 전태일 분신자살사건에 기원을 두며, 한국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종로5가 청계천 건너 중구 쪽 전태일다리 교각에 새겨진 헌시 ⓒ박세호

종로5가 청계천 건너 중구 쪽 전태일다리 교각에 새겨진 헌시 ⓒ박세호

종로5가와 중구 을지로 그리고 동대문구가 맞닿은 곳에는 평화상가가 있다. 1990년대부터 동대문 일대에는 패션쇼핑몰 형태의 의류상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 의류 시장으로 시작한 이 패션쇼핑몰들은 외국 관광객과 수입상의 방문이 이어지게 되면서 세계적인 패션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람할 수 있는 청계피복노조 소식지 ⓒ박세호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람할 수 있는 청계피복노조 소식지 ⓒ박세호

청년 디자이너들과 봉제 장인(기술자)의 협업으로 한 층 업그레이드된 기술적 단계로 이른 바 ‘상상패션 런웨이’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인접지역에 건립된 ‘봉제역사관’ 등을 통해 하나의 기술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등 다각도로 ‘패션의 상징’ 동대문으로 국내외에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기획전시실 벽에 게시된 설명자료, '의류유통의 중심지 평화시장' ⓒ박세호

기획전시실 벽에 게시된 설명자료, '의류유통의 중심지 평화시장' ⓒ박세호

동대문 일대가 섬유 패션상가 및 수출지역으로 변모됐으며, 중국 등 동남아 각국의 바이어와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찾아와 한류 붐을 꽃피우고 있다. 그 패션산업 중심권인 평화시장의 이야기를 청계천박물관에서 만나보자. 대한민국 산업화와 번영의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평화시장의 그 때 그 시절 그 모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박물관

- 관람시간 : 평일 9:00 – 19:00, 월요일 휴관, 토·일·공휴일 9:00 – 18:00

- 관람료 : 무료

- 문의 : 02-2286-3410

문서 정보

청계천박물관서 만난 동대문 패션의 시작, 그리고 전태일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세호 생산일 2019-11-18
관리번호 D000003863729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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